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독일 통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 김상욱 대기자
  • 승인 2019.11.09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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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통일 독일의 아이들은 여전히 분열
- 동독출신 38%만이 ‘독일 통일이 성공’이라 생각
- 어린 시절 동독 거주자와 동독을 못 겪은 40세 이하, 통일 성공 겨우 20%에 불과
- 통일은 새로운 고통의 시작의 전환점(Die Wende)
- 통일 독일의 경제는 강해졌지만, 불평등은 여전히 골칫거리
- 동독 : 봉급과 가처분소득은 현재 서독의 약 85% 수준
- 동독출신들, 동독 출신 메르켈 총리가 자신들의 대변인 역할 못한다 생각
- 동독 실업률 6.9%, 서독은 4.8%로 격차 심화
- 정치영역, 동독과 서독 뚜렷한 분열 존재
- 아직도 동독의 독일인들은 ‘이류시민’이라는 의식 많아
- 동독 출신 독일인들, 동-서독 사람 차이 없다가 겨우 33%에 불과
- 언론, 정치권 : 동독의 역사, 동독의 정치체제에 따른 사회상 무시로 갈등 고조
30년이 지난 지금 독일이라는 강대국 경제는 동독과 서독 모두를 보다 더 잘 살게 하였기에 통일 독일의 그림은 훨씬 모양이 좋아졌다. 하지만 불균형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여전하다. 독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동독의 봉급과 가처분소득은 현재 서독의 약 85%에 이르고 있다. 동독인들은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총리가 동독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재계, 학계, 정계의 지도자로는 별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독일이라는 강대국 경제는 동독과 서독 모두를 보다 더 잘 살게 하였기에 통일 독일의 그림은 훨씬 모양이 좋아졌다. 하지만 불균형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여전하다. 독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동독의 봉급과 가처분소득은 현재 서독의 약 85%에 이르고 있다. 동독인들은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총리가 동독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재계, 학계, 정계의 지도자로는 별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정부는 금방이라도 남북통일이 되고, 그렇게 되면 북한 개발과 더불어 연해주, 그리고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거대한 북방경제 등으로 한국은 곧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대국으로, 일본을 능히 넘서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며, 착각 할 정도로 통일에 대한 조급한 행보를 하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 바로 이전인 박근혜 전 대통령도 통일은 대박이라며 역시 현실과 거리가 있는 통일 후의 멋진 신세계, 한반도 이미지를 조급하게 그리게 했다. 그러나 통일을 위한 준비는 차근차근 해나가야겠지만, 아직 북한 김정은의 핵무기 놀이와 그의 체제 특성상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8(현지시각) 미국 워싱턴포스트(WP)베를린 장벽 무너진 지 30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통일 독일의 아이들은 여전히 분열되어 있다(30 years after the fall of the Berlin Wall, children of a united Germany remain divided)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198911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지금은 큰 무리 없이 통일 독일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역대 정부들의 설익은 그리고 조급한 대북정책, 통일정책은 통일 후까지 대비하고 있는 것인지 WP의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래는 WP 글의 대체적인 골자를 정리한 것이다.

마이클 베버(Michael Weber)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당시 막 3살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어서 그는 공산주의 동독이 자본주의 서독과 재결합하기 전의 동독에서의 삶을 기억하지 못한다.

장벽의 잔해 속에서 자란 베버 세대는 분열 없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들은 전환기(die Wende, 디벤더, the turning point)”의 아이들이었는데, 독일에서는 통일이라는 것이 하나의 전환점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통일 독일 이후에도 아직도 그 전환점이 됐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평가이다.

마이클 베버는 내 머릿속에는 장벽이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실망이 있다. 지난 30년 동안 바라던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119일을 맞이하며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하는 떠들썩한 행사들은 계속되는 사회균열에 대한 자기성찰등으로 조금은 차분해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19일로 꼭 30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나치 시대는 물론 동독의 비밀경찰인 스타시(Stasi) 스파이의 퍼즐이 아직도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동독과 서독간의 경제적 분열은 상당히 좁혀졌지만, 동독은 서독에 비해 여전히 뒤처져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부 정치인들은 과거의 문제로 치부했던 정치적, 심리적 분열은 점점 더 명백해졌다. 특히 통일 후 등장한 세대와 그 이전의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지난 9월에 발표된 독일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동독의 38%만이 통일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독을 어린 시절만 경험했거나 아예 경험하지 않은 40세 이하 청년층 가운데에서는 20%로 떨어졌다.

베버와 그의 친구들은 그 그룹에 속한다. 이들은 최근 금속공장에서 하루 휴가를 내고 동부의 초일렌로다(Zeulenroda)에서 열리는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가족의 날에 참석했다. 주민들은 반유대적 수사(anti-Semitic rhetoric)로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비욘 호케 (Björn Höcke) 대안당 지도자의 등장을 기다리며 소시지와 맥주를 먹고 마시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베버와 그의 친구들은 비욘 호케-나치(neo-Nazi)와 유대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발언이 있든 말든, 그들은 자신들이 신경 쓰는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베버는 전통적인 정당은 변화를 하기 위해 30,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30년을 노력해 왔으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통일은 새로운 고통의 시작의 전환점(Die Wende)

1989119일 저녁, 동독의 한 정부 관리가 동독의 시민들이 자유롭게 서독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 발표를 듣자마자 수많은 동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갔고, 그곳에서 서독 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유럽을 갈라놓은 철의 장막(Iron Curtain)의 가장 강력한 상징을 통과함으로써 축하 장면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동독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재조정(readjustment) 시작이기도 했다.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 (The day the Berlin Wall fell)

통일은 동독의 1,700만 독일인들에게 재산을 소유할 기회를 주었지만, 공산주의국가 동독에서 살아 온 많은 동독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본이 부족했다. 민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동독지역의 공장들은 문을 닫거나 서독의 새 소유주들에 의해 매수되었다. 돈이 부족한 동독 사람들은 자기 지역의 공장을 가질만한 자격이 없었다.

통일 2년 후 동독의 산업생산은 4분의 3 이상 급감했고, 300만 명 이상이 대규모로 실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 땅을 떠났고, 그로 인해 동독 지역은 황폐해졌다. 이 동독 지역의 도시에는 외국인이 거의 없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독일이라는 강대국 경제는 동독과 서독 모두를 보다 더 잘 살게 하였기에 통일 독일의 그림은 훨씬 모양이 좋아졌다. 하지만 불균형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여전하다. 독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동독의 봉급과 가처분소득은 현재 서독의 약 85%에 이르고 있다. 동독인들은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총리가 동독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재계, 학계, 정계의 지도자로는 별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업률에서도 지속적인 격차가 있다. 서독의 4.8%에 비해 동독은 6.9%이다. 동독과 서독의 분열은 정치의 영역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은 지난 5년 동안 독일 전역에서 높은 지지 열기로, 의회 의석을 충분히 확보해 제1야당이 됐다. 극우를 지향하는 정당의 제 1야당 소식은 동독에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동독의 작센(Saxony)과 튀링겐(Thuringia) 주에서는 녹색당30세 미만의 투표에서 선두로 승리했다.

극우파 세력이 다시 조롱과 모욕 속에서 독일 의사당(Reichstag)에 입성했다. 그 당은 메르켈 총리가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환영하기로 한 것에 반대해 큰 이득을 보았다. 그러나 그 이득은 30년 전 통일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한 분개감과 동독의 독일인들이 이류시민(second-class citizens)으로 남아 있다는 느낌으로 이어지는 역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해서 인지 최근 동독의 지방선거 때, 극우성향의 독일 대안당(AfD)은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전환기 2.0(Wende 2.0)”을 약속했다.

비욘 호케의 대안당은 지난해 연설에서 중진 정치인들은 항상 통일은 젊은 세대들과는 더 이상 관련이 있는 주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고 베를린 장벽 붕괴 후에 태어난 독일인들 가운데서 통일, 단결을 연구한 오토 브레너 재단(Otto Brenner Foundation)의 라이너 파우스(Rainer Faus)가 말했는데,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정치이며, 믿을 수 없는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라이너 파우스의 연구조사에서 동독 출신 젊은 독일인들 중 33%만이 동독과 서독 출신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서독 출신은 57%로 나타났다.

파우스는 동독 사람들은 독일을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동독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 항상 공평하게 대우받은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하고, “동독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극우성향의 독일대안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발견은, 옛 동독에서 조사된 5명 중 1(20%)동독사람이라기보다는 독일인이라는 것을 더 많이 느끼고 있으며, “서독에서는 정체성에서 동등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 동독 출신

어떤 사람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동독의 정체성을 포용하고, 더욱 만연해졌던 고정 관념과 싸우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발러리(Valerie Schönian)1990925(29)에 태어났는데, 그 때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년 후와 독일이 공식적으로 통일되기 8일 전이었다. 그녀는 성장해오면서 자신의 지역 정체성을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와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은 동독과 서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뭔가 달라졌어라면서 “2015년 난민들의 유입을 반대하는 독일 극우단체 페기당(Pegida party)의 급격한 부상을 지적하고, ”동독인들이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면서 인종차별적이고 극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스 매체와 트위터 해설자들은 동독을 보며 맙소사,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동독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면이 강조됐다. 독일의 한 마을은 이메일 기술을 활용한 신()나치주의자를 시장으로 선출했다. 이제 그들은 뒤집기를 원한다.

그녀는 페기당을 위해 거리에 나가지 않는 혹은 대안당(AfD)을 위해 거리로 나가는 나와 같은 젊은이들 역시 동독을 말하고, 동독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동독에서는 무엇이 멋진 것인지를 자신의 책에서 말하고 있다.

라이프치히(Leipzig)에 산다는 프리데리케 필러(Friederike Feiler, 21)는 그녀의 부모가 공산주의자인 동독에 반대하는 정치적 시위에 참여했던 교회를 언급하며, 그녀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 교회여행을 한다고 전했다.

출발 동쪽이라는 뜻의 아우스보 오스트(Aufbruch Ost=Departure East)라고 불리는 운동 단체에 속해 있는 필러는 통일을 둘러싼 문제들을 재검토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1990년 통일 직후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독 기관인 신탁관리공사(Treuhandanstalt)라는 작품이다. 그 기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것으로 인해 동서독의 불평등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정치적 차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새로운 벽을 쌓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그녀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동독에 대한 비난은 많다, 문제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어떻게 AfD(극우 독일 대안당)에 투표할 수 있느냐. 너는 나쁜 사람들이야.”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Humboldt University)의 사회학자인 다니엘 쿠비악(Daniel Kubiak)은 동독의 역사와 함께 동독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전적인 예는 동독의 독일인들이 권위주의 통치(authoritarian rule)아래에서 살았기 때문에 극우파에 대한 호감도를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는 것이다.

쿠비악 교수는 사람들은 1990년대의 반() 난민 그룹과 자생적 국내 테러리즘의 출현과 같은 사건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통일 이후 30년 동안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동독은 그 고유의 역사 속에서 건설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 같이 독일에서는 계속되는 분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에게는 통일의 실현되지 않은 약속(unfulfilled promises)과 동독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 것인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의 그 자체가 통일 독일의 상징이라는 평가이며, “오랫동안 동독의 관점이 역사와 언론에서 무시되어 왔으며, 그러한 점은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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