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000톤 이상의 과일․야채 등 1200만 서울시민의 먹거리가 유통되는 가락시장에서는 평균 200여명의 노숙인들을 위한 사랑의 밥상이 차려진다.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 하상바오로의집이 문을 연 지도 벌써 17년이 됐다. IMF 당시 한창 때는 하루 400명이 넘게 찾아왔다.
월, 화, 수, 금, 토 매주 5차례 문을 여는 하상바오로의집은 지금까지 8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100만명이 넘는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펐다. 한 달 운영비만도 1000여만원, 17년간 2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투입된 하상바오로의집은 날마다 사랑의 기적이 계속되고 있다.
형제는 용감했다
가락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로 잔뼈가 굵은 서정기(59)․서정철(56) 형제는 하상바오로집의 또 다른 역사. 형제는 하상바오로의집 문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형 정기 씨는 무료급식 때는 홀서빙으로, 무료진료 때는 약국 보조를 맡아 종횡무진 바쁘다. 툭 하면 싸움이 일어나는 노숙인들의 질서유지 및 식사순번 등을 통제하는 정철 씨는 군기반장이다.
형제가 나란히 시작한 봉사가 벌써 17년째. 이젠 본업이 바뀐 셈. 더구나 동생 정철 씨는 5년째 간암으로 투병 중이다. “장사는 그만뒀어도 봉사는 그만 둘 수 없었다”는 정철 씨는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하상바오로맨이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항암치료를 위한 입원 때를 제외하곤 자타가 인정하는 지킴이.
그도 그럴 것이 길게 늘어선 급식소 앞 풍경을 5분만 지켜보면 “새로 온 사람들 말은 안 들어요. 그래도 내 말은 듣지, 오래 봐왔으니까.”라고 말하는 정철 씨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텃새가 심한 노숙인들끼리 영역 다툼이 잦다. 작년에는 사망사고까지 있었을 정도. 바로 옆에 자리 잡은 가락119 안전센터가 긴급 출동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급식이 마무리되는 오후 1시30분쯤이면 무료급식소는 다시 무료진료를 위한 자리배열로 바빠진다. 바둑을 두며 소일하던 노숙인들도 하나둘 무료진료를 위한 새줄 서기에 바빠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철저한 순번제, 새치기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나는 A급 노숙인
무료진료를 기다리는 노숙인들은 개성도 가지각색. 젊은 시절 힘깨나 썼을법한 정재영(63) 씨는 단연 돋보인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방인에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노숙인으로 생각하지 마라. 노숙인들도 급수가 있다. 나는 이래 뵈도 A급 노숙인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주)논노 기획실 중견간부로 근무했다는 정씨는 95년 논노의 부도로 노숙인 인생이 시작됐다. 5년간의 방황 끝에 지금까지 아파트 경비, 백화점 미화원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더구나 최근 한 달째 가락시장 청과물경매장에서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짐을 날라주며 일당 4만원을 받는 고급인력(?)이다.
“노숙인 탈출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꼬박 통장에 모으고 있다”는 정씨는 곧 가락시장에서 노점 만두장사라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10년째 가락시장에서 지내다보니 아는 사람도 수월찮다”고 말하는 정씨는 자녀들에게도 손 한 번 벌려본 적도 없고,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리기 위해 벌금도 많이 냈다. 지금은 형님 댁에 부탁해 주민등록을 유지하고 있다.
감기 때문에 왔다는 정씨는 타고난 건강체질 덕분에 6개월 만에 무료진료소를 찾았다. 당당한 A급 노숙인 정씨와의 만남은 노숙인들에게도 나름의 삶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줬다.
노숙인들의 슈바이처 & 백의의 천사들
매주 수요일 열리는 무료진료소에는 무려 10여명의 의료인과 일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무료진료소의 큰 형님은 원무과장격인 김규택(66) 옹. 김옹은 무료급식보다 4개월 늦은 90년 4월부터 시작된 무료진료 역사를 꼼꼼히 정리한 접수대장 6권을 기록한 주인공이다.
당시 현장조사를 통해 하상바오로의집을 탄생시킨 장본이기도 한 김옹은 무료진료소의 군기반장. 굵은 눈썹을 휘날리며 호통 치면 아무리 기가 센 노숙인이라도 꼼짝 못한다.
17년 산 증인이 김옹 보다 2년 늦게 무료진료봉사를 시작한 이민상(62․내과의) 원장은 모두 “천사 같은 분”이라고 입을 모으는 노숙인들의 슈바이처. “이거 안하면 재밌는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냥 하는 거지요”라고 말을 아끼는 이 원장을 보고 있노라면 남을 돕는 일이 천직 같아 보인다.
이 원장과의 인연으로 94년부터 합류한 최달용(55․피부과) 원장은 노숙인과 정신세계가 닮은 자유인 같다. 요즘 닳고 닳은 여느 피부과 의사들과 달리 넉넉한 시골 의사 같은 품이 무료진료소를 편안하게 만든다.
더구나 무료진료소에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는 서슴없이 자신의 병원으로 불러들인다. 심각한 냄새나 튀는 외모 때문에 일반 환자들이 꺼리지 않겠냐는 질문에 오히려 “그런 환자라면 내 병원에 올 필요 없지”라며 가볍게 답한다.
그래도 아직 덜 성화된 탓인지 이 원장과 달리 “노숙인들이 가끔 맨손으로 건네는 음식들 앞에서 먹어야 되나 고민에 빠진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무료진료소 창립멤버인 강경선(57) 간호사, 그리고 인연의 고리들로 엮인 박경원(61) 약사 등 10여명의 약사, 간호사들이 좁은 진료소 안에서 복닥거린다. 하루 20명에 불과한 환자들에 비해 10명이 넘는 의료진들이 너무 많게 느껴질 정도로 정이 넘쳐흐른다.
무료급식소가 열리는 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자원봉사자 수만 해도 하루 20명이 넘는다. 가락시장 상인들과 운영을 맡고 있는 가락시장성당을 비롯한 인근 성당 신도들, 그리고 각종 기업체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쉼 없이 돌아간다. 주방과 달리 직접 노숙인들을 상대하는 홀 서빙만큼은 남자 자원봉사자들이 맡는다.
더구나 한 달 1000만 원 가량의 운영비는 전액 후원으로 충당된다. 17년간 환산하니 20억이 넘는 돈이 든 셈.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여름이면 무료샤워에 무료이발까지 노숙인들을 위한 풀 서비스가 이뤄지는 현장이다.
무료급식소를 찾는 것은 노숙인 뿐이 아니다. 이들 가운데는 노점이나 가락시장에서 일하는 할머니들도 있다.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마늘을 까고 일당 만원을 받는 할머니들에게 무료급식은 너무나 고마운 존재다. 때문에 노숙인들도 이 할머니들에게만큼은 너그럽다. 그러나 낯선 이가 문밖에 놓인 식수대에서 물 한 통만 받아가도 득달같이 달려든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다.
노숙인들을 위한 사랑의 밥상이 차려지고 무료진료를 자원하는 봉사자들이 넘치는 하상바오로의집, 생생한 삶의 현장인 가락시장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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