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에 워커힐호텔 있죠? 그 워커힐은 잘 알아도, 사람들은 워커힐 즉 ‘워커 장군이 있는 언덕’이란 의미를 잘 모를 수 있다. 특히 여기에 이름을 빌려준 워커 장군의 이름과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막상 기억이 희미할 것이다.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긴 일이기 때문인데, 짐작컨대 문재인도 이걸 모를 게 분명하다.
워커힐호텔의 역사는 이렇다. 김종필이 박정희 대통령의 허락 아래 만든 호텔이 바로 '워커힐'이었다. 왜 호텔이었을까? 당시 주일미군이 한국에 올 경우, 이용할 수 있는 고급 여가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미국 측이 재촉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달러를 벌 수 있으니 좋고, 미군 측에서는 비상소집시 바로 일본에 복귀할 수 있었으니 양측 모두 이득이었다.
그런데 김종필은 호텔을 지으며 6.25 당시에 전사한 워커(Walton H. Walker) 사령관의 이름을 땄다. 왜? 워커 장군은 '대한민국의 수호천사'라는 걸 당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낙동강전선의 전쟁영웅이며, “나는 한국을 지키기 위해 죽을때까지 머물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유명한 장군이다. 워커는 2차세계 대전 때 기갑부대장이었던 패튼을 보좌했던 장군이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에 투입됐다. 당시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고 해서 한국군의 사기를 북돋았고, 낙동강 전선을 통해 열세이던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야말로 불세출의 장군이었다.
실제로 최후의 방어선 낙동강전선을 구축하고 대구와 부산을 공산당으로부터 지키면서, 미국 본토에서 지원군이 오면 전쟁의 전환점을 이루겠다는 전략을 세웠고, 그것이 통해서 승리를 이룰 수 있었다. 즉 진지전과 기동전을 결합한 전략인데, 그런 전략은 미국군사학교 교과서로 채택이 됐을 정도다. 그리고 워커의 외아들 샘 워커도 장교로 6.25에 참전했으니 대단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로 70년 전 12월 23일 경기도 동두천에서 병사가 몰던 지프차가 뒤집혀 워커 장군은 전사를 하고 말았다. 그걸 미국 입장에서 보자. 실로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전사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전범 김일성의 전용차를 워커 부인에게 선물로 보내면서, 외아들과 남편을 모두 한국전에 보낸 부인을 장군 중의 장군이라 호칭하며, 워커의 위대한 승리를 한국인들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그런데도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추모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자 맥아더 특별명령으로 부친 시신을 호송하는 역할을 부여하자 그제서야 그 명을 받아들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앨링턴국립묘지에 안장시키는 걸 지휘한 게 그의 아들이었다.
샘 워커는 월남전에도 참전하며 4성장군이 되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부자 4성장군 가족이 됐다. 어떠냐? 그야말로 멋진 스토리, 가슴 뭉클하지 않느냐? 그래서 부산에 있는 유엔평화기념관은 워커 장군 추모의 공간인데, 워커의 70주기를 맞아 이 나라 정부가 아닌 민간부문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가 마련 중이다. 부경대학교가 워커 캠프를 복원하고, 추모공원 조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워커 장군을 기리는 기념일 제정 등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부경대 하봉규 교수 아시죠? 유명한 자유우파 인물인데, 그는 워커장군 70주기을 맞아 영화와 오페라 제작을 추진 중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좀 마음 편치 않은 게 있다. 그런 일은 정부가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 문재인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하긴 반미를 하느라고 정신없는 주사파 정부가 이런 일에 나설 리가 없다. 방송 말미에 이 말을 해야겠다. 워커장군의 후손들은 여전히 한국을 찾으며 한미관계의 상징이다. 이번 행사에 문재인, 당신이 참석해서 그 후손들의 손을 잡고 끌어안아주는 제스춰라도 하길 바란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당신이 그동안 저지렀던 죄를 조금은 눈감아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겠다.
※ 이 글은 15일 오전에 방송된 "文, 워커힐 잘 알아? 그럼 워커 장군도 알까?"란 제목의 조우석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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