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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대 본관 앞의 인촌 동상 ⓒ 네이버 백과사전^^^ | ||
그런데 나는 오래전부터 이 동상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국내 어느 대학보다도 '민족대학'임을 자부하는 고려대학교가 왜 끊임없이 친일행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김성수 선생 동상을 철거하지 않는가 하고 말이다.
올해로 고려대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고려대는 7-8여년 전부터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중앙광장 건설 등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며칠 전 한승조 고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한 잡지에 기고한 친일성향의 글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한 교수가 적을 두었던 자유시민연대와 고려대학교에서는 한 교수의 거취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한 뉴스통신사에서는 이와 관련해 '민족고대 100주년 이미지 물거품 위기'라는 자극적인 기사를 생산해내기에 이르렀다.
명예교수 한 명이 친일성향을 보였다고 해서 마치 그가 적을 둔 대학 전체와 연관이 있다고 확대하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말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나 기자들이 부풀린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민족사학을 자부하는 고려대의 그간의 태도에 있다. 친일행적의 김성수 동상을 여전히 세워둔 채 '민족고대 100년' 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고려대학교는 차제에 '친일과 민족'이라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소속 교수의 망발이 일시적인 여론의 질타를 받는다고 해서 임기응변식으로 당해 문제 처리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고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친일문제를 명백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고려대학교가 '민족사학'으로서의 자부심을 100년, 200년 영원히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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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졸업생들이 자발적 갹출로 세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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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인촌에 대한 논쟁은 이미 1990년대 초에 끝난 상태입니다.
민족의 지도자에서 친일자본가까지 그 평은 너무나 대조적이고 다양했죠. 정주영회장이 한국경제건설의 아버지에서 노동계에서 일부과격파들에겐 노동자 탄압의 원흉이라는 평가처럼...
인촌의 친일논쟁의 종지부를 찍은것은 그 누구도 아닌 일본에 의해서 결론이 났답니다. 9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일제시대의 당시 조선총독부산하 경시청비밀자료 중 일제의 주요감시대상 목록이 공개되면서 밝혀지게 된 것이랍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중 주요감시대상을 4등급으로 분류했는데 1등급은 독립군과 그 친족 등 반란세력으로 정하고 2등급은 최대의 요주의 감시대상으로서 독립군에 대한 간접지원이 의심되고 언제라도 유사시에 일본제국에게 적대적인 인물들이었죠. 3등급은 적대세력, 4등급은 의심이가는 정도 등의 분류였습니다.
그 감시대상 등급 중 2등급 요주의 감시대상에 인촌이 올라있었던 겁니다. 친일파가 일제에 반란을 꾀하는 요주의 감시대상? 웃기는 말이 되어 버리죠? 그 이후로 학계에선 인촌의 친일논쟁은 종지부를 찍은 거랍니다. 이젠 누구도 거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죠.
왜 총들고 만주로 가지 않았냐라는 말을 한다면 할말이 없죠. 하지만 민족의 독립이 독립군만에 의해서 쟁취되는게 아니랍니다. 독립군이 만주에서 목숨을 받쳐 싸울수 있는 뒷 받침은 당시 민중의 뜻이었던 군자금이 없었다면 더욱 어려웠겠죠.
또한 인촌이 자신의 안량한 안신을 위해서 친일행각을 벌였다면 왜 돈안되는 교육사업을 했겠습니까? 당시 인촌이 인수한 보성전문은 우리민족의 유일한 정통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아시다싶이 대한제국의 내장원경이었던 이용익선생이 교육구국의 일념으로 부국자강을 위해 이땅에 최초로 지금의 법대와 경영대학인 법학과와 이재학과를 만들면서 보성전문을 설립한 것입니다. 인촌이 보성전문을 인수 할 당시 보성전문은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종교 지도자였던 천도교 교령
손병희선생께서 운영하고 계셨죠 일제의 탄압으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을때 당시 조선인 최대의 민족자본가였던 인촌이 인수하고 자신의 모든 사재를 털어 민족의 자존심인 보성전문을 반석위에 세웠고(지금 본관이 그때 세운거랍니다.) 지금의 고려대학교가 된 것입니다.
보성전문의 역사적 의의는 실로 엄청나죠. 만약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결국 보성전문이 없어졌다면 그야말로 일제시대에서의 우리민족의 교육의 대가 끈어지는 것이죠. 근대화의 교육에 있어서 우리 자신들의 자주적인 교육은 없어지고 미션계 외래 교육과 일제의 신민교육만이 남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인촌이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 보성전문을 살린 것 이었죠.
일제 패망 직전인 일제말기 탄압은 극에 달하고 조선총독부는 동아일보등 당시 우리민족계열 신문 들은 모두폐간시키고 매일신보라는 일제의 기관지만을 남겨놓고선 학군지원병 모집을 위해 당시 민중들에 의해 존경을 받았던 인사들의 이름을 도용하여 학도병자원 글을 날조해서 실었죠.
당시 그들은 자신의 글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죠. 만약 그런식으로 나섰다면 지금의 고려대학교 또한 패교되어 버렸겠죠. 그런 와중에 일제 기관지에 실렸던 그 '학도병모집', '친일찬양'이란 글 들이 나중에 일부 주장자들에 의해 친일로 몰린 이유였답니다.
총을 들고 만주로 가는 것만이 민족을 위하는 것 일까요? 일제말기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절 분루를 삼키면서 민족교육을 지켜내고 독립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장정이란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김준엽 전 고대총장님께서 일제시절 만주에서 독립군으로서 독립운동과 이후의 현대사를 쓰신 책입니다.(최근에 5권이 완간되었죠) 이시대의 마지막 진정한 선비라고 일컬어지는 독립군이자 전 고대총장이셨던 올곧은 그 분이 인촌이 친일파였다면 고대에 남아 있었겠습니까?
세상에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많답니다.
사람마다 어떤 대상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근거에 의한 판단이어야지 떠도는 말을 진실처럼 여긴다면 지성인으로서의 자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출처 : http://prochosun.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