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capitalism)의 팬들은 무엇보다도 삶의 최우선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며, 자유시장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을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에는 비(非)민주적인 현실은 엄연한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비민주적 현실을 일반적으로 보자면, 우선 ‘소득 불평등’의 심화를 꼽을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원의 집중이 일어나기 쉽다. 이는 경제적 불평등의 주요한 원인이다. 부자들은 자본과 자원을 더 많이 축적하게 됨으로써 빈곤층과의 격차는 갈수록 확대된다. 이는 경제적 기회와 사회적 이동성을 제한하게 되어, 사회적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로 자원의 과잉 소비와 환경 파괴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특성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추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자원의 과잉 소비와 환경 파괴가 심화될 수 있다. 기업들은 당연히 당기 순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환경 보호나 자원의 지속 가능성에는 깊은 관심을 두기 어렵다. 이는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의 가속화의 원인이 된다.
자본주의의 또 다른 특징 주의 하나는 ‘노동자 착취와 노동 조건의 악화’이다. 기업들은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경향이 있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문제, 열악한 노동 조건 등으로 착취의 현상들이 나타난다. 노동 착취는 때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불만 세력으로 키워질 수 있다.
또 자본주의는 소비주의와 정서적 소외감을 초래할 수 있다. 소비가 경제 성장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질적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으며, 소비가 개인의 가치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소비주의는 정서적 소외와 물질적 불만족이 불행하다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위기와 불안정성을 초래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주기적인 경제 위기를 겪는 경우가 흔하다. 금융 위기나 경제 불황 등은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며,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제 위기는 실업률 제고, 가계 부채의 덫, 사회적 불안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실상을 보이고 있는 자본주의이지만, 많은 자본주의 국가의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민주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하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자유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로 여겨지는 것이 보다 나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문자 그대로 민주주의와 동일시하여, 이 두 용어를 서로 바꿔 사용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분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정반대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근로자가 고용주와 관계를 맺고, 소수의 사람들이 상사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하라는 대로 일만 하는 생산 시스템으로만 보면 된다. 그 관계는 민주적이지 않다. 독재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갑질 현상”이 두드러진다.
“자본주의 이해하기”(Understanding Capitalism : Democracy at Work, 2024)의 저자인 리처드 울프(Richard D. Wolff)는 저서에서 “공장, 사무실 또는 매장이라는 직장의 문턱을 넘을 때, 당신은 외부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민주주의를 떠난다. 당신은 민주주의가 배제된 직장에 들어가게 된다. 대다수(직원)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가?”라고 적었다.
자본주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사례가 있다.
한 대기업 직원이 집에서 아내의 따뜻한 위로와 함께 직장으로 출근했다. 그는 자기 테이블에 안자마자 어떤 서랍을 열더니 한참을 바라보고 서랍을 닫는다, 본격적으로 업무에 들어갔다..... 퇴근 시간이 됐다. 그 직원은 아침처럼 그 서랍을 열고 한참을 보더니 다시 서랍을 닫고 퇴근길에 올랐다.
그가 왜 서랍을 출퇴근 때 여닫고 했을끼? 간단하다. 서랍 안에는 남몰래 넣어 놓은 작은 인형이 있었다. 그 직원은 출근 후 인형을 보면서 나는 ‘인간 김 아무개’가 아니라 지금부터 회사 기능인, 즉 너와 같은 인형으로서 일을 하겠다고 다짐한다고 했다, 상사가 던지면 던져지고, 잡으면 잡히겠다는 것이다. 퇴근 때 다시 그 인형을 바라보고 이제부터 나는 다시 “인간 김 아무개”로 돌아간다며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 사례는 자본주의 사회의 직장 문화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러처드 울프의 책이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소유자 또는 이사회)은 기업이 무엇을 생산하고,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어디에서 생산하고, 기업 이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 모든 주요 결정을 내린다. 직원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에서 배제되지만, 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직원은 고용주의 결정의 영향을 받아들이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서 일해야 한다. 한마디로 대부분 비(非)민주적인 방식으로 조직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주는 자본주의 기업 내의 독재자이며, 군주제 국가의 왕과 같다고 러처드 울프는 적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군주제는 대체로 ‘전복’되었고, 대표적이고 선거에 의한 이른바 “민주주의”로 대체됐다. 하지만 왕은 그대로 남았다. 그들은 단지 위치와 직함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들은 정부의 정치적 위치에서 자본주의 기업 내의 경제적 위치로 옮겨갔다. 왕 대신 그들은 사장이나 소유자 또는 CEO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본주의 기업의 꼭대기에 앉아 많은 왕과 같은 권력을 행사하며, 대부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수세기 동안 자본주의 ‘기업에서 배제’되어 왔다. 자본주의 기업이 우세한 사회의 다른 많은 기관들, 즉 정부 기관, 대학, 종교, 자선 단체도 마찬가지로 독재적이다. 그들의 내부 관계는 종종 자본주의 기업 내부의 고용주/직원 관계를 모방하거나 반영한다. 그러한 기관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사업적인 방식으로 기능”하려고 한다.
자본주의 기업의 반(反)민주주의적 조직은 또 직원들에게 그들의 의견이 상사에게 진심으로 환영받지 못하거나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달한다. 따라서 직원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CEO에 비해 ‘무력한 입장’에 스스로를 내맡긴다. 마치 인형처럼....
그들은 또 정부에서 CEO의 대응자인 정치 지도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것을 기대한다. 정경유착(政經癒着)의 본보기이다. 직장 운영에 참여할 수 없는 그들의 무능력은 시민들이 주거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것과 관련, 동일한 것을 추정하고 수용하도록 훈련시킨다. 고용주는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최고 정치인이 되는데,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들이 “ 책임자”가 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정당과 정부 관료제는 독재적으로 운영되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민주적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자본주의 기업을 반영하려 하고 있다.
성인 대부분은 고용주의 권력과 권한 아래에 자본주의적 직장에서 주당 5일 이상 최소 8시간 일하는 것을 경험한다. 자본주의적 직장의 비(非)민주적 현실은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파트타임과 풀타임으로 복잡하고 다층적인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와 관련된 자본주의의 문제, 즉 두 가지가 기본적으로 서로 모순된다는 점이 많은 사람의 삶을 형성한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월튼 가족(월마트 창립자의 후손)과 소수의 다른 주요 주주는 수천억 달러를 어떻게 쓸지 결정한다. 수백 명의 억만장자의 결정은 일부 지역에 경제 개발, 산업, 기업을 가져오고 다른 지역의 경제적 쇠퇴로 이어진다. 그러한 지출 결정의 영향을 받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 참여하지 못한다. 그 수많은 사람들은 소수의, 선출되지 않은, 엄청나게 부유한 소수의 사람들이 행사하는 경제적, 사회적 권력이 없다. 실제로는 그것은 민주주의의 반대이다.
고용주들은 종종 주요 주주와 그들이 부유하게 만든 CEO가 이끄는 계층으로서, 정당, 후보, 캠페인을 매수(그들은 ‘기부’라고 말하고 싶어한다)하는 데도 부(富)를 사용한다. 부자들은 보통선거나 심지어 광범위한 참정권이 부유하지 않은 다수가 사회의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투표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자들은 고용인 다수가 고용주 소수보다 투표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는 의미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존 민주주의 형태를 통제하려고 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기업’ 고용주(owner)가 차지한 엄청난 잉여금은 그들이 상위 임원들에게 호사스럽게 보상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임원들은 기술적으로 ‘직원’이기도 하며, 기업의 부와 권력을 이용해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목표는 자본주의 체제를 재생산하고,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가 그들에게 주는 호의와 보상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자본가들과 그들의 최고 직원들은 정치 체제가 국민의 투표보다 그들의 돈에 더 의존하게 만든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주요 정당과 후보자들이 고용주와 부자의 기부에 의존하게 만드는가?
리처드 울프는 자신의 저서에서 “정치인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미디어를 장악하여 승리하기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들은 자본주의 전체에 이로운 정책을 지지하거나 특정 산업, 지역, 기업에 이로운 정책을 지지함으로써 기꺼이 기부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때때로 기부자들은 정치인을 찾는다. 고용주들은 로비스트를 고용한다. 로비스트는 선출되는 후보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일년 내내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고용주들은 모든 현재 사회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제작하고 확산하기 위해 ‘싱크 탱크’에 자금을 지원한다. 이러한 보고서의 목적은 기금 제공자가 원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지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고용주와 그들이 부유하게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일할 정치 시스템을 형성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비교할 만한 부나 권력이 없다. 실제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려면 직원을 활성화하고, 결합하고, 동원하여 그들의 수가 실제적인 힘을 합칠 수 있도록 하는 대규모 조직이 필요하다. 그런 일은 드물게 일어나고 큰 어려움이 따른다. 게다가 미국에서 정치 시스템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되어 두 개의 주요 정당(민주, 공화)만 남게 되었다. 두 정당 모두 자본주의를 큰 소리로 자랑스럽게 지지하고 지원한다. 그들은 협력하여 제3의 정당이 발판을 마련하고 반(反)자본주의 정당이 등장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미국은 시민의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끝없이 반복하지만, 정당은 그 공약에서 제외한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 한 표”에 관한 것이다. 즉, 우리 모두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동등한 발언권을 갖는다는 개념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1년에 한두 번 투표소에 가서 후보를 고르는 것은 록펠러 가문이나 조지 소로스의 영향력과는 매우 다른 수준의 영향력이다. 그들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을 때, 그들은 그들의 돈을 사용한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는 다수결 투표로 “소수의 불평등하게 분배된 부를 위협”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민주주의의 공식적 제도(보편적 참정권이 있는 선거 등)가 있든 없든, 자본주의는 고용주가 생산, 잉여 가치, 그리고 그 잉여 가치의 분배를 통제하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자본주의 지도자들에게 “민주주의는 그들이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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