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그 인생의 정오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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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 그 인생의 정오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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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지나는 이들에게

당신은 인생의 어느 정점에 서 있는가. 그 누군가는 마흔살을 '인생의 정오'라고 표현했다.인생의 정오'에 서서 내 마음의 행간을 호미로 일구어본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마흔 살에 [나목]이란 소설로 등단했고,지금까지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일흔의 나이에 썼다고는 믿어지지 앟는 장편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은 젊은 소설이다. 늦깎이 등단에, 그 속에 뭉쳐 있던 소설에의 열정과 창작욕은 지칠줄을 모른다.

프랑스의 유명한 산문 작가'미셸 투르니에'그 역시 마흔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나도 패거리와 부대편성,군대식 암호같은 것을 몹시 좋아했었다. 그러다가 늙어가면서 나는 그런 모든 것을 뒤흔들어 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집단이니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들을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고독,독립,그리고 창의에 필연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위험 부담이 더이상 두렵지 않아졌다. 그리하여 마흔 살에 나는 책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살 때는 다만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책들을 말이다."

그는 프랑스 파리,교외의 끝이며 시골 마을의 시작인 '슈와젤 마을'에서 사제관을 수리해서 지금까지 고독 속에 칩거하며 살고 있다.

그 가운데서 나오는 그의 글들은 정제되어 있고,철학적이며 산문에 대한 호기심과 존중감과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게 할 만큼 좋은 글을 쓰고 있다. 흔한 소설보다는 산문에 더 큰 비중을 두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다.그의 산문을 읽으면 언어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버트란트 러셀의 뚜렷한 인생의 변화는 '서른 여덟 내지 마흔 네살 무렵에 일어났다. 세계 제1차대전이 일어났고,그는 또한 '오톨린 모렐'이라는 여인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그 후로 더욱 왕성한 창작 활동과 버불어 풍부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세익스피어는 40대 초반에 [리어왕]과 [템페스트]와 같은 희곡을 썼는데, 그의 천재성의 절정을 이루었다.

마흔이 된다는 것은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앞으로 나아갈 인생의 향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책임을 느껴야 하는 나이임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꽉 조여졌던 나사를 너슨하게 풀어 놓을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빼곡하게 빈틈없이 노트 가득 글을 메웠다면, 이제는 쉼표와 느낌표와 말줄임표와 물음표를 찍으면서 행간 행간마다 사색의 길을 들여놓고, 쪽빛 바다를 엎질러 놓기도 하고, 따가운 햇살 아래 더욱 짙고 무성한 숲도 옮겨 놓기도 하며,

물소리, 바람소리,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풀썩이는 먼지나는 비포장 길을 걸어 보면서 관조 할수 있는 나이인 것이다.

그동안 몸을 꽉 죄는 양복의 삶이었다면,이제는 편안한 스웨트와 몸의 피부와 부담없이 통하는 통넓은 면바지를 입은 듯한 편안함으로,몸과 마음의 소리와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나이다.어떤이에게는 또한 그동안 낭비한 삶을 만회하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열정을 다해 사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중년을 '인생의 정오'라고 표현했다.삶의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어지는 그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흔살의 나이가 인생의 정오라면,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며 점검하고 궤도를 수정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흔히들, 마흔 즈음에 이르면 자기가 살아온 삶을 우연히 뒤돌아 보았을 때,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 길이 내가 원하던 길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고도 체념 속에서 왔던 길을 그대로 나아간다.

지금까지 왔던 그 길을 따라 살면서 그저 이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라고 체념 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걸 알면서도 남은 생을 그대로 간다면, 남은 인생에는 후회가 남으며 자기삶을 기만하는 행위다.

어떤이는 마흔 즈음에 돌아본 자기 삶에서 궤도를 수정한다.마흔즈음에는,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연히 알게 되는 시기이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본성이 원하는 것에 마음이 움직인다.

사람과 사람,관계와 관계 속에서 부대껴 정신없이 달려온 삶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된다.지금까지 자신이 추구해 왔던 것에 회의하기 시작하고,혹은 자기 자신은 없고 책임과 의무,형식의 틀에 얽매여 살아온 삶의 굴레에서 탈출하고 싶은 반항이 생긴다.

마흔 즈음엔 또 하나의 정점이다. 혼돈의 시간이다. 이제까지의 삶을 중간정산 하는 시기이다.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채에 올려놓고 까불어대는 냉정한 시기이다.모든것에 물음을 던지는 시기이다.이상한 기류가 생성되고 또한번의 지독한 회의와 회오리에 휘말린다.

혼돈 뒤에 오는 고요함...거기에서 마음의 행간이 생긴다.

마흔살은 인생의 정오다.정오의 시간에 햇볕이 가득하다.충분히 사랑할 수 있고 충분히 마음을 열고 나눌 수 있다. 이제까지 걸어왔던 시간을 돌아 보며 마음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관조할 수 있으며 너그러워 질 수 있는 시기이다.그리고 문득 돌아본 나의 삶의 여정에서 궤도를 수정 할 수 있으며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시기이다.

인생의 정오 한가운데 서서,하루 하루의 삶을 호흡마다 의미를 두며 넉넉함과 너그러움과 사랑으로 마음을 열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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