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慶州) 동지(同地)는 대구에서 우리 이정(里程, 즉 일본식 거리를 말함)으로 약 10리여(조선식으로는 약 100여리)의 곳으로 17면(面)이 있는 대군(大郡)으로 예전에는 신라시대의 구도(舊都)인데 과반(過般)도 역사상의 조사를 위해 제국대학(帝國大學)에서 출장을 나온 이마니사 문학사(今西 文學士)는 동지 일어 계림학교(鷄林學校)의 교사와 더불어 동지에 관한 각종의 재료참고품을 수집하였으며, 목하 방인(邦人, 즉 일본인을 말함)은 31명이 주거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관리이고... (하략)
한국역사 왜곡의 핵심 주역 이마니시 류(今西龍)
1903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조선사, 신라·백제 등 한국고대사를 연구했다.
1906년 한국에 건너와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를 답사했다. 1914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조교수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그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에 임명되어, 재직 중에 단군설화(檀君說話)· 백제국도한산고 百濟國都漢山考〉 등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평안남도 용강군에 있는 점제현신사비를 발견하고 그에 관한 논문인 〈열·대·패 삼수고 洌帶浿三水考〉를 발표했다. 한편 한국 사서(史書)를 연구·조사하여 안정복(安鼎福)이 주석을 단 중종본(中宗本) 〈삼국사기〉를 발굴하기도 했다. 1922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후 2년간 중국에 유학, 베이징대학[北京大學]에서 조선사를 강의했다. 1925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26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가 설립되자 조선사 교수가 되었다. 저서로는 〈신라사연구〉·〈백제사연구〉·〈조선고사의 연구 朝鮮古史の硏究〉·〈조선사의 간 朝鮮史の栞〉 등이 있다.
1903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조선사, 신라·백제 등 한국고대사를 연구했다. 1906년 한국에 건너와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를 답사했다. 1914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조교수를 거쳐 교수가 되었다.
그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에 임명되어, 재직 중에 단군설화(檀君說話)· 백제국도한산고 百濟國都漢山考〉 등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평안남도 용강군에 있는 점제현신사비를 발견하고 그에 관한 논문인 〈열·대·패 삼수고 洌帶浿三水考〉를 발표했다.
한편 한국 사서(史書)를 연구·조사하여 안정복(安鼎福)이 주석을 단 중종본(中宗本) 〈삼국사기〉를 발굴하기도 했다. 1922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후 2년간 중국에 유학, 베이징대학[北京大學]에서 조선사를 강의했다.
1925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26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가 설립되자 조선사 교수가 되었다. 저서로는 〈신라사연구〉·〈백제사연구〉·〈조선고사의 연구 朝鮮古史の硏究〉·〈조선사의 간 朝鮮史の栞〉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