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타락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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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타락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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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언론이 건전한가는 물음에 답은 단연코 NO 이다

▲ ⓒ뉴스타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언론이 이상하다. 신문이 병들었다. 방송이 미쳤다. 언론이 죽었다는 비난과 탄식이 터져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김대업 병풍조작에서 광우병촉불폭동을 거쳐 국정원 댓글 소동과 정윤회 문건에 이르기까지 터무니 없는 편파보도와 저질 선동방송 습성이 최근에는 종편과 포털로 확산되면서 일탈 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

1997년 6월 24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이렇게 시작했다.

"22일 방영된 KBS '일요스페셜'은 북의 지옥 같은 참상을 충격적으로 전했다. 그곳은 '노동자의 천국'이 아니라 당 간부와 상층부 20%를 제외한 80% 인민의 죽음의 현장 이었다. 굶는 사람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굶어죽은 사람들의 원혼이 떠도는 생지옥... 이것이 김정일이 만들어 놓은 북의 현실이다."

그러면서 사설은 "결론부터 앞세워 김정일은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물러나야 한다. 김정일 정권은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고 정권을 새로운 개혁-개방 잠재 그룹에 이양해야 하며 지금까지의 주체사상체제를 북한 판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문하였다.

사설은 이어서 "오늘의 생지옥 상 하나로 김정일정권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의 근거는 100 % 소멸했다. 이런 정권 또는 그 10분의1 만 닮은 정권이 남한에 있었다면 운동권과 진보적 지식인과 일부 종교인들은 아마 벌써 '타도'를 외치고 분신 소동들을 벌였을 것이다."라고 국내에 산재 해 있는 맹목적 종북성향 반역세력에게 맹성(猛省)을 촉구하였다.

사설 말미에 "혹자는 그렇게 하다가 김정일이 전쟁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느냐 하지만 공산당은 기가 센 상대방이 아닌 겁먹은 상대방만 만만하게 가지고 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식량은 주되 할 말은 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고 진단하면서 "왜 남한에 나쁜 정부가 나올 때만 분노해서 '타도'를 외치고 북에 나쁜 정부가 있을 때는 미소를 지으며 '덮어놓고 화해'만 역설해야 하는가?"라고 자탄했다.

이 사설 하나만 보더라도 적어도 1997년 6월 24일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언론의 기개(氣槪)가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KBS '꽃제비' 방영과 조선일보 '김정일 퇴진촉구 사설'로 남북 "빨갱이들이 남한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가공영방송 KBS와 '조선일보' 여서가 아니라 발행부수와 구독률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 때문에 '중심고리타격'전술 원칙에 따라 조선일보와 KBS를 집중타격의 표적으로 삼았다.

김정일은 1997년 6월 27일부터 미친 듯 날뛰기 시작하면서 반제민전(통혁당 후신)을 통해서 반동언론과 투쟁지령이 하달되면서 남한 내 친북세력이 총궐기 하였다.

안티조선을 빙자한 애국정론 죽이기가 다음과 같이 본격적으로 전개 됐다.

● 문제의 발단

▷ 1997년 6월 22일 KBS 2, 특집 "꽃제비 참상" 방영

▷ 1997년 6월 24일 조선일보 김정일 퇴진촉구 사설

● 북한의 보복위협

▷ 1997년 6.27-29 북괴 평양방송

- 조선일보 폭파 편집간부 살해 위협

▷ 1997년 6.29 조평통 조국전선 성명

- 조선일보 폭파, 기자 간부 살해 피의 보복 다짐

▷ 1997년 7.1 민민전 경고장

- 조선일보 폭파 천백 배 보복, 명을 다 할 때까지 투쟁

● 남한 내 반 조선일보 소동

▷ 1998년 5월 KBS 특집팀 '조선일보를 해부한다' 불방

▷ 1998년 7월 [Anti-좃선] 운동 등장

▷ 1998년 [말]지 MBC PD 수첩 이승복 기사 작문설 유포

▷ 1998년 11월 2일 급조된 언개련(성유보) 민언련(김주언)

등 단체가 문규현 강준만 들과 조선일보 폐간 요구 시위

● 북괴 조선일보 기피 및 타도투쟁 가열화

▷ 1998년 11월 제 1차 금강산 관광선 조선일보 기자 하선 금지

▷ 2000년 6월 적십자 회담 조선일보 풀 기자 입경(入境) 거부

▷ 2000년 6.15 정상회담 시 조선일보 기자 취재거부 소동

▷ 2000년 7월 북괴 조국전선 '통일의 걸림돌' 조선일보 폭파 위협

▷ 북측지역에서 개최되는 남북고위급회담 조선일보 취재 전면거부

이로써 조선일보 對 북괴 김정일 독재정권 싸움이 자연스레(?) 남한 내 종북(진보)세력 對 반일 감정까지 차용(借用)하여 친일(?)족벌언론이라고 집중 매도 당하고 있는 '좃선일보'의 대결처럼 변질됐다.

김대중의 언론개혁을 빙자한 우파정론 죽이기와 남한 언론 김정일에 투항

2000년 8월 5일 문화관광부 장관 박지원 인솔 하에 한겨레신문 최학래를 신문사 대표로, KBS 박권상을 방송사 대표로 남한 신문방송 통신사 사장단 46명을 끌고 평양을 방문, 11일 북한 노동신문 책임주필 최칠남과 남한 한겨레신문 사장 최학래가 5개항의 남북언론합의서에 서명하고 12일 김정일과 오찬을 통해서 사실상 투항(投降)을 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위 남북언론합의문은 ▲반북.반김정일 보도금지 ▲퍼주기 반대 반화합 보도금지 ▲반우리민족끼리 보도금지 ▲반연방제통일 보도금지라는 대북보도 4대 지침을 우회적으로 합의하고 이의 이행을 감독할 '남북언론교류협력위원회'를 남한에 설치키로 한 것이다.

이로써 2000년 8월 11일 남한언론이 김정일 앞에 투항하면서 '남북언론교류 및 협력위원회(남북언론협회)'라는 유령단체가 총독처럼 군림하게 되면서 남북언론협회 주 멤버인 '전국언론노조'와 기자협회의 영향력이 날로 커진 것이다.

일예를 들자면, 종북반역세력의 움직임은 사소한 것까지도 추적 보도를 하면서 우익애국세력의 주장은 어떤 것도 외면하기 일쑤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존칭 없이 이름만 쓰든가, 일부 포털과 찌라시성 언론(?)에서는 쥐박이 닭그네라는 비칭(卑稱)과 욕설을 남발하면서도 김정일에게는 '국방위원장' 김정은에게는 '국방위 제1위원장' 님 이라고 꼬박꼬박 경칭(敬稱)과 존재(尊待)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음 또한 미루어 짐작이 가는 것이다.

2001년 1월 11일 김대중이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하자 당시 해수부장관이던 노무현이 덩달아서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했는가 하면, 국세청.공정위가 언론사 목조르기에 나서고 언개련 등 급조 어용시민단체의 우파언론 성토 여론조작과 함께 MBC KBS YTN 한겨레 오마이뉴스 대한매일 등 친정부 및 용공성향 언론을 총 동원 우익애국언론을 집중매도 선전선동, 전방위 압박으로 조선 중앙 동아 '사주구속, 자살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노무현정권의 언론과의 전쟁 그 끔직한 실상

▷ 2002년 6월 노사모 조선일보 50만 부 절독운동

▷ 2003년 2월 명계남 문성근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힘' (조폭)언론 진압단 발족

▷ 2003년 6월 조선일보는 없어져야 할 범죄집단으로 매도

▷ 2003.9월 박지원 돈 봉투, 언론사 부장급 500만원 차장급 300만원 매수설 유포

▷ 2005.1.1 신문법통과 한경오 등 종북성향신문 일방지원 길 터

▷ 2007.10.12 국정홍보처 정부종합청사 기자실 폐쇄로 정부부처 및 지자체 공공기관에 까지 파급 확산 시켰으나, 신문방송통신 어느 하나도 저항은커녕 '찍소리도 없이' 굴복하였다.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권 10년의 악몽과 MB중도정권 직무유기 5년

김대중과 노무현 좌파정권이 벌인 언론과의 전쟁은 2000년 8월 11일 남북언론합의서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김대중 노무현의 우파 정론(正論)죽이기를 통해서 김정일이 하고 싶은 남한언론정복 대리전(代理戰)성격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좌파들은 일반적으로 언론의 기능을 (ⅰ)정보전달, (ⅱ)여론형성, (ⅲ)권력감시 (ⅳ)국민계몽,(ⅴ)대중조직화,(ⅵ) 대중동원의 기능과 역할을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명분이 어떻든 간에 우파정론을 죽인다는 것은 '우파 애국세력 와해 무력화'를 겨냥한 정치적 술수이며, 우익애국세력 고립 와해로 2002년 3월에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한 국가보안법 폐지 약속(?)을 지키고 김대중이 2000년 6월 북괴 김정일과 합의한 '낮은 단계(?)연방제' 합작을 실현하려는 저의는 없는지? 언론과의 전쟁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가 진정 알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대 대선에서 580만 표차 더블스코어로 당선 된 이명박이 광우병촛불폭동에 기가 꺾여 섣부르게 '중도(中道)'를 표방하면서 언론의 제 모습을 되찾게 하고 제자리에 앉혀야하는 정부로서 책무를 유기함으로서 대한민국 언론이 부지불식간에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남한내부 와해' 연방제적화통일이라는 김정일의 야욕을 채워주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한국 언론의 각성과 새 출발을 촉구한다.

한국 언론이 구미열국에 비해서는 다소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후일 일제탄압에 굴복하여 친일시를 쓰는 등 훼절을 하여 친일파의 오명을 쓰게 됐지만, 1905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체결을 보고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논설을 게재한 장지연(張志淵)선생의 시비정론(是非正論)의 뿌리가 결코 얕지 않다. 시비정론의 맥을 다시 흐르게 해야 한다.

300만 아사자를 낸 김정일에게 아부 아첨하는 기사를 쏟아내기에 바빴던 언론(?)들, 14.5mm 4신 고사기관총으로 고모부인 장성택을 도륙한 비인도 반인권 김정은의 금수만도 못한 패륜(悖倫)도 눈감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란 존칭을 고집스럽게 사용하는 언론(?)들, 김정은의 최고존엄을 위해서 대북삐라살포마저 중단해야 한다는 언론들, 천안함폭침이 김정은 어뢰공격이 아니라 6.25때 기뢰폭발, 피로파괴, 연안암초 좌초, 미군잠수함과 충돌 등 해괴한 보도로 김정은 편들기에 급급한 언론들 반성과 참회가 있어야한다.

이제 한국 언론은 DJ에 지조를 팔고 고 노무현에 아첨하던 습성을 못 버리고 좌편향 외눈에 비치는 것만 쓰고, 종북과 반역에 이로운 것만 보도하는 이적반역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까닭 없이 정부를 물어뜯고 체제를 부정하는 악마적 습성을 버려야 한다.

최소한 꽃제비 참상을 보도한 1997년 6월 22일 KBS 2의 정론(正論)과 김정일 퇴진을 촉구한 1997년 6월 24일자 조선일보 사설자의 언론인으로서 기개와 정의감에 입각하여 직필(直筆)의 전통으로 회귀해야 한다.

구약시대 멸망을 앞둔 소돔과 고모라에 최대 50명의 의인이 아니라 최소 10인의 의인이 필요 했듯이, 대한민국 언론에는 50인의 의로운 기자와 PD가 있어야 하며, 10개 사의 신문 방송 포털만 정신을 차리면, 대한민국에 위기와 절망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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