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蒙古에도 조선족 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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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蒙古에도 조선족 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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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 민족문화 씨 뿌리는 사람들

 
   
  ▲ 네이멍구 조선족소학교 학생들
동화대회에 입상한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유목민의 고향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초원에 조선족 특유의 문화가 새롭게 전파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조선족 언론에는 잘 알려진 네이멍구 자치지역 내 조선족학교들과 조선족향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민족문화를 꽃피우고 있으며 최근엔 조선족 가정식 박물관이 세워져 네이멍구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민족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네이멍구 지역에 조선족촌이 있다는 얘기는 아직 한국에선 생소하다. 헤이룽장성 수도인 하얼빈의 서북방에 위치한 치치하얼에서 버스로 2시간 남짓 서북쪽으로 더 가면 후룬바이얼(呼倫貝爾)시 초입에 위치한 아룽치(阿榮旗)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한다.

만주어로 '깨끗하다'는 뜻의 '아룽'이라는 예쁜 이름에 치(旗)라는 몽골식 행정단위(우리의 군/면 단위)가 합쳐져 아룽치로 불리는 이 작은 도시에는 1930년대부터 한반도와 만주로부터 조선인들이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있는 신발(중국명 신파,新發)이라는 마을이 바로 네이멍구에서는 향(鄕)급으로서는 유일한 조선족자치지역이다. 네이멍구 지역에서도 간혹 조선족이 주축이 된 마을은 보이지만 향급 이상 규모의 조선족 촌으로서는 거의 유일하다.

신발조선족향 외에도 네이멍구자치구 역내에는 우란호트(烏蘭浩特)시의 '삼합촌'이나 퉁랴오(通遼)시의 '선광촌'과 같은 조선족 마을이 있긴 하다. 이 두 마을은 관광촌 형태를 띠거나 조선족이 주축이 되어 한족과 몽고족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규모나 문화적 특성에서 볼 때 이 신발조선족향이 네이멍구에서는 가장 큰 조선족 집단촌이다.

이 조선족자치향의 윤창길(尹昌吉,47) 향장. 조선족 매체인 길림신문 등에 몇 차례 소개된 윤창길 향장의 민족사업 이야기는 실로 눈물겹다. 향장으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마을을 건설하고 가꾼 윤 씨는 아룽치 법원의 판공실 주임(국장급)의 지위를 버리고 9년 전 이 민족촌 재건사업에 투신했다.

공직자로서의 전도양양한 앞날보다 윤 씨에게는 시골마을 향장이 좋아보였던 것일까? 그가 본 미래는 향장인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조선족의 삶과 문화의 미래였던 것이다. 한 때 3천명에 이르던 조선족 인구가 지금은 1,236명으로 줄었으나 아룽치에서 가장 면적이 작고 가장 가난하던 이 신파향은 현재 지역 내 최고 소득의 부촌이 되었다. 윤 향장의 동분서주가 가져 온 눈부신 발전의 결과였다.

신발향의 총 인구는 9천여명이며 몽고족, 한족, 다우얼족, 만주족, 시버족 등이 함께 살지만 조선족들은 수 백여명 씩 따로 집거하고 있다. 우선 윤 향장은 자신부터 민족 향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조선말과 문화를 다시 배우고 생활화했다 한다. 전통가요와 무용까지도 마다 하지 않고 배운 그의 열정이 이 마을을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한 창조적 에너지를 제공한 셈이다.

윤 향장 부임 후 마을은 현대식 별장촌으로 급속하게 변모했다. 또한 지난 2007년에는 조선족 특유의 '경로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45만위안을 투입, 4백평방미터 규모의 초현대적인 아파트식 경로당을 건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중국 언론매체에서는 수 백 건의 기사로 소개된 윤창길 향장의 이 이야기는 길림신문에 '내몽골초원에 민족문화꽃 피운 신발향'(2009년12월2일자, 박명화 기자)이란 제하의 기사로 자세히 소개되면서 한국 인터넷에도 알려졌다. 윤 향장은 현재 가뭄방지와 논우물 건설, 논길과 다리 건설을 위해 재정자금을 1000여만 위안(약 18억원)을 신청해 놓고 있다.

7월 말 경이면 이 신발향에서는 조선족문화축제가 열린다. 널뛰기와 그네타기 등 민속놀이는 물론 조선족 고유음식과 함께 효도문화를 외부인들에게 알리고 있다. 아룽치의 생태관광과 문화관광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윤 향장은 마을에 민족문화박물관도 세웠다. 150평방미터 면적에 조선족 민속품과 민속 공구류, 문화체육 전통도구들, 음식취사도구류, 생활거주류, 민족복장류 등을 전시했다. 이 전시품들은 모두 윤 향장이 연변 등지에서 수집해 온 것들이다.

며칠 전인 19일에는 이 신발조선족향에서 승용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멀지 않은 짜란툰(札蘭屯)에 조선민족 가정식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비록 20평방미터의 작은 박물관이지만 조선족의 생활체험 공간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 박물관 내에는 '조선족 민속문물', '조선족 가정생활 습속', '민족의 영예'등과 시대별로 조선족의 생산도구, 생활용구, 장식품과 력사문화유물, 사진 등 1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을 만든 주인공은 중국의 전국 10대 우수 공익 자선모범으로 알려진 윤복(48)씨이다.

네이멍구에는 우란호트(烏蘭浩特)시에 조선족 중학교와 소학교가 나란히 2개 있다. 네이멍구 싱안(興安)맹의 행정 중심도시인 우란호트시의 인구는 약 29만명인데 그 중 조선족이 1만명 정도. 네이멍구에 사는 조선족의 절반이 이 우란호트에 모여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우란호트조선족소학교(烏蘭浩特市朝鮮族小學校)이다.

조선족소학교 하나 쯤은 있을 법도 하지만 10개의 학급에 270여명의 조선족 학생들이 한글로 공부한다는 사실은 새롭다. 1957년에 처음 세워진 이 학교는 2명의 교사에 10여명의 학생으로 시작되어 폐교와 병합을 거친 역사만 보아도 그 우여곡절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2004년도에 부임한 후 지금까지 이 소학교를 이끌어 온 도련화(都蓮花) 교장은 최근 학교 홈페이지(http://wulanchaoxiao.com)도 세련되게 꾸미고 네이멍구에서 조선족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애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학교 홈페이지가 서울의 여느 학교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점이다. 학급 이름도 '개미반', '귀염둥이반', '꽃사슴반'처럼 중국 소학교에 비하면 예사롭지 않다. 게시글이나 댓글을 둘러보아도 현대 한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놀랍기만 하다.

이 소학교는 한국의 경북 구미시 야은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홈페이지를 통해 학생과 교사 간의 온라인 우의를 다지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구미 야은초등학교 교사들은 조선족소학교 학생들에게 전통놀이나 문화, 개방학습 교습법 등을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학교는 지난 2005년도에 예산부족으로 폐교위기에까지 몰렸었다. 난방비가 없어 한겨울에도 벌벌 떨면서 수업을 진행했고, 교사들 역시 월급 한 푼 못 받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1970년 이전까지 몽골소학교에 합병되거나 폐교되는 수난을 거쳐 1984년 9월 새로 문을 연 이 학교는 한족학교로 전환할 위기에서도 네이멍구에서 민족교육의 불씨를 지피려는 도련화 교장의 끈질긴 노력에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2005년 폐교 직전에 처한 사실을 호소하는 도련화 교장의 딱한 소식이 연합뉴스를 통해 알려지면서 각지에서 '학교살리기' 도움의 손길이 답재했고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한국의 '재외동포재단'이나 '만리장성동호회'와 같은 단체들이 비품 기증 등의 크고작은 도움들을 주고 있으나 이 학교는 아직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할 만큼 중국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한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아니 우리 정부에서는 무슨 생각들을 하나, 궁금하다.

칭기즈 칸의 땅이자 유목민들의 터전인 네이멍구자치구에 이처럼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 그리고 동심의 꿈이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억센 풀뿌리와도 같은 한민족의 강인한 의지가 느껴진다.

오랜 세월 소외되었던 땅 중국 동북부의 경계지역 네이멍구. 천혜의 자연 관광자원을 가진 이 곳은 지금 세계 최대의 희소금속 매장지역이자 양질의 풍력발전 보고로 급부상하고 있다. 거기에 우리의 민족혼이 타오르고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 아닌가.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은 조선족 문화를 새롭게 꽃피우는 지역이 네이멍구자치구의 동북부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아룽치나 짜란툰, 우란호트가 우리 한민족의 한 갈래 중 먼 조상인 탁발 선비족(鮮卑族)의 발상지인 까션동굴(알선동굴,<새소리알>仙洞窟)과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는 사실이 우연치 않게 다가온다. 네이멍구에 사는 오늘의 '조선족'들 역시 '선'(鮮)자를 민족명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우연일까?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 조상들이 낯선 땅으로 이주해 와 살게 돼 초원이 고향이 된 그들 조선족 동포. 어쩌면 선비족이나 흉노족(凶奴族) 시절에 우리 민족의 아주 먼 조상들이 살았을 그 초원에 민족문화의 터전을 일구는 그들의 땀방울은 먼 훗날 노마드의 찬란했던 그 영광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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