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을 옮긴다. 다음 그림 앞에서 또 같은 절차를 밟는다. 작가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낮선 사람을 만나면 악수를 하듯이 그렇게 눈인사를 한다. 또 한발을 옮긴다. 그렇게 뚜벅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맞추어 하나하나의 그림들을 핏발 선 눈으로 훝으며 지나간다.
그림을 보는 것은 나에겐 일종의 순례의 행진이다. 특히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른 작가의 그림 앞에 서 있을 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감명을 받게 된다. 그런 날은 유난히 오랫동안 그림 앞에 서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우뚝. 하나의 그림 앞에 나는 멈추어 선다. 좀처럼 내 발길은 움직일 줄을 모른다. 미술관의 정적을 깨뜨리며 뚜벅거리며 걷던 발자국 소리도 멈추어 선다. 텅 빈 미술관은 정적에 빠진다. 그리고 날카롭게 번쩍이는 내 눈도 하나의 그림 앞에 멈추어 선다.
긴장된 얼굴로 그림을 쳐다보던 내 입가에는 이윽고 야릇한 미소가 피어난다. 아하. 나는 오늘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난 것이다. 여러 그림들에 여러 작가들이 많은 사연들을 담지만,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유난히 나의 마음에 닫는 그림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그런 작품들을 만나는 기쁨은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일이다. 멀리 물러서서 다시 한번 그림을 본다. 지나쳐서 다른 그림을 보다가 다시 그 그림으로 돌아온다. 작가의 이름을 보고, 안내문에서 작가의 소개를 본다.^
그래 참으로 기쁘다. 나는 오늘 그 그림을 만났으므로 행복한 미소를 가득히 지닐 것이다. 사람들 내가 기쁨에 가득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거리를 걷는 것을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짓겠지만, 아마 나는 오랫동안 입가에서 그 미소가 지우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림에 좀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림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서이다. 남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만큼. 그림에 얼굴이 닫지 않을 만큼 충분히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가슴 깊숙이 물감냄새를 들여 마셔본다. 내 마음에 든 그 그림의 냄새를 기억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남들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고 나는 그림 가까운 곳에서 그림을 자세히 살펴본다. 물감이 지나간 흐름을 본다. 빠른 흐름인가, 느린 흐름인가. 두께는 어떠하다. 얼마나 많은 색들이 중첩되어 있는가. 그리고 물감들이 발려져 있는 그림 표면의 질감은 어떠한가를 본다.
나는 그렇게 마음으로 그림들을 어루만진다. 그러면 그림의 결이 느껴진다. 그림에 뺨을 대고 부비는 것처럼 질감을 느낀다. 또 그림을 그린 작가의 호흡의 빠르기와 사유의 깊이를 느낀다. 기쁨과 우울의 비율을 탐색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느낀다. 그래 느끼는 것이다.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의 그 시선을 나는 그림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느껴본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선율의 흐름을 따라가며, 나도 같이 감정의 기복의 고개를 넘는다. 작곡을 한 이의 느꼈던 삶의 떨림을 느낀다. 그가 느낀 삶의 결을. 그가 격정에 차서 부르짖은 인생의 의미를. 나는 음악에서 그것을 느낀다. 가슴에 음악이 흐른다.
문학작품을 읽는다. 한 문장씩 읽으며 글들의 내용을 본다. 그리고 전체적인 글의 모양새를 본다. 작가는 이 글로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떤 방법을 택했을까. 어떤 단어를, 어떤 운율을, 어떤 이미지를 조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가슴과 영혼에 차곡차곡 그것들을 담아둔다. 그림의 표면에서에서 느껴지는 결을. 음악의 선율에서 느껴지는 영혼의 울림을. 그리고 훌륭한 글이 어떻게 내 가슴에 파고들어 왔는가에 대한 기억들을.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을 쳐다본다.
저 하늘에는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에 쳐다보며 그윽한 마음으로 나는 하늘의 내 그림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다. 오늘은 약간의 기쁨의 느낌을 담아서. 그리고 다시금 그 그림을 바라본다. 내가 그리는 이 그림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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