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가을로 접어드는 10월 초하루. 어둠이 내린 대구 역전 부근은 긴장 속에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물결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천 남녀 공장 근로자들을 앞세운 시위 행렬이다. 적기가를 부르며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군중들이 금정통에 있는 노평본부를 향하여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날 10월 1일 오후부터 대구 경찰서는 데모 설에 가뜩이나 긴장되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주로 역전, 공회당, 호탤 일대와 노평본부가 있는 금정통 일대에 수백 명의 무장경관들이 즐비하게 경계망을 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일제히 몰려든 살기에 찬 군중들은 삼엄한 경계망을 돌파하여 중앙통과 행정거리를 휩쓸면서 노평 본부로 몰려갔다. 허가 없는 불법시위라 필사적으로 제지 하려는 경찰과 좌익계의 선동과 비밀 지령에따라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위 군중 사이에 결국은 폭동의 참사를 빚기에 이르렀다.
대구 폭동의 발단은 경찰 당국으로부터 노평 본부 건물에 붙혀진 투쟁위원회 간판이 무허가라 하여 떼어 버리려 한 것이 그 직접적인 동기였다. 노평측은 합법적으로 승인된 단체에서 하는 일인 이상 간판을 내거는데 무슨 허가가 또 필요하냐고 들고 나왔으나 이러한 항의를 일축하고 간판을 강제로 철거해 버리자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좌익 단체인 노평원들은 분개한 나머지 경찰관을 구타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경찰도 강경책을세우자 쌍방의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전율할 폭동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하여 1일 오후부터 대구 경찰서 부근과 역전에서 금정통에 이르는 일대를 철야 경계하면서 무장 경관은 그날 밤 가까스로 시위군중을 진압하고 이튿날 2일 아침에도 특수 경비태세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내를 완전무결하게 경비하기에는 중과부족이었다. 아침부터 거리에 쏟아져 나온 시위 대열은 주요 경계망을 돌파하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 하였다. 2일 오전 11시를 기하여 폭동은 본괘도에 올랐다. 드디어 피비린내나는 처참한 살상극이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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