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한계의 원인은 국민의식 수준
무려 13년이란 세월을 우리가 선진국으로 향하도록 국민의식의 전환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우려했던 대로 우리는 다시 후진국으로 향하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 글을 띄운다.
적어도 여기에다 우리 국민의식 수준에 대해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독설이라도 쏟아보고 싶다. 우리 국민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인간적이고 장점도 많다. 그러나 사회의식과 미래지향적인 자세는 지극히 무지하여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무책임한 구경꾼에 불과하다.
이는 물론 각자에게 책임도 있겠지만 후진적인 역사에서 물려받아진 공통적인 국민성이다. 우리 한국은 선진국에서 도입된 갖가지 문화, 종교, 유행, 법, 제도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당초에 비뚤어진 국민성은 바꾸지 못했다.
이는 일반 후진국들이 민주주의를 시작하면서도 과거 의식과 관습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과 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이 글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길 바라면서 너무나 잘 알면서도 아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던 뜨거운 감자(국민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바다.
1.공무원이 부러움의 대상인 사회
공무원은 국민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밑에서 받쳐주는 것이 의무다. 그래서 사회 전반이 거두어들인 보람을 한발 늦게 취득한다. 대신 공무원은 안정된 직장 생활과 상당한 권한을 공명정대하게 행사한다는 명예와 자부심이 장점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 내내 공무원이 중간에서 부정부패(뇌물, 청탁, 압력, 유착, 향응 등)로 국가 경쟁력을 빼먹었으며 다수 공무원들은 부정한 동료들을 수수방관했다. 이는 역사에서 탐관오리들의 습성을 자동으로 대물림 받은 꼴이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혈안이다. 이는 한국이 국제 경쟁력과 잠재력을 잃었기 때문에 제도권내의 안정된 직장을 찾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이 세계 속에서 당당한 자신감을 상실한 채 내리막으로 향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2. '민주주의 역사 겨우 50년'이라는 변명에 대해
선진국은 상상에 가까웠던 개인의 자유와 평등, 사회적 인권과 복지라는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법과 제도를 통해 현실화 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모방해서 민주주의라는 옷만 걸쳤다. 때문에 한동안 법과 제도에 의해 국민이 탄압 당했으며 존엄성도 짓밟혔다. 하지만 총체적인 반성과 근본 원인 분석 없이 혼란과 대립과 분열이라는 국민의식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한계들을 끊임없이 노출시켰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누구도 국민성(뜨거운 감자)을 감히 거론하지 못한다. 또한 국민들도 역사 내내 위기와 체념에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위기에 무덤덤하다.
우리는 민주주의 50년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만 받아들인 나머지 부정부패조차 해결하지 못한 국민성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와 내리막길은 단순 시행착오가 아니라 국민의식이 빗나갔던 죄 값을 지불하고 있다.
3. '어느 사회나 문제는 있다'에 대해
한국은 개인의 입신양명과 부귀영화가 중요한 목표와 관심사다. 그래서 특별한 능력 발휘나 공헌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욱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찾는다. 그리고 서로 모여서 돈벌이를 화제로 삼는 사이에 사회 전반은 부정과 부패로 전체 사회가 엉망이 되었다.
이처럼 돈벌이와 이익에는 적극적이고 철저하다. 하지만 사회 문제에 대한 협력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원론 수준에 머문 채 답답하기만 하다.
유럽은 자녀(후손)에게 아름다운 세상과 인간다운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 최대 관심사다. 그래서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되면 각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한다. 특히 인간끼리 비교하고 경쟁시키기보다는 개인의 존엄성 발휘를 유도해주고 우호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는 자녀(후손)에게 너무 많은 문제를 떠넘기고 있다. 이는 과거 조상이 우리에게 남겼던 차별이나 악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망국의 씨앗을 안겨준 셈이다. 이미 선진국 학자들은 "한국은 지나친 비교 경쟁 때문에 참다운 경쟁력과 잠재력까지 잃을 것"을 수차례 충고해왔다.
4. '역사 발전 과정'이라는 생각에 대해
인간 다수가 모인 '사회'를 '시대 변천 과정', '역사 진보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지다. 역시 '사회 수준'을 설명하면서 마치 '개인의 운명'처럼 때를 기다리고 인내하며 상황을 관망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도 무지다.
인간은 합심해서 세상과 사회와 인생을 만들어서 더욱 아름답게 가꾸는 주체이고 주인공이다. 특히 인간은 역사 발전 과정을 입증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와 역사를 이루는 당당한 주체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발휘와 협력(역할 분담과 견제)이 절정에 이르면서 얻어진 최상의 성과이며 보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 존엄성이 무참히 짓밟혔던 과거(신권, 전체, 왕권, 관료주의)에서 의식과 습성과 생활이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국민의식을 반성하지 않고 옷만 걸쳐버린 나머지 계속 혼란과 부작용을 겪다가 결국 내리막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우리 국민이 선진의식으로 바꾸어지기 위한 개인적 반성, 사회적 교육, 국가적 전환점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과거 빈곤과 열등감이 반대로 발산되면서 마치 대단한 국민처럼 미화하며 자아도취 되었다. 그리고 문제가 터지면 "모든 일에는 과정과 때가 있다."고 역사적 식견을 갖춘 엘리트처럼 떠들었다. 이제라도 "시대 변천과 역사 진보"는 사학자에게 넘기고 사회와 시대를 만드는 주체로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
5. 사회의식의 장애인들이 해대는 상투적인 주장
"100% 완벽한 사회는 없다.", "문제없는 사회는 없다.", "혼자 나선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꺼번에 완전할 수는 없다."
이런 표현은 아무 문제도 없는 평상시에 통용되는 원론 수준의 일반 논리다. 그런데 문제가 터져서 치밀한 원인 분석과 논의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의외로 이런 이야기가 잘 먹혀든다.
일단 문제가 터지면 원론보다 사안에 충실해야 체계를 잡아갈 수 있다. 그러나 관계자들이 자기 부정과 무능을 서둘러 봉합하기 위해 상투적인 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우리 사회는 곳곳에 문제들이 널려있다.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국민이 진심으로 추켜들면 점차 문제없는 사회로 바뀌어가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과 기회를 얻게 된다.
6. 왜 문제아를 당연하게 취급하는가
우리 사회는 문제도 많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좋은 사람도 많다."라며 문제를 방치한 채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 그런 사이에 그들이 다시 향락, 패륜, 폭력, 부패 등 타락과 범죄를 확산시켰다.
이처럼 문제를 당연하게 취급하는 것은 과거에 상놈을 당연하게 여긴 채 양반(관료)이 되면 그만 이라고 여겼던 저질적인 습성이 무의식에 너무나 깊이 뿌리 박혀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회나 타인이야 어떻든 아직 자기는 살만하고 버틸 만 하다는 이야기다.
이는 우리가 아직도 후진국 국민성이라는 증거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어떻게든 기득권이나 특권에 합류하기 위해 혈안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서 일반 서민이나 열심히 땀을 흘려야 할 젊은이들까지 황금만능으로 흐르거나 일확천금을 꿈꾼다. 이런데도 밑바닥 국민성을 연구, 대안을 내놓은 사람이 없으며 거론하는 사람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간 한국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항상 함께 했다. 이를 알면서도 국민들은 계속 자기 위쪽만 쳐다보고 살았으며 결국 자녀들까지 살벌한 경쟁 판으로 몰아 넣어버렸다. 물론 한국 사람이라면 매일 터지는 문제들에 무감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이 주인 자격으로 나서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조물주나 영웅이 만들어주길 기다린다. 이처럼 말짱하게 생긴 민주 시민들이 오직 생각에서 생각으로 끝난 사이 반복되는 부패와 실정에 대한 실망감이 깊어지면서 불신만 팽배해졌다.
결국 무지한 국민의식 수준을 알아차린 부정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전면으로 나섰으며 더욱 엉망을 만들어놓았다. 이런 지경에도 국민들은 각자의 입장과 성질대로 비난하고 흥분하다가 잊어버린다.이는 식민지 시절의 피동적인 노예 근성과 왕권주의에서의 천민의식을 반성하지 않고 곧바로 호의호식을 위한 관심과 행위로 빗나갔기 때문이다.
7. 국내 학교 교육이 한몫 차지해
우리 국민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사고력이 풍부한 학창 시절(12년에서 16년)을 교실에 앉아서 선생이 가르쳐준 내용만 받아들이고 살았다. 밥으로 따지면 농사는 짓지 않고 먹여준 밥만 받아먹고 산 꼴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다양한 체험, 뭔가에 진지하게 몰두해볼 마음의 여유, 세상과 사회와 인간에 대해 나름대로 관계를 정립할 시간적 기회, 자기 인생을 스스로 고민하며 체계를 형성하는 자율적 사고 체계가 지극히 제약을 받았다.
이 때문에 모든 국민이 의식적인 장애를 받게 되었으며 창의력과는 무관한 어린아이 정도의 수준으로 전락되었다.
학생들은 한달 성적을 목표로 삼는 근시안적이고 얄팍한 암기나 순위 경쟁으로 인해 내면의 잠재력까지 망가졌으며 오히려 사람 망치는 교육을 받은 꼴이다. 결국 학생들은 단기간에 암기한 내용을 측정해서 점수로 환산하고 그에 의해 대학과 직장과 인생과 미래까지 해결하는 단세포적인 속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결국 잠재력과 경쟁력이 고갈되자 지위와 연줄과 청탁과 압력을 동원해서 부패와 유착과 기득권 세력을 형성했으며 특권까지 누리는 졸부들이 판치는 사회가 되었다. 이는 대통령과 정치인과 지식인과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동양적인 사고가 한계에 도달되어 실체를 드러낸 셈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고 해보아야 기원전, 몇 백 년 전에 남들이 이루어놓은 것들이다. 이를 오직 개인의 머리로 외워서 그 결과를 가지고 인생 전체를 해결(미래까지 해결)해버린 무능하고 기득권적인 사회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인류 사회에 당당하게 나서서 연구하고 공헌하며 앞장서서 이끌어가기보다 학창 시절의 암기를 무기로 계속 얻어질 것(지식, 점수, 대학, 직장, 결혼, 성공)만 염두에 두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피교육자 대부분은 요약된 내용을 족집게처럼 시험용으로 암기한 얄팍한 수준이며 학문 연구와는 전혀 관계없는 공부를 해왔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아느냐 모르느냐"에 집착이 심해서 거의 병적일 정도다. 심지어 초등학생도 "학교에서 안 배웠다. 선생님이 안 가르쳐주었다."라고 따진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 이상으로는 알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들은 "단지 관심이 없을 뿐 모르는 것은 아니다."라는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평생 머리에 주워만 담고 살았기 때문에 실천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래서 한국인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평소에 생각하는 것과 행동이 정반대이거나, 무질서하게 제각각 따로 움직이는 거대한 위선자로 이루어진 사회다.
그리고 의식의 본바닥이 드러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서 화를 내며 감정적으로 흘러버린다. 자기 잘못이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에서 사회의식과 미래지향적인 사고와 진지한 논의를 기대했던 자체가 언어도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암기가 성적을 좌우한 최고의 지름길이었던 나머지 불성실한 것(후천적인 노력)보다 영리하지 못한 것(선천적인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머리는 있는데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모를 닮아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기 위해 자식을 나쁜(불성실한) 아이로 몰아버린다. 이런 지경에도 암기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4합5락이니 3합4락이라고 한다.
종합 인격체인 인간이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극도로 억제된 삶, 피해의식에 절어버린 삶, 강요와 세뇌 속에 미화된 삶,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에 한껏 부풀어 오른 천박한 의식, 외우기를 위해 잠(본능)까지 참는 악착같은 삶을 자랑까지 해왔다.
이미 온 국민이 장기간 동안 외우기와 순위 경쟁에 세뇌 당한 채 자식에게까지 저주를 대물림시키고 강요해왔다. 결국 부지불식간에 의식의 밑바닥에 커다랗게 구멍이 뚫리면서 창의력과 국가 경쟁력은 물론 미래 잠재력까지 까먹었다. 결국 사람들만 밀집해서 왁자지껄 바글바글 모여 사는 동남아시아의 일반 국가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천재들이 암울한 역사와 뼈아픈 생활에도 불구하고 혼신을 쏟아서 이루어놓은 업적들을 얄팍한 머리로 암기해서 개인의 목구멍 해결과 입신양명은 물론이고 부귀영화까지 얻으려는 욕심으로 치달았으며 교육 정책까지 부채질했다.
그리고 이를 개인의 자부심과 능력으로 착각하면서 망국적인 역사에서 물려받은 이기심, 권위, 기득권, 특권, 패권까지 거머쥐려고 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사회든 국가든 인간성 밑바닥에 뚫린 구멍을 방치한 상태로는 아무리 많이 투자하고 가르치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시행해도 결국 부작용뿐이며 내리막을 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로 한국이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고 망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참다운 진리는 없는 셈이다.
8. 많이 배웠지만 아는 것은 별로 없는 사회
한국인은 너무나 많이 배웠다. 그래서 알기도 많이 안다. 하지만 학문이든 법과 제도든 과학 문명이든 종교든 우리 힘으로 직접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이는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서적을 입과 머리로 줄줄 외워서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것이 성공과 출세를 보장받는 지름길이었다.
결국 한국은 태권도와 김치를 제외하고는 아침에 화장실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문화 문명 종교 학문 유행이 모두 외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것"과 "고유의 것"을 주장한다면 벌거벗은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이처럼 불필요하게 아는 것(개인적인 목적)이 많은 가운데도 "어떻게 하면 사회가 정상 궤도를 찾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훤히 눈을 뜨고 보고 들으면서도 "그렇게는 안 된다."는 부정적인 내용은 마치 귀신처럼 잘 안다.
실패를 점치고 거절하는 것은 대통령만큼이나 권한도 세고 박사만큼이나 결론도 잘 낸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나 가능성으로는 말단 신입 공무원보다 아는 것도 없고 권한도 없다. 이는 국가 사회 인생에 대해서 진지한 애정과 관심이 없었음은 물론 존엄한 자기 사고를 활용하지 않고 살았다는 증거다.
다시 말해서 일을 찾고, 일을 만들고, 일을 연구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시간 할애나 노력이 전무 한 채 이미 만들어진 그대로 관행대로 살았음을 의미한다.
미국은 알몸으로 영국을 떠나서 전 세계를 상대할 정도의 거대한 국가를 만들었다. 그래서 현재보다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서로 만나서 협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화성 탐사 등 갖가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면 겨우 "먹고 살 충분한 돈을 벌어놓지 못했다."라고 변명한다. 함께 협력하면 먹고사는 정도뿐만 아니라 더욱 좋은 복지 사회가 만들어짐에도 패배주의와 피해의식에 젖어서 변명하기에 바쁘다.
이는 민주주의에 관계없이 오직 빈곤 탈피와 부귀영화가 목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사고 속에 인류 미래와 인간다운 품위와 질적 사회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증명이라도 하듯이 일반 국민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먹고 마시며 놀다 끝나는 계방(모임) 민족이다.
그리고 애경사나 동창회나 동호회가 사회성과 인간미를 발휘하고 사는 주요 터전이다. 심지어 노름판과 술판을 기웃거리며 인생이 저무는지, 나라 망하는지조차 무관심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진심으로 사회를 걱정하며 참다운 일을 해보려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진척이 지지부진하다.
9. 민주주의적 자질로의 전환을
하늘과 땅에 의존해서 일정량을 수확하는 농경지 사회라면 공산주의도 무방하다. 함께 일해서 공평하게 나누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양반과 관리들이 뒷짐 쥔 채 손 하나 까닥 않고 백성의 땀과 피를 빨아서 호의호식하며 자자손손 부귀영화까지 누렸던 비극과 저주로 점철된 역사다.
장기적으로 공산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잠재력을 살려주지 못한다. 때문에 사회를 수량과 평균적 개념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다. 특히 유기적인 경쟁 속에서 협조가 필수적인 복잡한 산업 사회에서는 공산주의는 발붙일 곳이 없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망했다.
신분 차별과 탐관오리가 들끓었던 우리 역시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 허약한 역사로 일관했다. 지금도 한국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는 현대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빈곤이 해결되면 구성원들은 합심해서 세상과 미래 전반으로 관심사와 생활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 다음 종합적으로 돌아오는 결실을 공통 복지와 질적 사회로 상승시켜서 보람을 공유해야 한다. "일본은 국가가 부자지만 한국은 국민이 부자."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욕심과 야심(역사적 열등의식)에 불이 붙어서 입신양명과 치국평천하로 나가버린다. 잘 사는 것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으로 바뀌는 괴상망측한 사회다.
이는 동양적인 사고방식(개인의 입신양명, 부귀영화, 치국평천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을 고통과 불행에 빠뜨리고 살생하는 삼국지 같은 소영웅주의와 비민주적인 저질의식)의 영향이다. 이는 "한국인들은 서로 어려울 때는 잘 돕지만 살만해지면 서로 빼앗고 싸우며 죽인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10. 당부의 말
끝으로 내가 오래 전에 걱정했던 것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노력과 주장은 허공의 메아리로 반향조차 없다. 강산이 변할 정도의 기간 동안 많은 노력을 쏟았기 때문에 원인 분석과 구체적인 대안이 훤히 준비되어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를 상대로든 낱낱이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체계를 잡아 줄 수 있다.
이제 한국은 대대적으로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하면 급격히 허물어지게끔 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의 출현으로 시기가 앞당겨졌으며 그만큼 국민적인 전환의 시기도 빨라진 셈이다. 그래서 위기와 동시에 기회다.
암울했던 역사로 인해서 우리 국민은 망한다는 위기가 닥치거나 어렵고 불쌍한 경우에 인간미를 발휘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한 미래와 선진국 실현을 위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협조하고 참여해야 할 때다.
애주가는 스스로 술집을 찾고, 노름꾼은 화투판으로 모여든다. 돈을 쫓는 사람은 경마장과 주식 시장과 부동산으로 몰려든다. 도를 구하는 사람은 깊은 산 속도 찾아간다. 하듯이 우리 현실과 나라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일 때다.
세상을 살면서 어쨌든 함께 해야 할 사람과는 기어코 함께 하려는 자세와 실질적인 실천이 중요하다. 서로 만나서 의견이 달라서 잠시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올바른 사람끼리 서로를 포기하면 세상에 사는 동안 함께 할 사람을 한 명도 못 만날지도 모른다. 이는 너무나 무의미하고 지루한 삶이다.
서로 뭉쳐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존엄할 수 없으며 모여서 함께 살 이유도 없다. '인간의 문제', '인간이 모인 사회 문제'는 머리를 맞대면 언제든지 해결이 가능하며 시간도 앞당길 수 있다. 진정한 역사는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 담겨있다.
이 때문에 성공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함께 나서야 할 일을 앞에 놓고 각자의 이익과 성패를 따지면 진지한 과정이 생길 수 없다. 특히 인류 역사는 족집게 점쟁이의 머리 속이나 조물주를 향한 기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난국에서는 구성원들이 피곤하고 힘겨운 선택을 자처하느냐에 따라서 성패는 물론이고 그 다음의 사회 수준까지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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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국의 실상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정치인, 공무원, 경제인 모두 권력이란 항목을 차지하고 있다.
원래 정치는 권력과 지위, 공무원은 지위, 경제인은 부를 가지면 된다. 그런데 정치인, 공무원 ,경제인 모두가 권력을 갖고, 내친김에 부를 가져야 하면 당연히 지위가 높아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왜? 행태적 사상적 근원을 따질 필요도 없다. 원인은 가까이에 있으며 치료법도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너도나도 "속도"에 미쳐있다. 속도전에서 조금만 뒤쳐져도 낙오자가 됐다는 자조가 터져 나올 정도다. 정부 특히 정치인은 속도전을 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국회원의 속도전은 노벨상 감이다. 즉 평소에 펑펑 놀다가 회계년도 다 지날 쯤 일사천일로 법안을 처리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속도감있게 처리한 일의 내용은 전혀 모른다. 그리고 법을 집행해보면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가 생기면 권력있는 자를 찾아가서 해결하려 든다. 돈이 필요하다. 어거지 얘기지만 돈벌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평소에 노는가 보다. 제대로 법안을 처리하면, 국민을 편하게 하는 법안을 만들면 돈벌이 안될까봐 걱정인가?
실은 국민들이 혈연, 학연, 지연이라는 귀에 못박히도록 들어온 것만 배격해도 쓰레기 국회의원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속도전을 펴지 않게 되고, 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대화할 시간이 생기며 대화를 하다보면 왠만한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된다.
시간이 화살과같이 빠르다는 말이 있다. 시간이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제는 시간을 (1)일을 빨리 처리하는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쓸것인가? (2) 시간을 어떻게하면 여가에 효율적으로 잘 쓸 것인가?에 연구를 해야 할 때다.
한쪽으로 치우친 시간 개념, 빨리공부해서 빨리 돈벌어 빨리 빨리 출세하고 빨리 영광을 누리고 싶은 쪽만 우리는 보고왔고 그런 교육을 받아왔다.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우선 "쓰레기 정치인"부터 청소하는 작업이 1차적으로 벌러져야 한다. 그다음 시간 활용법을 배우면 된다. 어린아이에게 성인들처럼 빨리 뭔가되라고 다그치는 교육이 문제다. 쓰레기 청소후에 교육을 논해도 그리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