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는 16일 “억척불변의 김정은 총대”를 자처하면서 “최고사령관 동지의 사상과 뜻을 받들지 않고 딴 길을 걷는 자, 최고사령관 동지의 영도를 거세하려는 자들은 그 누구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끝까지 찾아내어 잿가루도 남지 않게 불태워버리겠다”는 광기(狂氣)어린 충성맹세를 하였다.
김정은 좌측 바로 옆자리를 꿰찬 최룡해는 17일 추모연설에서 한국을 “극악한 민족 반역의 무리”, 미국을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압살하려는 날강도 미제”라고 규정하면서 “전쟁은 광고를 내고 하지 않는다.”며 “침략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반드시 성취하고야 말 것” 이라고 다짐을 하였다.
최룡해의 이와 같은 언동에서 김정은에게 ‘절대충성(絶對忠誠)’을 과시하면서 군부 실세로서 위상과 결의를 다진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자신에게 언제 닥칠지도 모를 재앙과 위험에 대한 우려와 공포를 스스로 떨쳐버리고 “일단은 살아남고 보자”는 처절함마저 엿보인다.
최룡해는 만주공비시절 김일성의 선배이자 소력극동군 88정찰연단 한인정찰대 동료 최현(崔賢, 1907~1982, 인민무력부장)의 차남으로서 공산혁명 후비대(後備隊)로서 인민군을 비롯해서 각 직장 및 지역단위까지 전국적으로 조직된 청년동맹을 이끌면서 김정일에게 무한충성을 맹세하는 “수령 결사옹위 800만 총폭탄” 구호를 만들어 낸 아부와 처세의 달인으로서 실질적 2인자라는 권력의 정점에 도달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룡해가 숙청에 대한 불안과 처형에 대한 공포를 떨치지 못하는 까닭은 부친인 최현과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관계, 최룡해 본인과 김정일 김정은 부자와 관계 등 김정일 가문과 최룡해 가문 간에 드러나지 않은 악연(惡緣) 때문일 것이다.
최현이 김일성보다 다섯 살이나 위로서 김일성의 선배 겸 동료이자 1958년 종파사건과 1968년 말 군부숙청사건 당시 김일성 1인 독재체제 구축의 특급공신이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 진 사실로서 1969년 민족보위상(1972년 이후 인민무력부장)에 발탁 영화를 누리다가 1976년 5월 오진우에게 밀려나 1982년 4월에 사망한 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현이 김일성 우상화에 이의를 제기하고 김정일 후계체제에 반대 하던 남일(南日, 63세, 6.25 당시 인민군총참모장)을 1976년 3월 7일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제거한 김정일과 오진우가 부주석 최용건(崔庸健, 76세)을 연금하고 1976년 5월 14일에는 현직 인민무력부장 최현을 관저에서 체포하는 과정에 총격전까지 있었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1976.6.5, 동아일보 경향신문)
그보다 더 극적이고 심각한 것은 김일성보다 12살이나 선배인 우상화 걸림돌 최용건이 1976년 9월 19일 때 맞춰 병사(病死?)를 해준 데에 이어서 1982년 4월 10일 최현이 병사(病死)한 것으로 발표 됐지만, 사실은 김정일에 의해 독살(毒殺) 됐다는 소문과 의혹이 내외에 무성했다는 점이다.(1982.4.22-23 동아일보 경향신문, 1984년 3월 15일 경향신문)
김일성 김정일이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으로는 반혁명종파분자로 몰아 공개처형, 교통사고로 위장 길거리에서 처단, 관저나 숙소에서 병사로 위장한 독살 등 고전적이고 악랄한 수법을 사용해 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1976년 5월 14일 인민무력부장 최현 관저에서 총격전은 여러 경로로 확인 된 사건이지만, 1982년 4월 10일 최현 병사가 독살 이었느냐에 대한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다.
다만 부친의 숙청과정을 지켜 본 최룡해가 최현 독살설에 대한 의혹을 품지 않았을 리가 없으며, 어쩌면 독살의 흉수(凶手)와 진상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김정일이 최현을 독살한 것이 사실이며, 그에 대한 진상을 최룡해가 이미 알았다면, 최룡해가 김정은을 위해 “억척불변의 김정은 총대”가 되기 보다는 김정은은 아비를 죽인 원수의 자식으로서 불구대천(不俱戴天), 살부지수(殺父之讐)에 대한 보복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얼떨결에 후견인(장성택)을 처단하고, 소련극동군 88 정찰여단 빨치산혁명가계 원로와 2.3세에게 겹겹이 포위된 30세의 어린 김정은으로서는 당장에 권력유지도 벅찬 상황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최룡해를 일시에 제거하거나 정면으로 대적 하기엔 벅찬 상대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김정은으로서는 최룡해와 오월동주(吳越同舟)격 공존(共存)이 불가피 할 것이며, 최룡해도 불가불 ‘적(敵)과 동침(同寢)’ 관계를 유지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불편한 동거가 누구에 의해 어떤 모양으로 끝장 나느냐는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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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는 16일 “억척불변의 김정은 총대”를 자처하면서 “최고사령관 동지의 사상과 뜻을 받들지 않고 딴 길을 걷는 자, 최고사령관 동지의 영도를 거세하려는 자들은 그 누구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끝까지 찾아내어 잿가루도 남지 않게 불태워버리겠다”는 광기(狂氣)어린 충성맹세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