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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 뉴스타운^^^ | ||
1966년 6월 14일부터 16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호주, 뉴질랜드, 중국,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월남, 태국 등 9개 회원국과 옵저버로 라오스가 참석한 가운데 제 1차 ASPAC 각료회의가 6월 14일 오전 10시 중앙청 중앙홀에서 막이 올랐다.
이날 개회식에서 대회장과 부의장 선출이 있었는데 의장에는 당시 외무 부장관이었던 이동원, 부의장에는 코만 태국 외상을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이어서 회의 사무국장 선출이 있었는데 당시 말레이시아 대사로 활약하던 최균하가 선임되었다.
이날 박 대통령은 개막식을 통해 행한 연설에서 아시아 우방들의 공동노력으로 평화, 자유, 균형잡힌 번영의 위대한 아시아, 태평양 공동사회를 건설하자고 역설하였다. 박 대통령은 월남파병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월남파병은 공격적 참여가 아니고 방위적인 참여라고 말하면서 국제공산주의의 대결에 있어서 적절한 힘의 행사도 필요하다고 한국측의 입장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이 행한 연설의 골자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아시아 인민들에게 풍요한 사회에의 염원은 간절하지만 공산주의자들로부터 파괴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이 공산주의자들과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아시아 자유국민들의 협력은 물론, 결속이 필요하다.
둘째로, 공산주의자들과의 대결에 있어서 평화는 타협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들과의 대결에 있어서 적절한 힘의 행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셋째로, 빈곤, 실업, 질병, 문맹, 인구문제 등 아시아가 안고 있는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공동과제이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기술 등 각 분야에서 인접한 우방들의 교류와 공동협력으로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균형잡힌 번영의 위대한 아시아, 태평양 공동 사회를 건설하자.
이날 오전의 개막식을 끝낸 78명의 각국 대표들은, 오후 2시 회의장인 워커힐에서 본회의를 열어 참가국들의 기조 연설을 들은 다음 회의 결정, 회의 진행방식 등을 논의했다. 우리 나라 수석 대표인 이동원 외무부 장관은 기조 연설에서 효과적인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전을 위한 효과적 지역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이어서 경제, 정치, 사회, 문화 협력 등을 협의하고 이번에 참석하지 않은 나라에도 초청장을 보냄은 물론,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구했으며 이 모임은 상설 사무국을 가진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서울에서 첫 회의를 가진 아시아, 태평양 지역 각료회의(ASPAC)는 6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 동안 6차에 걸친 본회의를 열고, 참가국들은 13개 항목에 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폐막되었는데 이들 국가들은 참가국들간의 번영과 계속적인 협력증진을 확인 강조 했다.
이 회의에서 다음번 회의는 67년 6월에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열기로 결정 했고 방콕 회의에서 서울에서 합의를 본 경제, 문화 교류 문제를 협의할 것에 합의했다.
金基洙 세계 제패
1966년 6월 25일, 이날도 지난 1950년 6월 25일 북괴가 만행을 저지를 때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로 이날 서울 장충체육관 특설 링에서는 WBA(세계권투연맹)의 승인을 얻어 세계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 매치가 열리고 있었다.
김기수 선수는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 선수를 맞아 착실한 게임을 운영한 끝에 15회 판전승을 거두고 세계 주니어 미들급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김기수 선수는 벤베누티 선수를 물리침으로써 한국 최초의 세계 권투 참피온이 되었고 우리 권투계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한 최초의 선수가 된 것이다.
1950년 6월 25일에는 원통한 눈물을 흘리는 쓰라림을 맛보았지만 1966년 이날은 기쁨의 눈물과 환희의 눈물을 흘린 역사적인 날이다. 이 빅 게임을 보기 위해 비가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장충체육관으로 몰리기 시작, 게임이 시작되기 3시간 전에 이미 입장이 완료되어 체육관에 들어가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길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장충체육관은 박 대통령을 비롯, 정부 고위층들이 참관하였고 8천 여명의 관중이 응원을 보내는 가운데 벌어진 1시간의 열전에서 김기수 선수는 키 큰 벤베누티의 날카로운 레프트 훅과 라이트를 교묘히 피해가면서 보디 블로우와 레프트 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갔다.
13회전을 끝내고 14회전을 치추려고 할 때 링에 이상이 생겨 게임이 5분여 동안 중지되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김기수 선수는 14회전과 15회전에서도 레프트 훅을 구사하는 등 착실히 포인트를 따낸 관중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열전 15회전이 끝난 시간은 오후 10시 28분. 이제 게임은 끝났다. 판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장충체육관에서, 라디오 중계방송에서, TV앞에서 열광하던 권투팬들은 숨을 죽이고 초조히 판정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고요도 잠시, 두 선수는 주심을 중심으로 나란히 섰다.
미국 주심은 김기수 선수의 손을 번쩍 들었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관중들과 라디오 가정과 시내 다방에서, TV 앞에서, 권투시합을 시청하던 팬들은 “김기수가 이겼다!”하며 함성을 터뜨렸다. 이제 판정은 내려졌다. 김 선수는 그렇게도 소망해왔던 세계 타이틀을 획득 한 것이다.
김기수 선수와 니노 벤베누티 선수는 1960년 로마 올림픽 대회에서 겨룬 적이 있었다. 이때는 김선수가 판정으로 패해 그의 무패의 아마추어 전적에 쓰라린 1패를 기록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김기수 선수는 이 세계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 매치에서 벤베누티 선수를 이겨 로마 올림픽에서의 패배를 설욕한 것이다.
세계 참피온의 왕좌에 오른 김기수 선수는 소감을 묻자 기자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영광은 국민 여러분의 열렬한 후원에 힘업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너무 기뻐 무어라 할말이 없습니다.” 김기수 선수의 승리는 우리 권투사에 길이 남을 것이며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이제 세계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 벨트는 김기수 선수를 떠났지만 김선수의 승리가 우리 체육계에 활기를 불러 일으켜 준 것만은 부인하지 못할것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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