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신라의 왕도가 아니고 가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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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신라의 왕도가 아니고 가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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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역 2007-10-10 09:21:12
ㅎㅎㅎ....
경주는 6.25 때 점령지가아니라서 폭격이없다보니 문화재가많다?
고 댓글 쓴 그대의 글은 필자의 글이 아니고

어처구니 없는 [경주시(慶州市)의 연혁]이
기록된 백과사전의 글을 참조한 글이오 넋잃은 사람아....

왜독에 중독돼 얼빠진 사람아...

경주는
1. 신라의 천년 왕도(王都)이며,
2, 고려시대의 동경(東京)이며,
3, 조선시대는 병마절도사를 두었다.

경주는 무려 2천여 년 동안 지방행정의 중심 도시이었다.

신라 천년의 왕도 경주는
통일신라 성덕왕(702~737)때 경주의 인구가 백만 명이 살았다면.
2백년이 지난 고려시대(918~1392)의 동경(東京)은 천만 명이 넘는다.
또 천년이 지난 일제식민지 시대(1905년) 라면 줄어서 약 2천만명이라 하자

그런데
일제식민지 때 1936년 경주의 총 인구는 19,748명이었다.

필명도 없이 무례한 그대는
두 번도 생각하지 못하는 단세포적 인간인가?
그대가 정신병자인가? 누가 정신병자인가? 대답해 주시오



박병역 2007-10-09 13:47:52
7천만 한국인아...!

중국대륙에 건국된 신라 대국을

마치 한반도 속에 건국되었던 것 처럼

신라의 도읍지를 경북 경주로 얽어 맞춰 놓고



모든 한국인들이 경주를

신라의 천년 도읍지로 확실히 믿게 하기 위해

우리 역사왜곡의 주역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경주에 정착했다.



[자료] 1906년에 경주지역을 조사한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행적

제18호 (1906년 12월 1일 발행)한남통신(韓南通信) (41쪽)

▲ 경주(慶州) 동지(同地)는 대구에서 우리 이정(里程, 즉 일본식 거리를 말함)으로 약 10리여(조선식으로는 약 100여리)의 곳으로 17면(面)이 있는 대군(大郡)으로 예전에는 신라시대의 구도(舊都)인데 과반(過般)도 역사상의 조사를 위해 제국대학(帝國大學)에서 출장을 나온 이마니사 문학사(今西 文學士)는 동지 일어 계림학교(鷄林學校)의 교사와 더불어 동지에 관한 각종의 재료참고품을 수집하였으며, 목하 방인(邦人, 즉 일본인을 말함)은 31명이 주거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관리이고... (하략)





한국역사 왜곡의 핵심 주역 이마니시 류(今西龍)

1903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조선사, 신라·백제 등 한국고대사를 연구했다.

1906년 한국에 건너와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를 답사했다. 1914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조교수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그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에 임명되어, 재직 중에 단군설화(檀君說話)· 백제국도한산고 百濟國都漢山考〉 등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평안남도 용강군에 있는 점제현신사비를 발견하고 그에 관한 논문인 〈열·대·패 삼수고 洌帶浿三水考〉를 발표했다. 한편 한국 사서(史書)를 연구·조사하여 안정복(安鼎福)이 주석을 단 중종본(中宗本) 〈삼국사기〉를 발굴하기도 했다. 1922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후 2년간 중국에 유학, 베이징대학[北京大學]에서 조선사를 강의했다. 1925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26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가 설립되자 조선사 교수가 되었다. 저서로는 〈신라사연구〉·〈백제사연구〉·〈조선고사의 연구 朝鮮古史の硏究〉·〈조선사의 간 朝鮮史の栞〉 등이 있다.



1903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조선사, 신라·백제 등 한국고대사를 연구했다. 1906년 한국에 건너와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를 답사했다. 1914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조교수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그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에 임명되어, 재직 중에 단군설화(檀君說話)· 백제국도한산고 百濟國都漢山考〉 등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평안남도 용강군에 있는 점제현신사비를 발견하고 그에 관한 논문인 〈열·대·패 삼수고 洌帶浿三水考〉를 발표했다.



한편 한국 사서(史書)를 연구·조사하여 안정복(安鼎福)이 주석을 단 중종본(中宗本) 〈삼국사기〉를 발굴하기도 했다. 1922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후 2년간 중국에 유학, 베이징대학[北京大學]에서 조선사를 강의했다.



1925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26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가 설립되자 조선사 교수가 되었다. 저서로는 〈신라사연구〉·〈백제사연구〉·〈조선고사의 연구 朝鮮古史の硏究〉·〈조선사의 간 朝鮮史の栞〉 등이 있다.

경주사람 2007-11-19 15:49:14
어처구니가 없소.. 일제가 역사를 조작한건 하더라도..경주가 왕도가 아니었다니.. 그럼 그 많은 유적과 유물들은 어떻게 설명할꺼요??경주시내 아무데나 가서 포크레인으로 한삽만 퍼도 온통유물이오.. 왕도였다는것은 일제 역사가가 보여주는게 아니고 유물과 유적들이 보여주고 있는것이오.. 경주를 욕되게 하지마시오..어리석은 사람아..

ms 2007-11-04 04:09:45
뉴스타운자체가 언론으로서의 공정성을 잃었지요.
올라온 기사들을 쭈욱 보십시요. 어떤집단을 위한 뉴스인지
이건 완전 특정인물, 특정집단을 위한 홍보수단입니다.

노무현,북한,김정일,이명박 : 한나라당, 박근혜, 이회창

익명 2007-11-02 01:22:30
이것저것 짜마추지말고 필자가생각하고잇는주장만하세요, 글이글같아야 믿죠, 뉴스타운은 올릴기사가없어 이런터무니없는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나요? 뉴스타운의 뉴스가치가 의심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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