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준열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 한 임준열(任俊烈), 일명 임헌영(任軒永) 씨는 김일성에게 충성의 편지를 쓴 반국가단체 남민전 관련자이다.^^^ | ||
소위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준열 68세, 일명 임헌영, 가명 한미정)가 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국 군관학교 지원당시 “일사봉공(一死奉公)” 즉 죽음으로서 봉사한다는 의미의 혈서를 제출했다는 1939년 3월 31일자 일어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 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최근 친일인명사전 출판을 앞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와 장지연 선생 후손 등이 법원에 낸 ‘게재금지가처분신청 및 배포금지신청’에 대한 반박자료로 이를 공개 한 것이다.
박정희의 행적에 대한 변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公信力’과 임준열 소장에 대한 신뢰성 검증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폭로형식으로 공개한 자료에 대하여 냉철하고 객관적인 검증과 평가 그리고 해석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첫째, 사본으로 제시 된 자료원본의 존재여부 및 내용의 정확성 평가.
둘째, 자료의 소장 또는 제공자에 대한 신뢰성과 입수경위에 대한 평가.
셋째, 자료를 폭로한 기관 및 개인의 행적 및 객관성 및 공정성 평가.
넷째, 내용의 사실여부와 ‘친일의 증거’로서 그 의미에 대한 재해석.
다시 말해서 제시 된 자료가 조작되거나 왜곡된 것이냐 여부에 대한 검증, 자료의 입수 경위와 원출처의 신뢰성, 민족문제연구소(임준열)의 행태 및 의도에 대한 냉철하고도 엄중한 추적조사 및 평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 한 임준열(任俊烈), 일명 임헌영(任軒永) 씨는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 “1941년 경북 의성군 금성면 구련1리에서 태어났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다른 기록에는 1941년 1월 생으로 임헌영이라는 필명 외에 ‘한미정 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해 온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임준열(임헌영) 씨는 “1974년과 1979년 2차에 걸쳐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됐으며 1998년에 복권됐다.”고 홈페이지에 약력을 소개하고 있다.
任 씨가 태어난 1941년 즉 소화(昭和) 16년에는 우리민족이 충성하려야 충성할 수 있는 ‘祖國’이 없는 시절 이었으며 따라서 그의 출생신고를 한 곳은 ‘조선총독부’ 지배하의 의성군 금성면 사무소에 단기(檀紀) 4274년이나 西紀 1941년 대신에 ‘昭和’ 16년 1월 며칠 생이라고 출생신고를 했을 것이다.
따라서 소화 16년 1월 생 임준열은 싫고 좋고 없이 일제식민지 조선의 황국신민(皇國臣民)이 된 것이다.
임준열 씨도 몇 해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기 전에 ‘국민학교’에 취학을 하여 뜻도 모르는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어떤 놈에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90도 최경례로 동방요배를 했을 것이며, 남이 하는 대로 ‘덴노헤이까 반자이’를 외쳤을 것이다.
어쩌면, 임준열 씨는 다섯 살 어린나이에 맞은 ‘해방’의 뜻이 무엇인지, 해방과 동시에 마음껏 충성을 바쳐 애국할 나라가 생기게 됐다는 것조차도 몰랐을 것이며, 이는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비극’ 그 자체이다.
이런 정황에서 1917년생, 박정희라는 식민지 조선출신 청년이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 한 것이 친일이면 왜왕에게 동궁요배를 하고 덴노헤이까 반자이(天皇陛下萬歲)를 불렀을 임준열 씨 부형을 비롯한 식민지 조선 백성들은 친일파인가 여부도 따져 볼 일이 아닌가 한다.
임준열 씨 자신은 또 어떠했는가? “1974년과 1979년 2차에 걸쳐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됐으며 1998년에 복권됐다.”고 늘어놓은 경력을 정말로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임준열 씨가 내세운 두 차례의 투옥 중 하나가 대한민국에 애국하다가 감옥에 간 것이 아니라 소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지난 2006년 3월 14일, 반국가단체 남민전 관련자를 민주화인사로 결정하여 아직도 논란이 진행 중인 사안을 이름이다.
이에 대하여 대한민국 정부기관에서 발행 한 사건기록에는 37세의 文人 임준열씨가 1976년 11월 李OO 씨 소개로 반국가단체 남민전 산하 ‘민투’에 가입, 한미정이라는 가명으로 활약하다가 1977년 4월 1일 李OO 씨를 대신하여 민투책 서리로 활동한 것으로 명시 돼 있다.
기록에 의하면, 任 씨는 남민전이 북과 연계를 모색할 당시 일본을 통해 월북한 安OO에게 재일교포 시인을 연결시켜 주었는가 하면, 1977년 7월 1일 반국가무장투쟁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전사로 승격되어 1977년 10월 2일 남민전 총책 이재문의 지시로 “김일성에게 보내는 서한”을 기초 하는 등 적극 활동한 것이 그가 내세우는 ‘민주화투쟁’ 경력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실체를 부정하고 남침전범수괴 김일성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정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여 연방제 통일을 목표로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와 탄약, 폭발물을 절취하고 투쟁자금 마련을 위해 금은방 강도와 재벌기업가 습격 등 범죄행각도 불사한 남민전 가입 활동은 아무리 너그럽게 본다 해도 민주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활동이었다.
22세 식민지 출신 청년이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할 방편으로 ‘혈서 한 장’ 써준 것이 용서 못할 친일이었다면, 대한민국 하늘 아래서 세상물정을 알만큼 알았을 37세 중견문인이 골방에 숨어서 남민전 강령규약을 낭독하고 칼날을 잡고 선서를 하고 김일성에게 충성의 편지를 쓰는 등, 문인 임준열로서가 아니라 남민전 한민정으로서 활동한 행위는 애국이 아니라 반역이었음이 자명한 것이다.
충성을 바칠 조국이 없는 식민지 청년이 혈서 한 장 쓴 것과 멀쩡한 조국 대한민국 정부를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이 체제를 전복하여 “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연방제적화통일”에 앞장섰다면, 두 경우 중 어느 것이 더 악질적 반역일까?
순수하게 민주화운동을 했다면 간첩처럼 범죄집단 조직원처럼 ‘가명’은 왜 필요 했는가? 대한민국 태극기 대신에 인혁당 사형수 내의를 수집하여 염색해 만든 남민전기는 왜 필요 했으며 ‘남조선민족해방’ 이란 누구를 위한 해방인가?
아울러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악질적 친일행각이 백일하에 드러난 열린우리당(민주당) 신기남의 부친과 이미경의 부친, 만주국 경찰 특무로 독립군을 토벌한 김희선의 부친 등의 친일은 당초 명단에서 제외시키는 등 물의를 빚은 ‘편향적’ 행태는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이번에 폭로 된 자료의 신빙성과 출처의 신뢰성은 엄밀하게 검증 평가 돼야 함은 물론이지만, 소위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에서 보듯, 의도적 조작과 왜곡의 명수들인 친북성향의 단체 및 개인이 제시한 자료나 ‘말’은 액면 그대로 믿을 수도, 덮어놓고 믿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가르쳐 준 ‘김대업의 교훈’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실 예로, 2008년 여름 100촛불폭동의 도화선이 된 ‘MBC PD 수첩’ 프로그램에서 20대 미국인 여성의 사인을 놓고 ‘CJD’ 라는 병명에 소문자 v를 덧붙이는 너무나 간단한 조작으로 광우병을 뜻하는 ‘vCJD’로 만들어 세상을 뒤집어 놓은 사례에서 보듯 조작과 왜곡 모략의 천재들이 하는 짓을 액면대로 믿어서는 어떤 재앙을 초래 할지 모르는 게 사실이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려는 ‘목적’을 위해 ‘혈서’라는 수단을 동원한 20대 초반 식민지 청년의 방편적 친일보다는 대한민국 정부를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목적’을 위해서 반국가단체에 가입하여 남침전범수괴 김일성에게 충성의 편지를 쓰고, 예비군 총기 탄약절도, 금은방 강도짓과 기업가 습격등 범죄 ‘수단’을 동원한 자들 의도적 친북이 몇 백배 더 악질이다.
식민지 청년 박정희가 ‘혈서’로 일제를 속이고 만주국 군관학교 입교 사정관문을 뚫었다고 ‘친일의 증거’로 삼기에 앞서서 어엿한 독립국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임준열이 대한민국의 실체를 부정하고 ‘남조선민족해방전선’ 투사로 가입하여 ‘한미정’ 이라는 가명으로 정체를 숨기고 남침전범수괴에게 충성의 편지를 쓴 ‘악질 친북의 증거’ 부터 밝혀야 한다.
소위 김기설 유서 대필 사건에서 보듯, 몇주전, 몇달전 문서나 기록도 못 믿는 세상에 원본 유무와 출처도 소장자도 밝히지 않은 70여 년 전 ‘만주신문’ 복사물을 전적으로 믿기는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며, 수천년 묵은 국보급 문화재도 위변조 해내는 세상에 남민전 전력자가 발표한 자료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70년전 만주신문이 아니라 1400년 전 신라 황실문서도 드라마 소품으로 영화 소품으로 얼마든지 만들어 내고 심지어는 엊그제 발행 된 5만원 권 신 화폐도 ‘진짜’ 처럼 만들어 내는 세상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아무런 검증이나 확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자료를 액면대로 믿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왜놈의 나라 이야기이긴 해도 2000년 11월 5일자 일본 마이니치신문 1면 톱기사에 저명한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 미야기(宮城)현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지에서 70만 년 전 전기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 됐다고 교과서에까지 실렸던 업적이 ‘허위조작’ 된 사실로 밝혀져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실에서 보듯 70만년 전 유적도 조작해내는 세상에 70년 전 기사가 조작 되지 않았다는 증거 또한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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