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후 스승 변호하다 파직당해 공주목 창강으로 낙향...1605년 호성공신에 임명
공주시가 조선중기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조선의 국운을 걸고 조선통신사 임무를 수행한 창원황씨 공주 지역 입향조 인물인 추포 황신 선생을 12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
1588년(선조 21)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한 선생은 사헌부 감찰, 전라도관찰사, 공조ㆍ호조판서 등 지방직과 중앙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는데 전쟁 초 병조정랑으로 임명돼 병조판서 이항복을 도와 군사 실무를 전담했다.
1594년(선조 27)에는 강화 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명나라 장수 심유경 일행을 따라 조선통신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본을 다녀왔다.
당시 사람들은 전쟁 중 일본에 가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여 모두 조선통신사 임무를 피하였는데, 선생은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통신사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강화를 반대하는 조선의 입장을 당당히 밝혔다.
종전 후인 1601년(선조 34) 스승인 성혼이 비난받자 이를 변호하다가 파직당한 후 공주목 창강으로 낙향했으며, 1605년에는 임진왜란 때의 공이 인정되어 호성공신으로 임명됐다.
1609년(광해군 1)에는 호조판서로 임명되어 전후의 국가 재정을 튼튼하게 만들고 전국적인 양전(量田) 사업을 추진해 토지구획을 정비하는 등 경제 정책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1612년(광해군 4) 임진왜란 때 세자인 광해군을 모신 공으로 위성공신 2등에 임명됐으며 회원부원군에 봉해졌으나 1613년(광해군 5) 일어난 계축옥사 때 황해도 옹진에 유배됐으며 1617년(광해군 9) 별세했다.
이후 우의정으로 추증된 선생은 1629년(인조 7) 공주목 창강서원(滄江書院)에 배향됐으며 조정으로부터 문민(文敏)의 시호를 하사받았다.
문집으로는 조선통신사 임무 수행 중 기록한 ‘일본왕환일기(日本往還日記)’와 ‘추포집’ 등이 전해지고 있다.
조병철 문화재과장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의 국운을 걸고 조선통신사 임무를 수행한 추포 황신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12월의 역사인물로 선정했다”며, “12월 중 시민을 대상으로 황신 선생 관련 프로그램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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