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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에 있었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큰 표차로 물리치면서 2040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생겨나게 하였다.
나경원 후보의 패인을 네티즌들에게 물었더니 첫째가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때문이고, 두 번째가 나경원 후보가 회원가 1억 원의 피부 클리닉에 다니는 단 1%의 부유층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90% 이상을 점유하였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물러나서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이야 탓할 일이 못된다. 그런데도 내공동의 사저 문제가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무슨 때문일까. 지도자의 자격에 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전임 대통령이 모두 불편한 것을 감내하면서 살던 집으로 돌아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면서 사저를 마련했는데, 유독 이명박 대통령만이 일반 국민들과 구별되는 대저택을 새로 지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자신은 까맣게 모르는 일을 경호실에서 했다고 둘러대서는 안 된다. 지도자의 양식은 그 수하들에게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전달되고, 실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같은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것은 그 책임의 전부가 이명박 대통령에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 하는 성패의 요인은 자난 날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대중들이나 조직원들이 자신을 우러르게 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위엄(威嚴)있어야 한다.
또한 그 위엄이 가짜가 아님을 믿게 하는 신망(信望)이 있고서야 지도자의 자질이 입증되는 것이 고금의 역사가 전하는 교훈이다.
조선시대의 공직자 중에서도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의 실천궁행이 오늘을 사는 정치지도자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오리 이원익이 과거에 급제하여 공직에 나가서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을 때도 치적(治績)이 가장 훌륭했다고 평가된다.
관서(關西:지금의 평안도)에 두 번 부임했었는데, 평안도의 백성들이 그의 선정을 공경하고 애모하여 그가 떠난 다음에도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낼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선조 조(宣祖朝)때 내직으로 들어와 재상이 되었지만 얼마 안 되어 면직되었고, 광해군 초기에 다시 재상이 되었으나, 정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미련없이 관직을 버리고 고향(驪州)로 돌아갔다.
그러나 광해군의 곁에서 모든 권세를 독점하였던 이이첨 등이 선조비 인목대비를 경운궁(慶運宮:지금의 덕수궁)에 유폐하는 천하의 패덕을 자행할 때는 그냥 있지를 않았다.
오리 이원익은 관직에서 물러나 있는 처지인데도 광해군에게 강력한 소장을 올려 자전(慈殿:인목대비)께 효성을 다할 것을 직언했다. 격노한 광해군은 그를 강원도 홍천으로 귀양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났다. 인조반정은 군사쿠데타나 다름이 없었는데도 새롭게 구성된 혁명정부에서는 오리 이원익을 다시 모셔와 영의정을 맡길 만큼 그의 인품은 크고 빛났다.
오리 이원익이 영의정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인목대비는 광해군을 죽이라도 핏발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혁명을 성사시킨 공신들까지 광해군에게 사약을 내리기를 요구했다. 오리 이원익은 홀로 인목대비를 설득하고, 공신들을 타일러서 광해군을 죽음에서 구해낼 만큼 그의 지도력은 탁월하였다.
오리 이원익이 연로하여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서 향리로 돌아가 초야 묻혔을 때도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는 몇 칸의 초가집에 살면서 떨어진 갓에 베옷을 입고 혼자 지냈으므로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21세기의 격동을 헤쳐 나가야 할 대한민국이다. 국민의 신망을 받는 정치 지도자가 없고서는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가 없다. 이번 선거에서 기성 정당이나 단세포적인 정치인들에게 결정타를 날린 이른바 2040의 세력들을 날로 더한 감시의 눈빛을 굴리면서 기성 정치판을 살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감동하는 정치판이 펼쳐지자면 역사를 읽을 줄 아는 정치지도자가 나와야하지를 않겠는가.
신 봉 승 / 극작가, 예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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