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71년 대한민국 역사에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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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71년 대한민국 역사에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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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과 첫 대화의 문 열려

^^^▲ 남북가족찾기 남북적십자 제1차 예비회담
ⓒ e-영상역사관(http://ehistory.korea.kr) ^^^
8월 12일 남북 첫 대화의 문이 열렸다.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간 1천만 이산가족 찾기운동을 구체적으로 합의하기 위해 남북한적십자사 대표가 서울이나 평양 또는 제2의 어떤 장소에서라도 한자리에 마주 앉아 회담할 것을 북한 적십자사에 제의했다.

최 총재는 이같은 회담의 절차상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늦어도 10월 안으로 제네바에서 예비회담을 가질 것을 아울러 제의하고 “이상과 같은 우리의 제의에 대해 북한 적십자사가 방송, 통신망 또는 국제적십자사를 통해서나 기타 가능한 방법으로 그 의사를 전해 줄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적측의 극적 제안에 북적은 8월 14일 평양방송을 통해 이를 수락한다고 첫 반응을 보였다.

북적은 남북간 이산가족 찾기에 동의한다면서 한적이 제시한 회담장소를 제네바나 또는 제3국에서가 아니라 8월 20일 판문점에서 만날 것을 주장했다.

북적의 추가 제의를 받은 한적은 같은 날 하오, 8월 20일 첫 접촉과 판문점 회동을 수락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4반세기만에 대화가 끊겼던 남북의 역사적 첫 대화는 한적 파견원 이창렬, 윤여훈과 북적 파견원 서성철, 염종련이 8월 20일 판문점에서 첫 대좌, 9월 20일 예비회담의 기틀을 마련하고 소임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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