공주 수촌리 고분군, 백제역사 복원에 큰 역할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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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수촌리 고분군, 백제역사 복원에 큰 역할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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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모2점, 금동식리 3켤레, 금제이식, 환두대도, 중국계 청자 3점이 이야기하는 사실

^^^▲ ▲ 금동 관모
ⓒ 문화재청 ^^^

충남 공주의 수촌리 고분군은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이후에 최대의 백제고분군 유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학계와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는 백제가 한성에 도읍을 정한 5세기 초반에 집중으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이 고분군에서는 국보급 금동 관모 2점과 금동식리(신발) 3컬레, 금제이식(귀고리), 환두대도, 중국계 청자 3점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 그래픽/중앙일보^^^
즉, 출토유물의 성격으로 보아 한성 도읍기에 이미 웅진일대에는 상당한 세력과 기반을 갖춘 지방세력이 존재했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이번 발굴은 공주시가 '의당농공단지' 건설을 하기 위해 충남발전연구원(원장 이해준)에 조사를 의뢰, 조성부지 67,760평 지표조사를 실시, 이에 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시굴조사 결과 총 2개 지점에서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 백제시대 분묘군, 고려·조선시대 분묘군 등 다양한 유적이 확인되었다. 그리하여 시굴조사를 토대로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수촌리 유적Ⅰ·Ⅱ지역인 1300평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조사결과 수촌리 Ⅰ지역은 시대별로 청동기, 초기철기, 백제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조선시대의 유구가 확인되어 그 수는 총 30여기이다. 또한 청동기 주거지에서 세형동검과 검파두식 모, 사, 착 등이 발견되었고, 그 외에도 초기철기 시대 (점토대 토기, 흑도 장경호), 백제시대 토기류 등이 확인되었다.

^^^▲ ▲ 금동 신발
ⓒ 문화재청 ^^^

수촌리 Ⅱ지역에서는 백제시대 토광묘 2기 등 총 6기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백제시대의 분묘에서 이번 발굴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목곽묘인 1호분에서 금동관모와 금동식리가 세트를 이룬 채 환두대도 등과 함께 출토되었다. 또한 횡구식 석실분인 4호에서는 금동식리 1컬래가 바닥 위에 환두대도와 함께 발견되었다. 횡혈식 석실분인 5호분에서는 중국제 청자 3점과 삼각형 구멍을 뚫은 굽다리접시 토기와 함께 금동신발 1켤레가 관모와 함께 나왔다.

^^^▲ ▲ 중국제 계수호
ⓒ 문화재청^^^

특이한 점은 아직 수습하지는 않았지만 금동식리 3켤레 중 일부에서는 T자형 무늬라든가 용무늬 등이 육안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백제 금동관과 금동신발이 한꺼번에, 다량으로, 그리고 출토지가 정확하게 나온 것은 이번에 처음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금동식리의 경우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2켤레 익산 입점리 1호분 석실분에서 출토된 1켤레, 나주 복암리 3호분에서 나온 1켤레가 전부이다.

또한 금동관모는 익산 입점리 고분, 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乙棺) 출토품이 전부이다. 천안 용원리 고분은 아주 작은 조각만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이번 발굴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그 자체로만으로도 국보급의 가치를 지니기도 하지만 그동안 문헌자료와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빈약하여 추정에만 그치던 웅진 천도 이전 백제의 위상에 대해 밝혀줄 수 있는 것들이다.

즉, 한성 시대 백제의 세력권에 대해서 중국시기나 중국의 사서 등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구체적인 범위가 나와있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금동 관모 조각이 나온 천안 용원리 고분까지가 한성 백제의 영향권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던 것이다

또한 중국의 도자기가 나왔다는 사실은 중국과의 직교역이 어려웠던 상황을 고려하여 한성의 중앙정부로 하사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한성(중앙정부)과 긴밀한 관계였음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라고 조사단은 밝혔다.

무덤의 주인공에 대해서 이훈 연구관은 백제의 지방 통치 조직이었던 담로(魯)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였다. 이는 중국의 사서에 언급되어있는 백제가 자제종족을 22곳에 파견해 통치하는 담로제를 실시했다는 기록에 부합되는 사실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백제의 668년 존립기간 중에서 500년에 달하는 한성 백제는 그 왕궁의 위치 등을 비롯한 그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와 연구가 극히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이번 공주 수촌리 발굴은 베일에 가려진 백제 역사를 복원하는데 구심점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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