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4)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直立猿人, Homo erectus)(1/3)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인류(4) 호모 에렉투스(직립원인/直立猿人, Homo erectus)(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호모 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 “일하는 자”라는 뜻임)

호모 루돌펜시스로부터 진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약 200만 년 전에 에티오피아와 케냐 등지에서 출현하였는데 호모 루돌펜시스보다 훨씬 크고 뇌는 880cc 정도까지 커졌으며 두개골도 발달하였다. 체격도 현 인류와 매우 비슷해져서 균형이 잡혀 있었고 에너지의 배분도 효율적이었다. 그런데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기후가 매우 불안정하여 변화가 심한 시기였고 그것은 아프리카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후에 따라 열대우림은 사라지고 대초원이 넓어졌다가 다시 숲이 우거지거나 황야가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 지역에 살던 동물들은 물론이고 원시인류들도 그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비가 많이 올 때에는 사막에도 식물이 자라고 동물들도 모여들어서 원시인류들이 살아나가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사막이 건조해지면서 물웅덩이가 마르고 식물이 말라죽자 동물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떠나고 원시인류들도 그들을 따랐다. 그들 중 일부는 그 부근에서 새 삶의 터전을 찾았으나 다른 일부는 남쪽을 향하여 이동했고 또 다른 일부는 북쪽을 향하여 이동을 시작했다. 당시 아프리카에 남아있던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이미 병든 동족을 보호해주고 돌보아주는 동정심(同情心, sympathy)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약 170만 년 전 투르카나 호수 동쪽 기슭에 살던 한 여자는 맹수의 간을 너무 많이 먹어 심한 비타민 A 중독에 걸렸으나 말기까지 살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주고 맹수로부터 보호해 주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편 나일 강 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던 집단은 지금의 요르단 땅을 지나면서 다시 둘로 갈라져 일부는 계속 북진해서 약 180만 년 전에는 카프카스(Kavkaz, 영어로는 코카서스/Caucasus)산맥의 남쪽 즉, 그루지야의 드마니시(Dmanisi: 이곳에서 180만년 이상 된 호모 에르가스테르의 화석과 올도완형 석제도구가 발견됨)까지 진출했는데 당시 이곳에 살던 인류는 손에 쥐고 던지기 알맞은 크기의 강자갈을 모아놓고 이것들을 던져 맹수들에게 대항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인류는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역시 비슷한 시기에 중국과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하였다. 이들은 추운 시기도 자주 겪어야 했기 때문에 육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더 커졌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새로운 지역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하여 약 150만 년 전이 되자 그들은 이제 이전과는 또 다른 종족이 되어있었다. 우리가 호모 에렉투스라 부르는 존재가 된 것이다.

▲ 그루지야의 드마니시 유적 ⓒdmanisi.org.ge
▲ 호모 에르가스테르(드마니시인) ⓒPhilippe Plailly, Eurelios, LookatSciences, Reconstruction Atelier Daynes, Paris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구세계 각지에서 화석이 발견된 원시인류로서 “바로 선 자(직립원인)”라는 뜻임)(1/2)

지금으로부터 약 15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는 얼굴이 넓적하고 눈두덩이 두툼하게 불거졌으며 이마는 뒤로 젖혀진 모습이었다. 당시 투르카나 호수 서안의 나리오코토메(Nariokotome) 부근에 살았던 11살 정도의 한 소년은 키가 160cm, 체중이 35kg 정도였는데 그가 성인이 되었더라면 키는 180cm, 체중은 약 70kg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체형이 현생 인류와 매우 비슷해서 이들은 팔보다 다리가 길었고 완전히 똑바로 서서 걸었으며 민첩하게 매우 잘 달릴 수 있었다. 피부는 검었으며 체모는 많이 줄어들어 피부가 노출되었고 땀샘이 형성되어 땀을 흘림으로서 체온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여자의 체격이 커져서 남자와 여자의 체격 차이도 많이 줄어들었다.

▲ 나리오코토메의 소년 ⓒPhilippe Plailly, Eurelios, LookatSciences, Reconstruction Atelier Daynes, Paris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죽은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으며 신선한 고기를 먹기 위해 사냥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무리지어 다니면서 사냥을 했고 늑대나 사자보다 더 위험한 야수이자 포식자가 되었다. 사냥은 인류의 풍속과 육체를 변형시킨 새로운 행위였으며 이때부터 인류는 신선한 고기를 먹게 되었고 신선한 고기는 프로테인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어 뇌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또 무리를 지어 사냥하면서 이들은 사냥감의 출현을 알려주거나 위험을 경고할 필요가 생겼을 것이며 이를 위해서 비록 매우 원시적이나마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은 사냥을 위한 무기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일에 활용할 여러 가지 도구들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인류는 가로날도끼(cleaver), 찌르개(첨두기/尖頭器, point), 주먹도끼(양면핵석기/兩面核石器, (bifacial) hand ax) 등 비교적 크고 새로운 도구들을 만들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들 중 대표적인 것이 주먹도끼로서 눈물방울 모양의 좌우 대칭 형태를 갖춘 것이 가장 흔하지만 그 외에도 타원형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이 도구들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기술과 힘이 필요했을 것이며 이때부터 구석기시대 중에서도 아슐리안(Acheulean)문화(이들 도구가 1830년대에 프랑스의 생아슐(Saint Acheul)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음)의 태동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 아슐리안 주먹도끼 ⓒlithiccastinglab.com

도구들이 정교해져 가면서 기술은 더욱 복잡해졌고 제작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어떤 이들이 사냥을 하거나 과일들을 따는 동안 다른 이들은 공동체를 위해 각종 도구를 만드는 등의 일을 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더 많은 일손들을 필요로 했으며 좀 더 정교한 작업을 위해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다. 늙은이들은 사냥을 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경험을 가진 훌륭한 기술자로서 젊은이들을 가르쳤고 교육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대자연 안에 최초의 학교가 세워진 셈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