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김동 최고존엄은 당초부터 없었다
위수김동 최고존엄은 당초부터 없었다
  • 백승목 대기자
  • 승인 2014.03.0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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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점령군 정치장교가 날조한 항일투쟁 우화가 백두혈통 허구를 증언

▲ (좌)1945.10.14 소련군 적기훈장을 가슴에 단 김성주(33세)가 점령군사령부 정치장교 메프레르 중좌와 조선인출신 통역관 강미하일 소좌와 함께 강연회 등단 직전 긴장된 모습.
(우)평양시 소련점령군환영군중대회에 등단 '김일성'으로 소개 된후 환영연설을 하는 김성주 소련군 정찰대 대위의 모습
소위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정일 선군주의를 자기활동의 지도적지침으로 삼겠다는 북한 김정은이 고모부를 도륙해가면서까지 유아독존 식 최고존엄의 위상과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까닭은 최고존엄이라는 허구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해석하면, 북한에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 된 지도자, 이른바 ‘최고존엄’이란 존재한 적이 없다는 뜻이 된다.

북한에서 영원한 공화국 주석(主席)으로서 금수산기념궁전에 방부처리 된 시신으로 누어있는 김일성은 중국공산당 휘하 동북항일연군을 거쳐서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조선인정찰대’ 말단 간부로서 ‘소련공산당’의 하급 졸개에 불과 했다.

김일성이 오늘날 김정일과 함께 만수대 언덕위에 쌍(雙)태양이 된 것은 해방직후 소령공산당 지령에 의한 소련점령군사령부의 치밀한 공작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조선노동당’이 60여년에 걸쳐 지속적인 선전선동과 교묘한 우상화의 결과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에 따라 8월 17일 나진항에 상륙 북한에 무혈 진주한 소련군 뒤를 따라 9월 19일 원산항을 통해 김영환이란 가명으로 비밀 입국한 소련군정찰대 대위(빨치산 위장계급)김성주가 전성적인 항일독립투사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도용(盜用), 10월 14일 평양시 소련점령군환영군중대회 연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소련점령군사령부 지도와 비호 하에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접수(1945.10.13)하고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임민위원회와 조선인민군을 동시에 설립, 창설 전형적인 공산당식 당(黨).군(軍).정(政) 복합, 소련공산당 한반도적화 전위대가 되었다.

소련군점령군사령부 정치장교 메프레르 중좌와 조선인출신 통역관 강미하일 소좌 등의 지도와 연출에 따라 불세출의 항일독립투사이자 절세의 애국자로 분장 둔갑한 이래, 치밀한 정치공작과 지속적인 선전선동 및 우상화 작업 결과로 나타난 돌연변이이다.

김일성은 독재권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스탈린식 폭압살인공포 수법과 히틀러식 선전선동 수법, 군국일본 천황식 우상화 수법, 사교(邪敎)집단 맹목신앙 주입수법을 총 동원 복합하여 주민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학습세뇌 의식화 단계를 넘어 신념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교묘한 세뇌수법도, 아무리 강력한 공포와 억압으로 날조 된 권위나 관념도, 진실(眞實) 앞에는 눈 녹듯 스러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깊이 묻힌 사실도, 수억 년 전 유물이나 화석이 출토되어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들 듯 진실은 죽지 않게 마련이다.

소련점령군의 최대 실수는 김일성을 띄우기 위해 보급한 이찬 작사 김원균 작곡 ‘김일성 장군 노래’이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으로 시작 ‘만고의 빨치산’으로 묘사 했다는 것은 김일성은 백두산이나 왕재산이 아니라 ‘만주 장백산 줄기’에서 항일독립투사로서가 아니라 소련공산당의 지도와 후원을 받은 ‘빨치산 공비(共匪)’였다는 사실을 실토함으로서 백두혈통의 허구를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보다 더 실증적인 자료는 1956년 소위 ‘주체노선’을 강조하면서 철저하게 말살하여 북한 내에는 존재할 수 없는 소련점령군 북한 진주 초기 사료에 드러난 김일성 언행이다.

○ 스탈린의 충실한 주구로서 김일성의 언동 내용

■ 소련군대의 결정적 역할의 의하여 구라파와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해방 되었습니다. (1945.10.13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도당책임일군회의 김일성)

■ 우리인민의 해방위업에 원조를 준 소련의 영웅적 붉은 군대에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945.10.14 평양시 소련군환영군중대회 김일성)

■ 소련의 영웅적 붉은 군대가 조선에 자유와 독립을 가져다 주었다. 붉은 군대가 온 시각부터 북조선에서 공산당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1945.12.17 조선공산당 북조선북국 3차확대회의 김일성)

■ 조선민중의 해방군인 붉은 군대,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수립 법령제정 농업현물세 국유화등 과업 지도 원조, 조선민주의 해방자이며 후언자이고 은인이며 벗인 위대한 스탈린 대원수 만세!!! (1946.8.28 스탈린 대원수에게 드리는 편지 김일성)

■ 스탈린 대원수에 대한 김일성의 찬양(1954년 판 김일성 선집에 수록)

● 스탈린 대원수는 조선인민과 조선민족에~

- 진정한 벗이며 스승 (1946.5.19)

- 친우, 해방자, 옹호자 (1946.8.10)

- 벗이며 해방자, 방조자 (1947.2.20, 1947.8.15)

- 해방자, 은인, 위대한 영도자 (1948.2.8, 1948.8.15)

- 해방자, 영명한 지도자, 가장 친근한 벗, 해방의 구성 (1950.8.15,1953.3.6)

● 스탈린 대원수는 세계피압박민족, 근로인민, 진보적 인민에~

- 위대한 영도자 (1946.6.20)

- 위대하고 영명한 수령 (1948.8.15)

- 스승, 수령, 전세계적 영도자 (1949.3.3, 1951.8.15, 1953.3.6)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공작대 김일성(김성주)은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미화하고 한반도공산화전략을 실행하는 소도구로 이용된 소련점령군사령부 주구(走狗)에 불과 했다. 이런 사실은 김일성 김정일 2대에 걸친 분서갱유(焚書坑儒)식 사료(史料) 말살로 흔적조차 안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事實)은 현재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은 물론 ‘위수김동, 친지김동’ 종북세력이나 북한 이탈주민조차 까맣게 모르는 숨겨진 사실(史實)이다. 이로써 북한주민을 일깨움을 물론, 위수김동족 종북세력의 각성과 반성, 특히 친노 주사파의 참회와 회개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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