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어깨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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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어깨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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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 않은 그대의 어깨

슬픈 어깨를 본다. 뒤돌아 앉은 어떤 이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다. 그는 슬픔에 잠겨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슬픔들이 있다. 그는 어떤 종류의 슬픔에 감염된 것일까. 독한 놈일까. 아니면 그저 슬쩍 스쳐가는 감기 같은 것일까.

공연히 호기심이 든다. 슬퍼 훌쩍이고 있는 낯선 이의 어깨를 ‘툭’ 치며 “여보시오. 왜 그리 울고 있소!”라고 말할 만한 늑살이나 배짱을 가지지 못한 나는, 그냥 그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줄 용기도 없고, 매정하게 그를 떠나갈 위인도 되지 못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존재가 바로 나이다.

슬픈 어깨의 사나이는 그곳에 깃들어 있고, 내 발길을 그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나는 오고가며 한 번씩 그가 있는 곳을 쳐다본다. 그가 아직도 그 모습으로 그곳에 머물고 있는가 알고 싶어 일부러 그 부근을 맴돌아 다니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겁이 난다.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기라도 하면. 그러면 나는 어찌할 것인가.

짐짓 모르는 척 얼굴을 돌리고, 슬금슬금 뒷걸음쳐서 달아날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걸어볼 것인가. 혹 그가 왜 남의 주변을 얼쩡거리는 것이냐고 질책이라도 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그렇다. 나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순전한 호기심으로 그냥 그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출근길을 따라 멍하니 시선을 주다보면 버려진 물건들이 길가에 놓여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참 많이 망가진 물건이다. ‘저걸 왜 구청의 수거 반에 가져다주지 않고 길거리에 놓아두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쁜 사람’ 누군지 알지 못하는 이에게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타박을 한다. 어느 날의 또 다른 출근길에서, 힘들게 그 물건을 옮겨가고 있는 한 노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갑자기 가슴 한군데에 미안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경솔하게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세상에는 그렇게 버려져야 마땅한 물건들조차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인가 보다. 그렇다면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세상에 모든 희망을 잃고 힘없이 앉아있는 그 사람도, 자신에게 맞는 삶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단지 그 곳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어떤 이가 어떤 이유로 어떤 슬픔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그런 것들을 알 수가 없다. 나는 이제 예전과는 달리 세상의 모든 슬픔에 개입할 용기가 없다. 그럴만한 의지도 열정도 남아있지 않다. 혹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변명이 앞선다. 굳이 말하자면 그저 미련 같은 무엇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신문의 한 면에서 조그만 기사를 읽으면, 아직은 그 의미를 잽싸게 알아채는 눈치가 남아 있을 뿐이다.^

평소에는 무심코 잘 지나쳐 가다가도, 어느 날은 먹은 것이 잘 소화가 되지 않는 날이 있듯이 그저 답답한 날이 있을 뿐이다. 그래. 오늘은 내 마음이 편치가 않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잔 말인가. 내가 신문에서 슬쩍 발견해 버린 또 다른 어떤 이의 슬픔과 내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으며,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미련일 뿐이다. 그것도 이제는 버려야 할 때가 된 구식의 미련.

이 세상에 내가 힘들게 구축한 이 조그만 평화에 얼룩이 지지 않도록. 아직도 조금은 곤한 내 삶에 더 이상의 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그래서 겨우겨우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아픔 많은 가슴에 또 다른 슬픔이 느껴지지 않도록.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 아마도 그는 어디선가 자신에게 맞는 위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법이다.

그러면서도 그 주변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 어께를 흘끔 넘겨다본다. 마치 상사병을 앓는 청춘이 그리움에 시달리는 것처럼. 나는 그 어께에게서 좀처럼 눈길을 떼지 못한다. 그가 겪는 알 수 없는 아픔에 대한 동정일까. 용감하게 좀 더 다가가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일까. 아니면 그 슬프게 보이는 어께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느끼기 때문일까.

오늘 조용한 밤. 별들이 구름들 틈새로 드문드문 보이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그에서 마음속으로 조용한 위로의 말을 보낸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그리고 ‘세상에 잊을 수 없는 슬픔은 없다.’ 또 ‘그대의 어께에 깃든 슬픔은 왠지 참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 중얼거림이 그의 귓가에 들릴 리는 없겠지만, 나는 내 귓전에도 겨우 들릴만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속삭여본다.

혹 그런 말들이 조용한 밤바람을 타고 그의 귓가에 살포시 전해진다고 해도, 그것이 그에게 위안이 될 것인지 도무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마다 슬픔의 이유가 다르듯이, 사람마다 필요한 위안도 다르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오늘밤 왠지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를 향해 무언가 귓속말을 들려주고 싶다. 왜일까. 밤하늘을 향해 내가 속삭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게 일러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내가 바라볼 수 없는 내 어께를 생각하며, 그 지친 내 어께에게 전해주고 싶은 위로의 말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알 수 없는 어떤 이의 낯설면서도 친숙한 듯한 어께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어께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빙 맴돌고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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