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인민 공화국의 만행-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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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인민 공화국의 만행-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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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치하 90일간의 만행

^^^▲ "단장의 미아리 고개"^^^
공산주의자들은 남침 초기에 성공을 거두자 대구 부산지방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점령하자 천인노할 상투적인 수법에 의한 행패를 자행하였다.

그들은 점령지역을 해방지역(해방구)으로 선포하고 행정구역에 따라 인민위원회와 내무서라는 것을 설치하여 도시나 농촌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애국자를 감금, 학살하고 납치해 갔다.

특히 군경 가족들은 아녀자와 어린애들까지도 모조리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또한 순진한 청소년 남녀들을 모아 놓고 회의나 연설을 한다고 속여 강제로 의용군에 잡아 넣어 맨주먹으로 전선에 내보내고 뒤에서 총부리를 겨누어 독전을 감행하여 무고한 청년들의 피를 흘리게 하였다.

남녀를 강제로 징용하여 부역을 시키고 식량, 의류, 금은을 공출시켰다. 물론 이에 거역하면 반동이란 낙인 아래 숱한 고문과 학살을 자행하였다.

또한 정치공작대와 문화공작대라는 단체들을 앞세워 허위선전과 기만을 일삼고 남한 정치에 대한 비판과 북한의 공산 정치에 대한 찬양과 선전에 앞장섰다.

유엔군과 국군의 총반격이 개시되고 공산군이 패퇴하기 시작하자 이들은 최후의 발악을 시도하였다. 도시 농촌의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고 납치되어 가는 사람의 행렬은 수십리에 달했다. 가옥, 재산, 문화시설과 문화재가 불타고 깨진 것이 헤아릴 수 없이 파괴되었다.

적 치하 90일간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인명과 재산은 이렇게 하루아침에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학살되고 파괴되어 한국 전쟁 종전 후인 1956년 발표된 미아리고개는 한국 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기 때문에 전쟁 발발 초기에 조선인민군과 대한민국 국군 사이의 교전이 벌어진 곳이었다.

인민군이 후퇴할 때 함께 데려간 사람들도 가족들은 이 곳에서 마지막으로 배웅해야 했다.

당시의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 작사가 반야월은 자신의 어린 딸을 전쟁 중 피난길에 잃은 개인적 경험과 연결지어, 미아리고개에서의 이별이라는 주제로 가사를 썼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떠난 이별 고개"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는 매우 구체적이며 애닯은 사연을 담고 있다.

철사로 손을 묶이고 맨발로 다리를 절면서 뒤를 자꾸만 돌아보며 북조선으로 가는 남편의 모습을 묘사하고, 기다리는 부인은 남편이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바란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전쟁의 비극과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을 절실히 토로하여 큰 사랑을 받았고, 이후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

이 노래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미아리 고개가 슬픔과 눈물과 한의 고개로만 각인되었다는 이유로 성북구청이 '미아동'이라는 동명을 바꾸려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 정상에 위치한 소극장 아리랑아트홀에 노래 가사를 새긴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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