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서 ‘네크로자본주의’까지
‘신자유주의’에서 ‘네크로자본주의’까지
  • 김상욱 대기자
  • 승인 2020.07.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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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크로자본주의’는 ‘포근한 자본주의’와는 같이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돌연변이 네크로자본주의는 주체사회에서 계속 재생산을 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이 되어버린 바이러스와 같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완전히 ‘잘못된 본질과 그것이 만들어내고 있
자본주의의 돌연변이 네크로자본주의는 주체사회에서 계속 재생산을 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이 되어버린 바이러스와 같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완전히 ‘잘못된 본질과 그것이 만들어내고 있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병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잘못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훨씬 더 불길하다.

신자유주의에서 네크로자본주의까지 20(From neoliberalism to necrocapitalism in 20 years)이라는 이글의 제목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마크 레빈(Mark LeVine)MSN과 중동 알자지라의 오피니언에 17일자에 기고한 글이다.

우선 네크로자본주의(Necrocapitalism)’는 아래와 같이 설명되고 있다.

네크로자본주의란 한 나라의 무역과 산업을 기반으로 하고, 죽음과 그로 인한 축적된 이익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고 그것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를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크로(Necro)는 죽음, 시체, 괴사(壞死), 괴저(壞疽)를 뜻한다. 따라서 표현이 좀 과격해 보이겠지만 시체(죽음)자본주의라고나 할까? 죽음으로부터 이득을 축적해가는 자본주의의 오싹한 한 형태로 쓰이고 있다.

마크 레빈은 먼저 자본주의와 인종. 아무리 잘게 잘라서 보아도, 특히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그들의 음흉한 탯줄처럼 긴밀한 관계를 드러냈는데, 특히 바이러스의 확산과 그 영향의 인종차별적인 성격으로 인해 미국 인종차별주의의 일상적인 야만성을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로 드러난 심각한 총체적 불평등에 대한 반응은 그들의 더 깊은 뿌리를 찾기 보다는 좁은 문제인 신자유주의에 너무 자주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학계든 싱크탱크든, 하레츠(Haaretz)나 가디언(The Guardian),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나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 또는 무수한 진보적 국제 NGO들이 모두 신자유주의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야말로 신자유주의 질서의 종말을 의미한다신자유주의라는 유일무이한 미국 바이러스를 말하고 있다.

마크 레빈은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현재에 대한 초점은 말 그대로 잘못되어 있는데, 현재의 시스템은 오늘날 현대 세계를 계속해서 형성하고 있는 500년 된 힘이 최근에 반복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면서 침입성 식물(invasive plant)과 마찬가지로, 이 체계는 새로운 잎이 아닌 뿌리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현재 위기의 뿌리는 자본주의의 전개, 민족국가의 형태론, 그리고 그들 둘 다 수정시킨 식민주의의 생성적 질서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수세기 동안, 폭력은 자본주의 매트릭스(matrix)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한 도구였지만, 항상 선호되거나 심지어 가장 효율적인 것은 아니었다. 폭력이라는 것과 매우 흡사한 결정적인 기능은 이미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생물정치학(biopolitics : 혹은 생명정치, 생체정치)’이라는 말에서 잘 알려진 것으로, 현대 인구를 확보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며, 확산하기 위해 조직하고 관리하는 그리고 철저하게 현대적인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y)”이라는 인식이다.

현대 생물정치 질서의 목적은 날로 진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능률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 만큼 순탄한 시민과 노예, 노동자와 군인, 어머니와 아들을 창조하는 것이다. 미셸 푸코는 현대 생물정치가 사회가 스스로에게 지시하는 인종차별주의의 역설(paradox)로 고통 받고 있다고 믿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른바 인종적 요소를 활용하여 이익을 얻는 다는 인종자본주의(racial capitalism)’는 역설적인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인간의 삶의 질서와 관리가 왜 항상 그렇게 많은 폭력과 죽음에 의존하여 효율적으로 기능해 왔는지를 설명하는 코드다.

카메룬의 비판적 이론가 아킬 음밤베(Achille Mbembe)는 먼저 더 큰 생물정치적 명령의 기능에서 극단적 폭력의 역할을 네크로폴리틱스(Necropolitics : 괴사정치)이라고 묘사했다. 그것은 단순히 살인과 반대되는 국가의 죽일 권리가 아니라, 그들을 극단적인 폭력과 죽음에 노출시키고 인구의 전체 분열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네크로폴리틱스는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된 경제적, 정치적 위계를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네크로폴리틱스(Necropolitics)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지시하기 위해 사회적, 정치적 힘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물정치와 네크로폴리틱스는 서로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그들 사이의 구체적인 ()균형은 각 나라의 인종 자본주의(racial capitalism)와 종족민족주의(ethnonationalism)의 특수성에 달려 있다.

두 가지 역학관계는 항상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대부분의 현실보다 훨씬 더 중심적인 네크로폴리틱스(괴사정치)를 위한 장소를 보장해 왔다. 첫 번째는 페루 이론가 아니발 퀴자노(Anibal Quijano)권력의 식민지화라고 불리는 것으로, 식민 지배의 중심에서 같은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괴사정치적인 역학관계가 공식적인 탈식민화 이후 메트로폴스(metropoles)포스트콜로리얼(postcolonial)” 모두에서 채택되도록 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생물정치와 괴사정치 사이의 불균형에서 두 번째로 악화되는 요소는 현대 국가들과 통치구조들이 처음부터 대규모 범죄기업이나 부정한 돈벌이와 동일한 유전자(DNA)를 공유한다는 현실이다. 그 힘은 보호의 대가로 지역사회로부터 돈, 자원, 충성심을 갈취하는 데서 나온다. 내부 및 외부 위협으로부터 생성되거나 악화되어 왔다.

부와 권력이 한 사회에 집중될수록 인종과 다른 배타주의 담론이 더 많이 배치되고, 그 정부 시스템,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는 더 범죄적이 될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막스 호크하이머(Max Horkheimer)가 처음 진단했듯, 자본주의 체제에서 현대 지배구조의 본질적인 범죄 역학은 지배자와 지배자 사이의 의존 관계에 놓여 있는데, 이 관계에서 권력자들은 방패막이를 하면서 동시에 착취적 이용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권위주의 정부가 흔히 마피아 국가(mafia states)’로 표현되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다른 억압적인 기능과 결합하여 전쟁을 일으키면,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틸리(Charles Tilly)가 말한 전쟁과 국가제정(war-making and state-making)은 동시에 가장 높은 형태의 조직범죄와 가장 순수한 통치 형태가 결합된다.

유럽 의 고도의 제국주의, 미국의 팽창주의,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극도의 네크로폴리티컬 시대(necropolitical era)가 지난 후, 이 시대는 서양에서 유례없는 물질적 번영의 상승과 분배를 동반하고 일종의 진보를 낳았다. 거버넌스 경제학자들은 때로 조롱 섞인 말로 포근한 자본주의(cuddly capital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학관계는 지속되지 않았다. 1970년대의 기술적 진보에 의해, ‘자유시장정통성의 재인식과 신보수적인 정치 문화 이데올로기의 부상은 이제 세계의 수많은 병폐의 원인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만들어냈다.

지구촌 남부의 경우 이러한 정책은 시작부터 신식민주의의 한 형태로 경험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핵심에 있는 권력의 식민성을 고려할 때,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점점 좁아지는 사회 계층 사이에 집중된 거시경제 성장을 만들어 냈고, 부패, 불평등, 범죄화된 빈곤은 이전 시대의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준 구조적 인종 차별주의와 더불어 한층 더 악화되어 현저하게 부각되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21세기가 바뀔 무렵, 새로운 종류의 괴사정치(네크로폴리틱스)가 이 역동적인, 즉 신자유주의 시장 통념에 의해 정당화된 네크로폴리틱스,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순수한 정체성에 점점 더 직접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네크로폴리틱스 통치는 정치와 금융 시스템의 부패를 더욱 심층적으로 제도화해야 하고, 이를 통해 아른바 “1퍼센트라고 부르는 층에만 더 많은 부를 가져다주는 더욱 더 구조적인 모습을 흘러갈지도 모른다.

마치 스탈린의 집권 이후, 이전의 권력층이었던 직업적 혁명가 집단을 대신하여 체제를 유지한 특권적 지배계층인 새로운 형식의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를 보다 더 견고하게 형성해 나갈지도 모른다.

불평등, 빈곤, 사회적 병리학(채무, 질병, 중독), 환경 파괴의 증가로 인해 더 많은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제도의 도덕성과 심지어 생존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면서, 그들의 지지의 손실은 백인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명백한 인종과 문화 정치로 향하는 날카로운 우파적 이념적 전환에 의해 보상되었다. 미국 자본주의의 전통적인 수혜자인 (극단적) 보수주의 복음주의자들은 놀랄 것도 없이 다시 한 번 보수 주도의 정치 체제를 지배하는 그런 종류의 정치적 보호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매끄럽게 통합된 세계 시스템과 심지어 성장하는 중산층을 필요로 했다.

또 네크로리버럴리즘(necroliberalism : 괴사자유주의)은 기능하게 하기 위해 미국 정치 경제의 증권화(securitization), ()군사화 및 부정한 돈벌이화(racketization)를 증가시키기를 요구했다.

마크 레빈은 네크로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인물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라면서 이들은 공동의 시대에 전례 없이 인종차별화 되고, 소란스럽고, 군국화되고, 보복주의적이고, 네크로자본주의 형태와 그 수반되는 정치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초인종적인 네크로자본주의를 지원하도록 무기력하게 설계된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인종적, 경제적 불균형이 유전자 코드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 세계적인 유행병은 더 많은 민족주의 노선을 따라 세계 경제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10년 안에 미국 노동자의 3분의 1을 대체하고 영구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자동화를 향한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21세기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에서 불균형한 비율이 흑인과 황인종인 반면, 수백만 명의 백인 미국인들 역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궁극적으로 인종 자본주의의 역사적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는 항상 사람들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많이 나누고, 그들의 지속적인 지원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비()엘리트들(non-elites)에게 충분한 추가 재정 및 심리적인 임금을 주는 것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오늘날 더 이상 이 제도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다른 영구히 소외된 집단들만이 아니다. 백인은 또한 믿음을 잃었다. 한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모든 사람을 배제하고 억압하면서 가혹하게 악마화 함으로써 그들을 위해 일하는 제도의 잘못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대유행, 경제, 인종적 위기의 완벽한 폭풍은 황제나 자본주의 어느 쪽도 옷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의 돌연변이 네크로자본주의는 주체사회에서 계속 재생산을 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이 되어버린 바이러스와 같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완전히 잘못된 본질과 그것이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황폐화는 이전의 수혜자들에게 인종적 특권이 아무리 많아도 지켜낼 수 없는 현실을 처음으로 엿보게 하면서, 빠르게 백인들의 이데올로기적 겉치장을 벗겨내고 있다.

이 비전이 더 확산될수록 백인이 아닌 흑인이나 다른 인종들의 삶은 모두에게 더 중요할 것이고, 진정한 정의와 평등한 미국이 마침내 세워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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