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지키는 파수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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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을 지키는 파수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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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선관 열한 번째 시집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 펴내

 
   
  ^^^▲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의 표지
ⓒ 스타^^^
 
 

"오늘도 어제처럼 시내 나들이를 가려 합니다. 방문을 열기 전, 문 위쪽 벽에 걸려 있는 사진틀 속에 아버지(李在鳳 이재봉)와 어머니(柳鳳秀 유봉수)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나만큼 병치레를 오래한 자가(지금도 병을 달고 살지만) 아버님과 어머님보다 오래 살고 있다는 것과 이웃들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살고 있다는 것에 죄송스러움과 감사함을 가져 봅니다."

지난 해 오월, 열 번째 시집 <배추 흰나비를 보았습니다>(2002년 5월 16일자 <오마이뉴스> 참조)를 펴냈던, 마산의 문화재 이선관(60) 시인이 열한 번째 시집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도서출판 스타)을 펴냈다. 1974년,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시 '독수대'를 쓴 환경시인답게 이번 시집 또한 재생지로 엮었다.

묵주가 쥐어져야 할 손에는
폰이
염주가 쥐어져야 할 손에는
폰이
십자가가 쥐어져야 할 손에는
폰이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 모두)

그렇다.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 과연 무엇이 쥐어져 있는가. 월드컵 당시 '★은 이루어진다' 라며 '대~한민국'을 외치며 박수를 치던 그 손에는 지금 무엇이 쥐어져 있는가. 지난해 겨울,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던 촛불을 든 그 손에는 지금 무엇이 쥐어져 있는가.

시인 민영은 '희망을 지키는 파수꾼의 노래'라는 이번 시집의 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반자연, 반이성의 시대에 한 시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인류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 시를 쓰고 있다"고. 그리고 "물질문명의 탐욕과 이기주의 속에서 사람들이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길 희구하고 있"다고.

이번 시집은 모두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는 날로 심각하게 오염되어가는 지구촌의 환경문제를, 제2부는 남북통일과 반미 반전문제를, 제3부는 노년에 찾아온 사랑을, 제4부는 문명비판을, 제5부는 이오덕 선생 등 실존하는 인물들을 통한 현실비판을 담고 있다.

여보게
자네 내가 사는 단칸방 부엌으로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가
그날따라
목소리 한번 정말 우렁차더군
그러나 하루 지나니
그만 힘이 없더군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니
아예 소리조차 없더군
여보게
언제 어떻게 떠나갔는가

('귀뚜라미' 모두)

"오는 제비 없으니 가는 제비 없네//가는 사람 없으니/오는 사람 없네"(아무도 없네)처럼 삼월삼짇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제비를 기다리며 탄식하는 시인. 그 시인의 단칸방 부엌에 어느날 문득 귀뚜라미 한 마리가 들어와 우렁차게 울고 있다. 그런데 그 귀뚜라미가 하루가 지나가자 맥없이 울더니, 또 하루가 지나가자 아예 울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왜? 이는 가난한 시인의 단칸방 부엌조차도 이미 귀뚜라미가 살지 못하는 그런 환경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귀뚜라미가 살지 못하는 곳, "강남에 간 제비/아예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강남에 간 제비) 그런 곳, "쥐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우리 동네 쥐가 보이지 않네요)는 그런 곳이라면 곧 사람조차도 살지 못하는 곳이 아니겠는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 땅에 떠도는
효순아 미선아
너희들의 혼백을 위해
우리 모두 반딧불이 되어 줄게
잘 가시게

('반딧불' 모두)

그래. 시인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이와 미선이가,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기에 저승에도 가지 못하고 구천의 하늘을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는가. 그래서 시인은 단칸방에서 촛불을 하나 켜들고 효순이와 미선이의 영혼을 저승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촛불이 바로 효순이와 미선이의 저승길을 밝혀주는 반딧불이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그리고 시인은 "이십세기에서 못보던/유난히 반짝반짝거리는 새로 생긴 저 별들"을 바라보며 "아마도 저 별들은/이십일 세기로 들어서서/첫 번째 전쟁이자 새로운 전쟁에서/무차별 폭격으로 죽은/아프칸 사람들의 영혼"(별이 많이 생겨 났네요)을 떠올린다. 또한 "지나간 전쟁도/지금의 전쟁도/앞으로의 전쟁도" 결코 "예술이 아니라"(전쟁만큼은 예술이 아니에요)고 당당하게 외친다.

나는 그에게
목소리만 들어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내게
생각만 하여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만났습니다 만나서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마지막 사람이기를 바란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내게
내일이라도 예쁘고 착한 사람이 생기면
기쁜 마음으로 떠나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아니 아니 그럴 리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목소리를 듣게 되고
생각도 하게 되고
만남도 가져 봅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좋은 사람' 모두)

노년에 찾아온 사랑. 더구나 지난 해 이순을 넘긴 시인에게 어느날 문득 예쁘게 포장된 선물처럼 다가온 사랑. 그 사랑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마도 그는 "내일이라도 예쁘고 착한 사람이 생기면/기쁜 마음으로 떠나주겠다고" 속삭이는, 요즈음 보기 드물게 고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노년에 찾아온 그 사랑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 같다. "내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투박한 질그릇에/물이 넘쳐나려 합니다/전혀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처럼 시인은 "물이 넘쳐나기 전/아, 질그릇이 넘치네요 하면서/이별연습을 하"(또다른 이별연습)고 있기 때문이다.

육십구 세까지 어머니의 젖가슴만 그렸더이다
부산 자갈치 시장 여인들
마산 어시장 여인들
지금까지 약 만이삼천 점의 그림을 그려 왔는데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어머니를 찾을 수 없다고 하더이다
음력으로 이천이년 마지막 날에 마주 보고
소주잔을 건네는 내게 눈물 몇 방울 보이더이다

('어머니 -현재호 선생' 모두)

이선관 시집 <지금 우리들의 손에는>에는 물질문명에의 탐욕과 이기주의로 가득 찬 이 세상을 향한 매질소리로 가득하다. 그 매질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는 지구촌의 환경을 향한 매질이기도 하고, 반전과 반핵, 그리고 남북통일을 향한 평화와 생명의 매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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