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전 대통령 자택서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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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전 대통령 자택서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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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은 향년 88세 노령으로 인한 별세 추정

^^^▲ 최규한 전 대통령 영정 사진^^^
22일 오전 향년 88세를 맞은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이 노환(추정)으로 별세했다.

역대 대통령 중 최고령이었던 최규하 전 대통령은 오전 6시께 서울 서교동 자택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돼 서울대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으나 오전 7시 40분경 서거했다.

해방 직후인 1946년부터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공직에 몸담은 후, 줄곧 외교공무원으로 활동했고 3공 시절인 1967년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1976년부터는 4년간 국무총리를 지냈다.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 계기는 10.26 사태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같은 해 제 10대 대통령직에 앉았으나 이듬해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최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경호실의 한 관계자는 "사인은 노령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추정되고 최근엔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돼 간병인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올해 7월 88세를 맞아 최고령 전직 대통령으로 이름을 남긴 최규하 전 대통령은 행정자치부가 정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규정에 입각하여 국장으로 치뤄질 예정이다.

한편 최 전 대통령의 유족은 장남 최윤홍씨 등 2남 1녀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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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hmynews 2006-10-23 17:10:10
    최규하의 영전에 바칠 꽃은 없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한반도의 핵 위기 속에서도 최규하 전 대통령의 부고가 만만치 않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론은 그의 남다른 인생역정과 관련하여 "불행한 시대의 비운의 대통령"이라는 수사를 붙여주었지만,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수사일 뿐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관운이 트인 사람은 여러 명이 있었지만, 나는 그처럼 운이 좋은 사람을 알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는 총리와 민선과 관선 서울시장을 두루 역임한 고건씨나 최장수 총리를 역임한 정일권씨, 박정희 정권의 2인자에서 국민의정부 2인자로 변신해 총리를 역임한 김종필씨 등 화려한 관운을 자랑하는 인물이 여러 명 있지만 누구도 최규하씨의 관운을 넘지 못한다.

    그렇게 관운 좋은 사람이 비운의 대통령?
    그는 유능한 외교 각료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국무총리에 오르는 것에 멈추지 않았다. 하필이면 운이 좋게도 그가 대통령직 승계서열 1위인 총리로 재직할 당시 박 대통령이 살해당함으로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은 국민투표·쿠데타 등 방법의 옳고그름을 떠나 각고의 노력 끝에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그는 아무런 노력 없이 대통령에 올랐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한 독재자의 신임을 받은 것뿐이었다.

    이같은 비난에 대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고 87세의 고령으로 사망한 고인에게 너무 지나친 비난이 아니냐"는 반박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이승만 치하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냈고, 5·16군사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회의 의장 박정희"의 외교담당 고문을 역임했으며, 유신독재의 총리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에 대한 동정의 여지는 사라진다.

    그는 박정희의 군부 쿠데타를 처음부터 종말까지 함께 한 인물이었다.

    그는 군사독재의 공범이다

    12·12 쿠데타와 5·18학살과 관련한 그의 침묵은 여러 가지 추측을 가능하게 했지만, 당시 사회가 그에게 물었어야 할 책임의 요지는 "그가 이 두 사건의 공범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또한 "12월 8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날 전두환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는 것을 알았다"는 그의 발언만 놓고 보더라도 "국가의 안위와 헌정질서를 수호할 책임"을 가진 대통령 대행으로서 직무를 유기한 혐의가 드러난다.

    청문회 증언거부와 검찰 수사에서의 묵비권 행사 등 그의 침묵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희생자 내지는 피해자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반민족 반민주 정권의 핵심 용의자(容疑者)로서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교묘하게 회피한 것이다.

    지난 25년간 그의 침묵과 운둔은 그가 비운의 삶을 산 불행한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권력의 모든 단맛을 만끽한 노회한 정객이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안락한 노후를 즐기기 위한 귀거래사(歸去來辭)였을 뿐이다.

    그가 걱정한 것은 무엇이었나
    그는 많은 의문을 자신의 가슴 속에 묻고 간다고 믿겠지만 역사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역사는 늘 약삭빠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의 그러한 비겁함까지도 이용하며 역사가 발전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인이 된 최규하씨에게 "무덤까지 안고 갈 비밀"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그가 평생 "나라와 민족의 안위"를 걱정했다고 하지만 그가 걱정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알량한 명예"였음을 알만한 사람은 누구나 안다.

    이것이 내가 그의 영전에 꽃을 바칠 수 없는 이유이다.

    연합 2006-10-23 17:12:23
    최 전 대통령 40년간 연탄보일러 생활

    22일 타계한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은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로 귀감이 된 인물이었다.

    최 전 대통령은 40년간 서울 서교동의 2층 짜리 조그마한 단독주택에서 별다른 수리도 하지 않은 채 살았다.

    서교동 자택은 지난 2004년까지 연탄보일러를 땠는 데 그것도 오래돼서 바꾼 게 아니라 연탄을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교체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전 대통령이 이처럼 연탄보일러를 고집했던 것은 국무총리 시절이었던 1978년 1월 장성탄광 막장에서 고생하는 광부들을 보고 "끝까지 연탄을 때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 전 대통령은 또 딸이 태어났을 때 쓰던 50년 된 선풍기를 그대로 사용했고 에어컨도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것을 썼다는 후문이다.

    메모지도 달력을 잘라서 쓰도록 비서관들에게 권했고 식사도 무염식 위주로 검박하게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대통령은 이같은 검소한 생활속에서도 종손이 남에게 매매한 선산 등을 재구입하고, 선영에 가서 직접 풀도 뽑는 등 조상에 대한 효(孝)를 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흥순 비서실장은 "최 전 대통령은 구두도 옛날 것, 늘 같은 것을 신었다"며 "생활 전반적으로 절약하는 습관이 몸이 밴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국민일보 2006-10-23 17:07:00
    전두환 최 前대통령 조문

    12·12 쿠데타와 5·18 광주항쟁을 통해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23일 오후 3시쯤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입구에 전 전 대통령이 경호차 2대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섰다. 전 전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빈소로 걸어들어가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10여명의 경호원들과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 부장 등 30여명이 뒤를 따랐다. 이 때문에 빈소까지 이르는 10여미터 복도는 전 전 대통령 일행들로 가득찼다.

    전 전 대통령은 조의록에 서명하는 절차를 생략한 채 곧바로 빈소에 들어가 흰 국화를 놓고 묵념했다. 이어 유족과 일일이 악수한 뒤 가족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유족과 15분 정도 얘기했다.


    빈소를 나온 전 전 대통령은 “북한 핵무기 실험으로 위기가 고조된 지금 외교에 큰 공을 세우셨던 최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신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그는 1980년 최 전 대통령의 하야에 관한 질문에 “최 전 대통령은 섬세하시고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시는 분이기 때문에 비망록 형태로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라며 “문서가 공개되면 여러분들이 궁금한 것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최 전 대통령이 별세한지 이틀째인 이날 다른 정·관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도 계속됐다. 오전 10시쯤 빈소를 찾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고인의 영정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인 뒤 “외교계의 큰 어른께서 가셨다”며 “국가 위기의 산 증인이신 최 전 대통령을 역사가 진지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빈소를 찾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도 “역사상 가장 어려울 때 나라를 이끄셨던 분”이라면서 “어려운 삶을 사셨는데 이렇게 가셔서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종석 통일부장관,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등도 빈소를 찾았다.

    연합 2006-10-23 17:04:31
    전두환.노태우 "안타깝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22일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접한 뒤 "안타깝다"는 짧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선영 성묘와 모교인 대구공고 체육대회 참석 등을 위해 지난 21일부터 대구를 방문중인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한 측근을 통해 최 전 대통령의 소식을 접한 뒤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안타깝다"는 말을 했으나 이밖에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고 수행한 측근이 전했다.

    전 전 대통령은 그러나 남은 대구 일정을 취소하고 23일 상경해 오후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할 계획이다.

    한 측근은 "본인의 직전 대통령이신데다 좋든 좋지 않든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아 보였다"며 "소식을 듣자마자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올라가자"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지난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건강상태가 악화돼 서울 연희동 자택에 머물고 있는 노 전 대통령도 언론보도를 통해 최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안타깝다"는 짧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소식을 알고 계시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을 없었다"면서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현재로서는 최 전 대통령 조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노무현(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리를 같이 했던 세 전직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직후인 지난 10일 노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을 받아 대면기회가 있었으나 최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 건강문제로 불참함에 따라 3년여만의 회동이 무산된 바 있다.

    전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두 분이 별다른 언급은 없었지만 12.12사태 직후 최 전 대통령을 대통령에 선출한 뒤 8개월여 만에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신군부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최 전 대통령의 별세에 대한 감회도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이 2006-10-22 17:51:34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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