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빨치산세력 대 지만원 세력간의 內戰 상황돌입
5.18 빨치산세력 대 지만원 세력간의 內戰 상황돌입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6.06.09 14:4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500만 야전군"아래 뭉치자

▲ ⓒ뉴스타운

1. 5.18 기념재단의 빨치산 식 5.18 자화자찬 선전문구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당시 신군부 세력과 미군의 지휘를 받은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등을 외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항쟁 기간 중 22~27일 닷새 동안은 시민들의 자력으로 계엄군을 물리치고 광주를 해방구로 만들어 세계사에서 그 유래가 드문 자치공동체를 실현하기도 했습니다.

계엄군에 의해 진압당한 이후 5·18 민주화 운동은 한때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매도당하기도 했으나 진상규명을 위한 끈질긴 투쟁으로 1996년에는 국가가 기념하는 민주화운동으로, 2001년에는 관련 피해자가 민주화 유공자로, 5·18 묘지가 국립 5·18 묘지로 승격되어 그 명예를 온전히 회복하였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은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되는 1987년 6월 항쟁의 동력이 되어 민주주의 쟁취와 인권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5·18 민주화 운동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중에게 귀중한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동시에 민주화 운동이 지향해야 할 정신적인 지표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인들에게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는 면에서 광주와 대한민국의 민중은 5·18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으며, 그 정신을 민주·인권·평화·통일 등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제기된 과제로까지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2. 빨갱이와 빨치산 주동자들 이름도 못 밝히는 5.18 기념재단

대한민국 전라도 광주를 해방시켰다고 자랑하는 분리주의자 빨치산 역적들, 대통령 직선제를 반대했던 김대중 세력이 6.29 직선제 민주화 운동을 팔아먹고 있는 파렴치한 사기꾼 작태, 국군에게 총으로 맞서 전투를 감행했던 무장폭동을 아시아 민중의 민주화 운동의 귀감으로 여기게 됐다는 아전인수 식 해석이며, 중국의 천안문 사태와는 정 반대인 무장폭동인데도 아시아 민주화를 함부로 들먹인다.

거짓과 왜곡 날조로 얼룩진 5.18 폭동반란 역사를 미화시키는데 거칠 것이 없다. 어차피 36년 간 둘러댄 거짓과 왜곡날조는 이제 돌이킬 수조차 없는 지경이니 그들을 정상적인 인간들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조사한 모든 국가유공자가 약 6,000여 명이라고 하는데 5.18 민주유공자 숫자가 5,700여 명이라고 하니 지금 대한민국은 빨치산 폭도들에게 점령당한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과 계엄군을 1980년 5월18일부터 21까지 단 3일 만에 공포에 떨며 도피하도록 만들었던 무시무시한 무장폭도들이 마치 비폭력 비무장 시민들이라는 듯이 태연스럽게 떠들어 대는 5.18 어둠 속 악마 족속들은, 국군에게 총포로 무장하고 전투를 했으면서도 지휘자 주모자 아무도 국민 앞에 내세우지 못한다. 빨갱이 빨치산들과 북한군들이 줄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3. 남한의 간첩, 빨갱이로 구성된 5.18 주모자들, 그들의 민주화 운동

<박기순: 남민전 여전사>

지하공산당조직 남민전의 혁명가 “임을 위한 행진곡” 속의 여성 “임”이 바로 박기순이다. 그는 1978년 다니던 대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남민전 여전사가 되었으며, 지령에 따라 광주 광천동 공단에 위장취업 한다. 공단 청소년들에게 야학을 개설하여 남민전 투쟁의식을 고취시킨다.

1978년 12월26일 자신의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다. 미혼인 채로 5.18 발발 1년 반 전에 이미 사망한 남민전 여전사는 후에 5.18 민주유공자로 지정되며, 5.18 주동자 윤상원과 영혼결혼식을 치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준다. 5.18 거사를 위해 사전에 남민전 전사로 투쟁했기 때문에 5.18 민주유공자 대우를 받는다.

<윤상원: 남민전 전사>

1978년 가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직장을 그만 두고 광주로 내려가 광천동 한남플라스틱 공장에 위장취업 한다. 물론 남민전 전사로서 지령에 의한 노동현장 위장취업이었다. 광천동 공단에는 군용 무기를 생산했던 아세아자동차공장이 있어서 북한 김일성과 남한 자생간첩단 남민전이 5.18 무장폭동에 사용할 무기 탈취를 위한 사전 준비에 최적의 지역이니 박기순과 윤상원의 광천동 위장취업은 치밀한 계획 하에 진행되었다.

1980년 4월부터 김대중의 외곽단체 사무국장을 맡아 내란음모에 적극 가담하고 야학청소년들을 이용한다. 1980년 5월24일 북한특수군(시민군)에 의해 점령된 도청에 들어가 25일 도청을 장악한다. 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도청재진입 전에 이미 자신이 소지한 수류탄에 의해 자폭하여 사망한다.

<김대중 : 김대중 내란음모 주모자, 김일성 하수인>

국민연합대표, 1980년 5.18 민중봉기 계획, 최규하 임시정부 전복을 위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주모자, 1971년 일본에서 한민통 활동자금으로 북한 부주석 김병식으로 부터 20만 달러를 받았고, 1988년 간첩 서경원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아 온 공작금 1만 달러를 받았으며, 2000년 김정일에게는 5억 달러의 대한민국 국부(國富O)를 몰래 김정일에게 진상하였다.

<황석영 : 간첩, 김일성의 재간둥이>

황석영은 광주에서 1980년 극단 광대를 운영하며 5.18 불법시위 선동에 단원들을 적극 참가시킨다. 그는 1989년 3월 20일 북한에 밀입국하여 같은 시기에 북한에 들어와 김일성을 만났던 윤이상과 5.18 광주를 주제로 한 대남-반미의식 고취를 위한 “님을 위한 교향시”라는 영화를 제작해 줌으로써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칭호와 함께 25만 달러라는 공작금을 받았었다.

<서경원 : 간첩>

서경원의 카톨릭 농민회가 1980년 5월15일 5.18 폭동을 선동하며 주도했고, 동신실업전문대학 학생회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명의로 제2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우리가 흘린 이 젊은 피가 통일 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핏빛 진달래로 피어오르길 바란다!" 북한 김일성의 꽃 진달래를 흠모했던 그는 1988년 북한에 밀 입북하여 김일성으로부터 5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았던 간첩.

<윤기권 : 5.18 이후 월북한 빨갱이>

5.18광주 유공자 윤기권이 대한민국 민주화 발전을 위해 공을 세웠다고 보상금도 챙기고, 북한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평양시 교수강습 및 학생답사 견학소 지도교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럼 5.18광주 정신은 북한이 원하는 적화통일에 밑거름이 된다는 점을 어떻게 반박하고 부정할 것인가? 5.18측이 윤기권을 버리면 그와 함께 싸웠던 시민군도 북한을 위해 싸웠던 반란군으로 내쳐야 하고, 윤기권을 껴 안으면 5.18정신은 피할 수 없이 북한의 적화통일 운동이 된다.

<윤한봉 : 남민전 전사>

5.18 무장폭동의 실질적 지휘자였던 그는 남민전 전사였다.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당사자 박형선의 처남이 윤한봉이요 노무현의 측근 박연호도 그 사건 관련자이며 대부분 광주일고 동문들이다. 5.18 기념재단 설립자 윤한봉은 동지 8명과 함께 박정희 암살을 계획했으나 5.18 직전에 꼬리가 잡혀 결국 미국으로 피신한다. 미국에서 1989년에는 전대협대표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를 김일성 평양축전에 밀 입북시키는 일을 성사시켰다.

<문익환 : 김일성 충복, 빨갱이 목사>

김일성의 충실한 심부름꾼 문익환은 안재구 등 남민전 간부들이 출옥하자마자 김일성의 부름을 받고 평양에 가서 지령을 받아 ‘구국전위’를 결성한다. 국민연합 중앙위 상임위원장이었으니 5.18 광주 무장봉기의 선봉장이었다. 5월8일 폭력시위를 결의하였고, 남민전 전사 안재구와 그 가족을 극진히 돌봐 주었으며, 김대중으로부터 대통령 이전에 매달 500만원씩 받았었고, 간첩 이선실로부터도 수천 만원 단위의 공작금을 지원 받았었다.

<장기표 : 반 대한민국 역적>

국민연합 조직국장 장기표, 심재권과 함께 5.18 당시 서울 쪽 행동 대장이었다. 윤상원을 김대중에게 천거한 장본인이니 윤상원은 사실상 장기표의 꼭두각시인 셈이다. 있지도 않은 신 군부라는 이름으로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억지를 부렸던 5.18 세력의 사령탑이 바로 장기표인 셈이다. 그는 훗날 북한 여간첩 이선실과 접선하였고 그가 간첩임을 알면서도 숨겨 주었으며 그로부터 자금지원도 받았었다. 자생간첩 활동을 한 셈이다. 박정희의 산업화 노선에 목숨 걸고 반대한 인물.

4. 북한 김일성의 5.18 광주 북한인민군 (북한특수부대 일명 광수들)

지금까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에서 밝혀낸 5.18광주 침투 북한특수부대(전투조 및 선동공작조)는 총 477명이다. 그들 모두는 36년 전 5.18 당시 광주에서 찍힌 사진과 근래의 사진들을 각각 비교 분석하여 동일인으로 판명되었다. (시스템클럽 사진자료 참조) 결국 5.18사태는 북한 김일성의 인민군과 남한 김대중의 빨치산들이 어우러져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려고 일으켰던, 북한의 침략전쟁이요 남한 폭동반란이었던 셈이다.

5. 간첩 빨갱이들의 5.18 민주화 운동은 결국 김일성의 대남적화공작

별 거지 같은 민주화 운동을 다 보겠다. 김일성의 북한공산주의 3대 세습독재 체제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를 뒤집어엎자고 남북 빨갱이들이 모두 들고 일어났던 5.18 폭동반란이 대체 무슨 귀신 곡할 둔갑술을 저질렀길래, 1997년 대법원에서 거룩한 “민주화운동”으로 변했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그 재판마저도 빨갱이들이 인민재판을 감행했던 것이다. 광주에서 들고 일어난 폭도들이 준 헌법기관이라고 정해 놓으면 판결은 일사천리다. 이 엄청난 악마적 거짓역사를 뒤집으려면, 대한민국은 내전사태를 겪을 수 밖에 없다.

우리들은 지난 2009년 2월27일 18대 국회에서 거대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의석 수 153석을 가지고도 김대중의 빨갱이 세력세탁법인 민보상위법 개정을 상정도 못하고 없었던 일로 했던 비참한 정치현실을 기억한다.

당시 그 법을 발의했던 전여옥 의원은 국회 내에서 민가협 부산대표 이모 할머니와 다른 폭도들로부터 테러를 당했던 무서운 역사도 알고 있다. 빨갱이들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국회의원을 그 지경으로 테러 했었으니, 지금 진행되고 있는 5.18 북한군개입 역사 문제 제기는 빨갱이들에게 바로 내전사태를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의원을 국회 내에서 테러했던 ‘전여옥 의원 사건’과 법원 내에서 5.18 북한군 개입 문제 제기로 발생한 5.18 폭도들의 지만원 박사 테러행위는 결국 이 나라의 좌파 빨갱이 세력이 얼마나 거대하게 힘을 얻었고 있으며 대한민국을 무너 뜨리려는 의지가 강하고 굳건하게 뭉쳐 있는지 직감하게 된다.

전여옥이 집권여당의 의원신분으로 국회 내에서 빨갱이 척결 법안발의를 시도했다가 테러를 당했을 때 당시 한나라 기회주의 회색분자들이 보였던 비겁하고 추악한 모습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 일에는 침묵하고 말았었다. 표를 의식한 중도 기회주의 정치 사기꾼들의 전형을 보여 주었었다.

이제 지만원의 “5.18 북한군 개입” 논쟁이 거국적으로 확산되고 빨갱이들의 역사가 바로잡히느냐, 아니면 박지원의 5.18 성역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되어 대한민국이 빨갱이 천국으로 변하고 북한 김정은이 한반도를 적화통일 하도록 발판을 마련하느냐, 사생결단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승만, 박정희의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믿고 지키려는 모든 세력은 이제부터 지만원의 “500만 야전군”아래 뭉쳐야 한다. 박근혜도 국군도 믿을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눈물을 삼키면서 받아 들여야 한다.

글 : 시스템클럽 대한민국대청소500만야전군 만토스

관련기사

핫이슈포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6-06-09 23:01:59
주장하는게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