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 속에서 세상을 배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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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속에서 세상을 배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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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의 독서이야기] 누가 캔디를 모함했나

^^^▲ <누가 캔디를...>의 표지
ⓒ 살림출판사^^^
내 어릴 적에 '줄줄이 사탕'이란 게 있었다. 막대로 이어진 주황과 파랑, 색색의 사탕을 낱개로도 팔았지만 어머니의 심부름을 잘해 어쩌다 줄줄이 사탕을 한 줄 길게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떤 성취감보다 큰 것이었다.

그 작은 손 안에 든 줄줄이 사탕처럼 글이 내 작은 마음속에 길게 원을 그리며 포만감을 제공할 때가 종종 있다. 다름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쓸 때다.

그런 정서는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그것은 바로 이 책 <누가 캔디를 모함했나>에 해답이 있다. 캔디를 아는 사람은 그저 안다는 그 무미건조한 표현에 당장 불만을 토로할지도 모른다. 캔디를 아는 순간, 정말 그건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캔디는 지금 30대를 보내는 여성이라면 '캔디 속에서 세상을 배웠노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캔디는 그만큼 우리에게 강력한 힘이었다. 나는 그때 얻은 마력으로 지금도 캔디의 그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싶다. '캔디'가 들어가는 모든 것에 빠져드는 저력이 아직도 유효한지라 이 책을 주저 없이 손에 넣었다.

이 책은 순정만화의 정의와 배경에서 출발한다. 6장으로 구성된 목차를 살펴보자.
초기(1950~70년, 순정만화에 대한 지형도)→ 정착기(80년대)→부흥기(80대 후반~90년대)→지평(90년대, 작가 중심으로 열거)→ 새로운 세기(90년대 말)

이 책에 언급된 것처럼 나는 정착기와 부흥기 때의 만화세대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만화방으로 돌진하던 우리들, 지금의 연예 스타와 마찬가지로 김진, 신일숙, 황미나의 이름을 조잘거렸다.

돌아보면 지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도 아니고 소위 명작이라고 하는 추천도서도 아니었다. 내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의 지난한 삶에 의식적인 눈을 갖게 된 내력에는 황미나와 신일숙이 있었다.^

황미나, 순정만화계의 황후

"황미나의 순정만화는 고대 유럽<아뉴스 데이>, 중세 유럽<불새의 늪>, 근대 유럽<이오니아의 푸른 별>등 유럽의 역사적 변혁기를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선택했다. 역사적 격변기를 젊은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는 로맨틱한 분위기뿐만 아니라 인간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가능하게 했다...

이 같은 탐미적이고 유미적인 컷의 삽입은 고전적인 미장센과 칸 나누기. 프레임 전개를 붕괴시키고 순정만화적 미장센과 칸 나누기, 프레임 전개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동작 중심의 프레임 전개가 아닌 인물 중심의 프레임 전개는 순정만화적인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황미나가 정상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최고의 인기에 이르렀을 때 인기의 기반을 부정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던 성실성이었다고 한다. 황미나를 통해 이성을 알게 되었던 그 시절, 그녀가 가르쳐준 이상의 남성은 위태로운 역사 가운데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서글픈 비운의 사랑을 맺는 남녀를 통해 사랑이란 결코 즐거움, 기쁨일 수 없다는 사랑에 대한 슬픔의 코드를 감정으로 동의했다. 책 사이사이에 배치된 한 장면의 예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옴을 느끼며 지금 다시 읽어도 세월의 공백을 메울 수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신일숙

신일숙의 만화는 어떤가? 그녀의 여러 강한 여성들은 그동안 시도 때도 없이 눈물 흘리며 연약한 이미지의 여성상을 확실히 뒤집어 버렸다. 그녀의 그림에서 남성적인 선은 그녀의 인물들의 성격과도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매체를 통해 여성이 지배하는 나라가 실제로 존재함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작품<아르미안의 네 딸들>도 단순한 상상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한동안 여성이 지배하는 이 나라를 그려 본 적이 있었다.

'강인한 의지력', 그녀의 작품은 이 단촐한 표현으로 나의 성장을 키워 왔고 지금도 나의 성향에 일조하고 있다.

김진, 작가주의의 최고봉

그리고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작가, 김진. 그녀의 만화는 두고두고 음미해 보고 싶은,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들. 그녀의 서정적 분위기는 나의 취향을 자리잡게 만들었다. 그녀를 알게 된 건 그림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특별히 화려하지 않은 그녀의 주인공들, 배경에는 패션을 알게 하는 볼거리보다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 라는 부제에서도 밝혔듯이 김진의 작품은 다른 만화가 갖는 재미와는 남다른 차별성이 느껴졌다.

그녀의 후기 작품을 만나지 못한 점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었다. 김진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졌다. 유달리 제목이 눈에 띄어 작가를 확인할 때면 늘상 '김진'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던 기억, 그녀의 작품은 '아름다운 서정'으로 남아 있다.

누가 만화를 금서(禁書)로 만들고 있는가. 이번 겨울방학 땐 천방지축 뛰어 다니는 아들녀석한테 순정만화를 읽어줘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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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s 2003-10-23 09:27:50
추억의 만화영화 캔디.. 허헛~ ^ ^

오마이캔디 2003-10-23 12:38:39
오, 내 사랑 캔디여...지금은 뉘 아내가 되어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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