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젖은 깍두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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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젖은 깍두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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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알바는 신문배달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나는 대학교 때 알바를 시작했고 첫 알바는 신문배달이였다.

신문배달일이야 대학원생이 1+1을 맞추기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만 세상을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서야 깨달은 바 있다.문제는 자전거였는데 자전거를 타지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자신은 자전거를 못타도 자전거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신문을 돌릴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회생활이 결코 엿장수 마음대로 되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므로 반드시 자전거를 이용해야 했다.

당시 동생이 자전거를 이용했는데 동생의 자전거를 빌려 맹연습에 돌입 하였으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어렸을때부터 자가용만 타고다녔으니 손수 운전대를 잡는다는 건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신문배달로 출발했으나 대부분 한달도 넘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대학교 2학년때 첫 배달을 시작했고 그때까지는 방학을 이용해 신문을 돌렸다.

그나마 가장 긴 가장생활을 해 본 것은 인형극이었다. 2003년쯤으로 기억되는데 이때 우리나라의 취업전선은 이태백,사오정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구직난이 심각했으며 지금은 한술 더 떠 십장생,이구백이라는 단어가 유행어가 된 상태이다.

두드리라,그러면 열릴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터넷 구인사이트만 3년째 생출해오다 필자가 하고픈 사역일 중 하나인 인형극선교단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인형극단 활동이었지만 쉽지않았다.

일이 어려웠던게 아니라 나를 받아주는 극단이 없었다. 더운날 지방까지 내려갔는데도 말이다.내가 입단했던 극단도 겨우겨우 들어간 곳이었다.

7월경에 팀장이라는 사람과 면접을 보았고 그 팀장이 하는 말이 인형극이라는 분야가 매우 열악하기때문에 단원들 대부분이 수습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일이 허다하다면서 다른 안정된 직장을 찾아보라고 했지만 뱃속에있을때부터 꿈이었기에 그 일에 계속 매달리기 시작했다.

뱃속에있을때부터는 오버한거고 어머니의 집안이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하나님의 일에대해 뜻을 두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7월에 면접을보았는데 11월에 정식 입단한 것이다. 인형극활동을 하면서 예전에 활동했던 극단 선배들도 자주 만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옛 단원들은 대부분 대형극단에 스카웃 되거나 기성사역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에 부럽다기보다는 새심 분노를 느꼈다.뻥을 치더라도 이치에 맞게 쳐야한다는 생각이었다.수습기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주어진 사명에 끈기를 갖지 않았다고 밖에 볼 수 없기때문이다.

수습기간은 3개월이었고 완벽한게 그 기간을 마친 필자는 본격적인 단원이 되었으나 경기불황은 무풍지대라는 예술분야도 삼켜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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