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양극화 해소는 선택아닌 필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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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양극화 해소는 선택아닌 필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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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 지출이 적어도 20% 가난한 자들 먹여 살릴 수 있다

 
   
     
 

복지 국가 지향은 염원인가? 가족 중 한 사람이 몸이 매우 아프거나, 집안 어른들 중 치매나 중풍에 걸리면 당사자는 물론, 가족 전체의 삶이 통째로 파괴되는 사회,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는 개인의 행복이 운수에 맡겨진 사회인지 모른다.

재수가 없어 병에 걸리거나 그 흔한 교통사고라도 당하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 모두가 고통을 받는다. 치료비를 대기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리기 일쑤이고, 그것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전세금을 빼서 치료비로 쓰고 거리로 내몰린 신세가 되고 만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머지 가족 전체가 거의 죽음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한국사회의 지금 모습이다. 국가가 떠맡아야 할 일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모든 인간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가 있다’,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즉 국가는 어떤 어려운 사유에 있는 국민이라도 보호할 책무를 져야 한다고 헌법은 명기하고 있다.

물론 국가재정상 헌법대로 시행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기아(飢餓)나 병마(病魔)에 시달리는 국민은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한국인이 강한 가족 이기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결국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회안전망이란 실업, 빈곤, 재해, 질병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사회 보장제도, 공공근로사업, 직업 교육 및 취업알선 등이 포함된다.

국가는 이러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데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믿을 구석이라고는 오직 가족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오로지 운명에 맡기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곳은 오로지 가족뿐인 것이다.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이 닥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이나 길거리 노숙자나 거지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개인에게 닥친 불행을 사회가 함께 짊어지고 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니겠나. 불행을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지느냐, 아니면 개인에게 떠맡기느냐에 따라 사회의 건강성은 확인이 된다.

양극화란 잘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양극을 이루고 그 중간을 이루는 중산층이 적어지는 현상이다. 즉 사회가 잘살고 못 사는 사람들로 양분된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계속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IMF 이후 장기화 된 경제 불황 속에서 더욱 심화되었고, 빈부로 인한 위화감이 깊어지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사회적 혼란과 위기를 가져오는 부작용이 생성된다.

따라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범국가적 노력이 시급히 요망되는 것이다.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재분배를 통한 빈부 격차 해소일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재분배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복지의 확대’를 의미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고임금과 저임금의 격차를 줄이고자 노력을 하고 복지정책을 뒷받침할 재원을 확보 하는 일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 시장에서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정부가 조사한 내용을 보면 전체 임금 근로자의 35%인 55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노동단체에서는 85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500만이든 800만이든 상당히 많은 숫자인 것은 분명하다.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결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어 가고 복지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 국가는 재원 확보방법을 다각도로 연구해 불필요한 재정을 줄이고 사회복지정책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점점 노령화 사회로 진출하는 것을 막을 재간은 없다. 극빈가정, 독거노인, 장애자 지원 등 우리사회가 더불어 사는 진리를 깨우쳐 상위 1%의 지출로 적어도 20%의 가난한 자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참고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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