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경건히 여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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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경건히 여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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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무엇보다 생명이다

“밥을 보기를 원수같이 하라.”, “밥을 먹다가 배가 부르다 싶은 생각이 들면, 남은 밥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차 없이 버리세요.” 게다가 또 한 마디를 더 보탠다. “밥을 버리는 게 어쩐지 죄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젠 구시대적인 생각입니다.”

다이어트에 관한 책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는 말이다. 심지어 나도 다른 이들에게 다이어트를 권할 때 이와 꼭 같은 말을 한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밥을 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잉된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 섭취하는 식사량을 줄이는 것은, 꾸준히 운동과 함께 건강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밥을 버리지 않는다.

정말 거의 한 톨도 버리지 않는다. 밥그릇의 바닥이나 언저리 어디에 붙어있는 마지막 한 알까지, 젓가락으로 긁어서 철저하게 먹는다. 밥을 한 톨이라도 더 먹기 위한 식탐 때문이 아니다. 내가 남들에게 하는 말대로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밥이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할머니로부터 밥을 먹다가 버리는 것은 나쁜 것이란 말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늘 식욕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매일같이 밥을 남기곤 하셨다. 때문에 한술이라도 더 들게 하시려는 어머니와 날마다 식사 때마다 싸우다시피 하셨다.

밥 버리는 자에게 화 있으리라

어디 동화책에선가 읽은 농사를 짓는 농부의 땀방울에 대한 소중함에 대한 생각도 조금은 있다. 시골에 사시는 친척집에 찾아가서 며칠씩 보내다 돌아오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농사에 대해선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농촌은 왠지 불편한 곳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음식, 몸 속에 들어가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에 대한 어떤 소중함을 느낀다. 오늘날 밥이나 쌀은 시장가격에 따라 형성되는 교환가격만큼의 가치를 가질 뿐이다. 그러나 나는 왠지 밥만은 무척 아낀다. 모든 음식을 다 아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물은 과감하게 버리도록 하는 가장이고, 어쩌다 과자를 먹게 되어도 한 두 개만 먹다가 남겨버린다. 심지어 아내가 주는 과일도 다이어트를 이유로 남기기 일쑤이다. 나 자신은 과일을 무척 좋아하지만 늘어나는 체중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아끼고 소중한 의미를 두는 것은 유독 식탁에 오르는 음식에 한해서이다. 그 중에서도 밥그릇에 담긴 밥에 대해서는 나는 유난스레 의미를 둔다. 그래서 애당초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밥을 철저하게 덜어낸다.

아내가 최소한 이 정도는 먹어야 되지 않느냐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담아주는 밥을, 몰인정하게 반 정도는 다시 덜어내 버리고 만다. 식사 때마다 내가 밥그릇을 들고 밥통 앞에 서서 얼마 안 되는 밥을 다시 덜어내는 모습은 오래된 우리 집의 일상사이다.

그렇게 밥을 덜어내고 나면, 내 밥그릇에는 정말 한 입에 다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밥만 남게 된다. 보통 먹는 숟가락으로 3번 정도 먹을 만큼의 양. 아무리 부슬부슬 퍼 담아도 반 공기도 훨씬 안 되는 양이다.

그래서 나는 밥을 절대 숟가락으로 먹지 않는다. 젓가락만으로 먹는다. 그래서 한번에 밥알 10개 정도씩을 조심스레 담아서 입에 넣는다. 그리곤 밥알이 입에 닫는 느낌과 씹히는 느낌, 그리고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음미한다.

밥의 향기를 아는 사람은 그 냄새가 얼마나 좋은지 알 것이다. 장작불이나 연탄으로 밥을 할 때 밥솥에서 흘러나오는 밥물에서 느껴지는 설익은 밥의 냄새. 그리고 요즘도 전기밥솥 뚜껑을 열 때면, 뽀얗게 올라오는 하얀 김과 함께 코끝에 느껴지는 향긋한 냄새. 나는 그 냄새의 흔적들을 요즘도 내 밥그릇에 담겨진 밥에서, 그리고 젓가락을 통해 입으로 전해지는 밥알들에서 느끼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내가 받은 몇 가지 축복들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나의 훌륭한 식욕이다. 나는 도무지 음식을 가리는 법이 없고, 때때로 허리띠를 풀고 먹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거의 한없이 먹을 수 있다.

그 축복받은 식욕이 지금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본능을 가라앉히며 젓가락으로 전해지는 밥알들의 맛과 향기를 차분히 음미한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밥을 버리지 못한다.

내가 밥을 아끼는 것은 다이어트 때문만은 아니다. 학창시절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나는 밥을 남긴 기억이 별로 없다. 한때는 나도 아무리 먹어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김치하나면 한두 숟갈에 큰 밥공기를 뚝딱 해치우던 시절에도 나는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밥그릇 바닥까지 긁어먹곤 했었다.

밥은 생명이다

배가 고파 더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왠지 남기는 게 싫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국도 마지막 국물 한 숟갈까지 다 먹어버리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밥을 사먹는 게 싫다. 쓸데없이 많이 나오는 밥을 남기는 것도 싫고, 너무 많은 반찬도 싫다.

나는 철저하게 밥을 먹을 만큼만 덜어놓는다. 그리고 몇 가지 반찬만 택해 바닥이 비칠 때까지 다 먹는다. 고루고루 먹어야 편식을 하지 않지만, 그건 집에서 하는 일이다. 너무 많은 반찬들을 주는 집에 대해 나는 일종의 기피증을 가진다. 결국엔 그런 집에 잘 가지 않게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절대 밥을 남기지 못하도록 한다. 신나게 뛰어 놀던 아이들이 밥상 앞에만 않으면 얌전해진다. 내가 밥이든 국이든 남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고 관습도 변한다.

그리고 세상의 정책도 변한다. 내가 어렸을 때 보리밥을 장려했었다. 그러다 쌀이 남아돌게 되면서 이제는 쌀밥을 장려하는 세상이 되었다. 밥도 결국은 소비재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어렴풋이 밥은 생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시대에 뒤진 것일지도 모르는 그 생각은 이젠 나에게 일종의 종교적 신념 같은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을 집안의 가훈처럼 내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세상은 날마다 변해가고, 내 아이들이 살게 될 지금과는 또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그 시대에도 아이들이 아빠를 추억하며 간직할 만한 신념 하나를 물려주고 싶다. 밥, 그리고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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