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10)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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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10)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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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유럽(1/2)

지금으로부터 5만 년 전 서아시아의 기후가 눈에 띠게 달라져 많은 비가 내렸고 사막은 비옥한 땅으로 바뀌었다. 아프리카에서 홍해를 건너 약 3만 년 간 이나 예멘에 정착했던 인류 중 일부는 사냥감이 북쪽으로 이동하자 그 뒤를 따라 페르시아 만(Persian Gulf)을 거쳐 시리아 사막과 이란의 자그로스산맥(Zagros Mts.)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지역으로 진출했는데 자그로스산맥 기슭에는 사냥감이 넘쳐흘렀다. 또 다른 무리는 홍해 연안을 따라 북진하여 4만 4천 년 전에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등까지 진출했는데 이 당시 레바논에 살던 인류는 무덤을 만들어 죽은 자를 매장했다. 이 지역에 머물던 인류 중 일부는 지중해 남안을 거쳐 다시 북아프리카로 갔으며 다른 일부는 아나톨리아(Anatolia, 소아시아/Asia Minor)반도(지금 터키가 있는 지역)와 발칸(Balkan)반도를 거쳐 약 4만 년 전 중부유럽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다시 북쪽과 서쪽으로 진출했다. 당시 유럽은 많은 지역이 얼음으로 덮여 있었고 비옥한 식물대는 오늘날보다 훨씬 남쪽에 있었다. 그러다가 2만 5천 년 전, 지구는 더욱 추워져서 북서 유럽과 알프스는 물론이고 육지 면적의 약 3분의 1이 거대한 얼음으로 덮여버렸다. 빙하기는 약 1만 8천 년 전에 정점에 달해 어떤 곳은 얼음의 두께가 3km에 달했으며 해수면은 오늘날보다 120m나 낮아 오늘날의 대륙붕은 대부분 육지로 들어나 있었다.

▲ 공중에서 본 자그로스산맥 ⓒ뉴스타운

그 후 약 1만 5천 년 전 지구의 기온은 다시 상승해서 얼음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올라가 들어났던 대륙붕들이 다시 물에 잠겼고 황량했던 툰드라나 사막지역에도 다시 숲이 무성해져서 인간과 동물들이 살기 좋은 지대가 되었다. 마지막 한랭기는 1만 2천 년 전에 닥쳤는데 여름철 기온이 섭씨 10도로 떨어지고 녹기 시작했던 얼음 덩어리들이 다시 커졌으나 그 기간은 약 500년 정도 유지되다가 다시 오늘날과 같은 기후를 회복하였다. 이와 같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가 유럽에 진출한 4만 년 전부터 충신세 즉 현세의 시작인 1만 년 전까지는 지구의 기후가 변화무쌍하였던 시기였으며 현생인류는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살아나왔다.

지금으로부터 약 3만 3천 년 전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Ardeche) 협곡 부근에 살았던 사람들은 근처 쇼베(Chauvet) 동굴의 벽에 붉은 색의 대자석(代裏石: 적철광이 주성분인 붉은 색의 광물로서 혈사(血師)라고도 함)과 검은색 숯으로 코뿔소, 사자, 물소, 표범, 사슴 등 300마리 이상의 동물들을 그려 놓았다. 이들 그림에는 원근법이 적용되어 있으며 벽의 일부를 세심하게 긁어내어 윤곽을 돋보이게 함으로서 그 효과를 더욱 높였고 물감도 매우 정교하게 칠했다. 이들 그림은 그 뒤에 그려진 어떤 동굴벽화보다도 뛰어났고 놀라운 감성과 지각을 보여주고 있어 당시 인류는 이미 예술에 대해 세련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약 3만 년 전 프랑스의 오리냐크(Aurignac) 부근에 살던 인류는 동굴곰과 큰사슴, 들소 등을 사냥하였으며 중앙에 구멍이 난 뼈로 장식용 원반을 만들었고 동물의 뼈로 플루트를 만들기도 하였다.

▲ 동굴벽화를 그리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Dorling Kindersley
▲ 아르데슈 쇼베 동굴의 벽화(1) ⓒ뉴스타운
▲ 아르데슈 쇼베 동굴의 벽화(2) ⓒ뉴스타운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남부의 크로마뇽(Cro-Magnon) 동굴 부근에 살던 인류는 모피로 된 옷에 구멍 뚫린 소라껍질을 장식으로 달기도 하였다. 역시 프랑스 남부인 랑드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곰과 동굴사자 이빨에 물고기, 물개, 말 등의 동물모양 무늬를 만들어 넣고 구멍을 뚫어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그리말디(Grimaldi) 부근에 살던 사람들도 소라 장식이 붙은 모피 모자를 썼으며 뼈로 단검을 만들었고 뼈와 돌로 만든 팔찌를 착용하였다. 이들에게는 크로마뇽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으며 코카소이드(백인종/白人種, Caucasoid)들의 직접 조상이 된다.

▲ 크로마뇽인 ⓒPhilippe Plailly, Eurelios, LookatSciences, Reconstruction Atelier Daynes, Paris
▲ 동물이빨 목걸이 ⓒ뉴스타운
▲ 매머드이빨로 만든 여자상 목걸이장식 ⓒJ Jelinek, 'The Evolution of Man'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한 지금부터 약 4만 년 전에서 2만 5천 년 전까지의 문화를 오리냐크문화라고 하며 이로부터 후기 구석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오리냐크문화의 특징은 뼈로 만든 날이 더 날카로워졌으며 촉은 더 뾰족해지고 살에 고정시킬 수 있도록 밑 부분이 갈라져 있게 만들었다. 또 소라껍질이나 북극여우의 이빨에 구멍을 뚫고 영양이나 코끼리뼈, 상아 등으로 구슬이나 펜던트를 만들고 이것으로 목걸이, 팔찌 등과 같은 장신구를 만들었다. 이들은 작은 조각품들도 만들었는데 약 3만 5천 년 전 돌이나 기타 물체의 표면에 여성의 성기를 새겨 넣은 것도 있었으며 동굴의 벽에 스케치, 암벽화, 부조 등을 남겨놓기도 하였다.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Dordogne)의 라스코(Lascaux) 언덕에 있는 동굴의 벽에는 주로 들소, 말, 사슴, 염소 등과 함께 드문드문 고양이나 주술사로 보이는 사람의 그림 등 모두 800점이 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대체로 커서 검은 소는 5m가 넘으며 대부분은 빨강, 검정, 노랑, 갈색의 채색화지만 홈을 판 선각화(線刻畵)도 꽤 있고 여러 종류의 짐승이 겹친 것도 있는데 이것은 이들 짐승을 좀 더 쉽게 잡으려는 주술행위로 보인다. 이보다 전의 무스티에문화는 이름은 문화지만 석기가 좀 더 정교해지고 다양해졌다는 것 뿐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오리냐크문화는 문화의 폭발 또는 문화혁명이라고 할 만큼 새로운 문화가 폭발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오리냐크문화 및 샤텔페롱문화는 크로마뇽인 즉 유럽의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공유하였던 문화였지만 그 주역은 어디까지나 현생인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3만 년 전, 혹독하게 추웠던 빙하기도 잘 견디며 20만년 이상 유럽을 지배한 유일한 인종(人種, human race)이었던 네안데르탈인은 적도의 더운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크로마뇽인이 유럽에 도착한지 약 1만년 만에 거의 동시에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 오리냐크의 석제도구 ⓒ뉴스타운
▲ 라스코 동굴의 벽화(1) ⓒ뉴스타운
▲ 라스코 동굴의 벽화(2) ⓒ뉴스타운

두 종이 같은 자원을 가지고 경쟁을 하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이라도 열등한 종이 밀려나게 마련인데 같은 호모 사피엔스의 두 아종으로서 같은 생활공간에서 공존하게 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에게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네안데르탈인은 체격이 커서 칼로리 소모가 많고 더 많은 식량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냥무기나 사냥방법은 현생인류가 오히려 더 우수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은 유아사망률이 높고 부상을 많이 당했으며 평균수명도 짧았다. 그러나 현생인류는 수명이 비교적 길어서 노인들이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고 많은 경험과 지식을 물려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차이만으로 신체적으로도 강건하고 20만년 이상을 유럽에 적응한 네안데르탈인이 더운 지방에서 진화해서 온 크로마뇽인에게 밀려났다는 것을 납득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아마도 좀 더 중요한 이유는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에 비하여 정신(情神, mind)이나 의식(意識, consciousness)의 수준이 적어도 한 단계이상 더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문화예술의 수준도 더 높고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도 훨씬 더 원활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능력으로 현생인류는 사회적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하고 열매나 과일이 많은 숲과 좋은 사냥터에 관한 정보를 나눌 수 있었으며 도구나 물자를 교환하면서 지배구조를 점점 더 확고히 해 나갈 수 있었으나 네안데르탈인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실제로 네안데르탈인의 활동반경은 최대 50km 정도였던 것에 비하여 현생인류는 320km 정도의 거리까지도 물자교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차이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을 가져온 결정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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