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은진송씨를 번성케 한 쌍청당
스크롤 이동 상태바
대전에 은진송씨를 번성케 한 쌍청당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2일(음10월1일)쌍청당세일사에 많은 은송인들 모여

▲ 쌍청당세일사 모습 ⓒ뉴스타운
지난 22일11시경 대전 동구 판암동 쌍청당 묘역에서 세일사가 거행됐다. 호가 쌍청당(雙淸堂)인 송유(宋愉 ,1389-1446)는 은진 송씨가 회송(회덕 송씨)이라고 칭해질 만큼 대전지역에 가문을 번성하게 한 인물이다. 송씨가 사는 마을이라고 하여 ‘송촌’이라는 洞名이 생겨났을 정도다. 이런 선대조상분의 세일사(매년 음력 10월1일)이니 전국각지에서 은송인들이 모여든다. 이번에는 부산 등에서 버스가 대절되어 왔다고 한다.

다음은 묘비에 적힌 내용 등을 보고 서술한 내용이다. 은송 6대조로 송유(宋愉 ,1389-1446)의 아버지는 극기(克己)이고 진사였으나 일찍 하세하였다. 어머니는 안인 고흥 유 씨 이다. 고흥백(고흥군의 우두머리)준(濬)의 따님이시다.

▲ 쌍청당세일사 모습 ⓒ뉴스타운
안인 고흥 유 씨가 나이 22세에 남편 상을 당하여 부모가 재가를 시키려고 하였으나 안인께서는 죽음으로 맹세하고 송유를 등에 업고 시부모가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그 때 송유는 나이 4세였다.안인 고흥 유 씨는 82세에 돌아가셨다. 묘는 회덕 관동(지금은 동구 냉천로이고 이곳에 ‘관동묘려’란 재실이 있다)에 있는데 황판서 묘 좌측 능선이다.

▲ 쌍청당세일사 모습 ⓒ뉴스타운
▲ 쌍청당세일사 모습 ⓒ뉴스타운
▲ 쌍청당세일사 모습 ⓒ뉴스타운
송유는 타고난 자질이 고매하고 밝았으며 그 그릇이 호걸다워 무인이 하는 일을 좋아하였다. 재주와 명성이 있고 탁월하여 20세도 안되었는데 처음 벼슬이 호분위부사정이 되었는데 처음부터 회덕 고향에 돌아와 조용히 살면서 스스로를 즐거워하려고 하였으며 영화로운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회덕의 백달촌(白達村: 송촌 옛날 이름이다. 후에 사람들이 송씨가 번창하고 명성이 있자 송촌이라고 하였다. 또한 송택이라고도 하였는데 노인들이 서로 전하여 왔기 때문이다. 송유는 3번 이사한 후 처음으로 이곳에 거처를 정하였는데 선덕 7년 임자년(1432년)이다.)에 집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먼저 사당을 안채의 동쪽에 짓고 또 밭 몇 평을 마련하여 제사지내는 물품을 조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사당의 동남쪽에 별도로 집을 세워 특별히 정갈하고 깨끗하게 하였는데 부엌과 목욕탕 그리고 제기를 보관하는 곳으로 각각 단청을 하여 규칙과 제도의 화려함이 옥돌과 같았다. 사치스럽지 않게 정원을 마련하고 섬돌 역시 방정하게 하고 좋아하는 여러 가지 나무를 심어 꽃과 소나무 그리고 대나무가 한가로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