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성과 역사적 시각이 부족한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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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성과 역사적 시각이 부족한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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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워크 살리는 '세종'의 리더쉽이 아쉬운 때

 
   
     
 

요즘 우리 사회의 관심이 팀워크에 쏠리고 있는 것 같다.

몇해 전 히딩크 감독이 축구로 모처럼 온 국민을 열광에 빠지게 하더니 최근엔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이 줄기 세포 연구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등 대한민국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온 국민이 정치에 해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치권만은 여전히 지지부진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 정, 청 간의 삐걱거림도 그렇거니와 야당의 지도체제도 원만하지 않다. 한 사람의 독선과 아집이 아닌 팀워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에서 여ㆍ야를 불문하고 국민들을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국가나 단체의 수장이라면 최소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은 있어야 한다. '포용성과 역사적 시각'이 부족하다면 그는 자질이 부족한 지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포용성은 다종다기(多種多岐)한 세력을 융화하고 화합하기 위해 지도자가 기본적으로 기울여야할 사항이다.

자신의 탐욕을 앞세우고 이해를 실현하려는 모습속에서는 '포용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정실인사를 행하거나 자기욕심만 채우려 한다면 그 어느 누가 진심으로 순종하며 따르겠는가. 오히려 밖에서 냉소를 지으며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국가나 단체의 주위에는 결국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만 우글거리고 국민과는 유기된 상태를 보일 수 밖에 없다. 오직 자리를 탐내는 무리나 경제적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의 충성과 감언이설만 있을 뿐이다. 이 시점에 달할 때 소위 지도자로서의 권위와 능력이 상실되는 것이다.

'역사적 계승성'도 지도자라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본적 자질이다. 자신이 국민과 약속하고 수립한 새로운 정책을 실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임자가 이루어 놓은 업적이나 좋은 전통을 부정하고 자신의 것만 고집하려는 것은 자질이 있는 지도자라 할 수 없다. 역사적 계승성이 없는 정책은 바른 정책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굳이 고집한다면 그 책임자의 '과실' 이라고 볼 수 밖에 없고 그것은 '공적정책'이 아니라 역사적 몰이해에 근거한 사적(私的)이해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이 최근 제안한 야당과의 연정론도 가볍게 인식하는 것 같아 국민의 입장에서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오죽 시달리면 그럴까 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을 정파간 서로간에 사고파는 물건쯤으로 여기는게 아닌가해서 유권자로서 당혹감을 갖게 된다.

특히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구성할 경우 그 연정에 대통령권력을 이양하겠다"고 한 것은 참으로 위헌적인 발상이라 하겠다. 국민이 민주적 절차를 거쳐 뽑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그런 권한까지 위임하지는 않았다.

노 대통령이 처음 연정을 제안할 땐 여소야대 국회로 인해 국정운영을 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하더니 이젠 지역구도 해소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는 등 말을 바꿔타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지금 중국 베이징에선 한반도의 운명을 가늠할 북핵문제등을 주요 안건으로 6자회담이 진행중이고 경제는 상반기 경제 성장률(GDP)이 고작 3%에 불과한 상태다. 청와대는 최근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23.1%로 떨어진 이유에 대해 한번만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새삼 함께 정사를 논하다 좋은 의견이 나오면 그 의견에 힘을 실어주던 세종의 단순한 리더쉽이 그립고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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