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여순반란사건 기록지도에는 당시 반란군의 이동 시간과 경로 등이 지역별로 자세히 기록되 있다.^^^ | ||
이로써 반란군의 방위선은 조여들고 주력 부대가 기세를 꺾이기 시작하니 반란군이 도망 할 곳은 험악한 산악뿐이었다.
반군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지리산으로 퇴각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국군 참모진에서도 이러한 반군의 동태를 파악했다.
국군은 지리산 남단 산악지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남원과 광주사이 지역에서 폭도들을 서남쪽으로 압박하니 반군의 주력부대와 순천.여수에 있던 폭도들 사이는 완전히 연락이 차단되었다.
반란군의 지휘자는 지휘능력을 잃었고 따라서 계통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갈수록 반란군의 수효는 줄어들고 반군들의 시체는 처음 양민을 사살하던 때와 같이 죽어갔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반란이 일어났는가? 왜 폭도들은 무수한 양민을 살해 해야만 했던가? 대구 10.1폭동 1년 만에 일어난 이 어마어마한 사건의 진상을 캔다.
그럼 여수 순천 반란의 성격은 어디에 두고 말해야 할 것인가?
우리 민족이 일본 압제 후 해방이라는 역사적인 일이 있은 지 불과 3년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대한민국 신정부가 미군정으로부터 이양 받은 지 3개월이 체 못되어 행정체계가 어수선 한 때였다.
때를 노린 좌익분자들은 수개월 전부터 어수선한 기회에 정부를 교란시켜 공산화할 목적으로 일부 불순분자와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키려고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책동을 하였다. 진공 상태에 놓여있는 시기를 이용하여 적색분자는 군에까지 침투하였고 급기야는 소령에서 상하 계급자를 이용하여 숨어들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여수지구 14연대의 오동기 소령으로서 그는 여수지구 하사관 훈련을 기화로 젊은 하사관들의 단순 심리를 이용하여 공산주의 사상을 불어 넣었다. 적색 심리로 물들인 그들의 수효는 기하급수로 불어났다. 좌익분자들은 때를 기다렸다.
그들은 교묘하게도 극우 정계 요인들과도 손을 잡고 국내 정세를 살피던 중 기회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의 10월 17일 혁명 기념일을 전후해서 반란을 일으키려는 음모 였으나그러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사전에 탄로가 난 때문이다.
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나기 20일 전에 주모자와 관계자가 속속 검거됨에 따라 그 주위의 연루자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