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가득한 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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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가득한 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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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으로 물결치는 부드러운 벌판을 걷고 싶다

^^^▲ 억새 물결
ⓒ 뉴스타운 자료사진^^^

넓은 벌판. 끝없이 바람에 일렁이며 은빛으로 반짝이는 풀들로 가득한 벌판. 나는 언젠가 그것을 보았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담았다. 높은 산 위. 사람의 발길이 잘 닫지 않는 곳에 숨겨진 그 곳은, 그래서 더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나에게 이렇게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는지 모른다.

억새가 가슴까지 닫는 그곳엔 사람이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을 만한 자그만 길이 나 있었다. 멀리 올려다 보이는 산봉우리를 제외하고는,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억새의 물결만이 가득히 차 있었다. 바람을 받아 부드럽게 물결치는 햇빛에 반짝이는 억새들의 숲을 헤치면서, 그렇게 끝이 없는 것같이 길기만 한 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그 눈부신 길을 걸으며 벌판이란 것을 처음으로 체험해 보았다. 그래서인지 그 벌판을 헤집으며 지나가던 그날의 기억들이, 약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내 마음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 기억은 내속에서 되풀이되고, 확대되어 자꾸만 새로운 꿈을 펼쳐가게 된다. 그 날 이후 벌판은 내 가슴속에 찾아왔고, 떠나지 않고 머무는 또 하나의 그리움이 되었다.

나에겐 또 다른 벌판이 하나 있다. 영롱한 햇살이 넘쳐나던 그 곳과는 전혀 다른 벌판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끝이 없다. 가도 가도 끝이 없으므로, 이 곳도 틀림없이 벌판이다. 그러나 눈에 비치는 모습, 코끝에 다가오는 내음, 느껴지는 느낌은 전혀 다르기만 하다. 이곳은 어둡고 삭막하며 습하다. 피곤과 권태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바로 그런 곳이다.

이 낮선 벌판에 널려 있는 모든 것들은 거칠기만 하다. 그곳의 모든 것들의 거죽 속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모든 것이 텅 비어 있다. 생명도 없고 빛도 없다. 그저 참혹하기만 하다. 온통 발길을 잡아채는 잡풀들만 가득한 참담한 벌판이다. 바람이 모질게 불고 석양은 저녁을 재촉하는데, 아무리 걸어도 쉴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바로 그런 벌판이다.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이 세상이라는 곳은.

한때 해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았던 햇살이 가득하던 평화의 벌판, 그래서 가슴속 깊이 담았던 그 아름다운 벌판은 이곳 내가 사는 세상엔 결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높은 산 위 어디쯤, 혹은 꿈결 속 어디쯤엔가 있을 뿐. 내가 사는 이곳에선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 그 무엇이었다.

내 모습을 본다. 나는 무지개를 쫒아 먼 길을 나선, 어리석은 아이와 같았다. 이 세상 벌판에서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이곳은 좀처럼 황금빛이 물결치는 아름다운 곳이 되지는 않을 것이. 아무리 달려도 무지개를 잡을 수가 없다면, 그 무지개를 본 것이 잘못일까. 무지개를 잊지 못하는 것이 잘못일까. 아니면 어리석게도 그 무지개를 향해 달린 것이 잘못이었을까.^

나는 벌판, 참혹한 벌판에 서 있다. 세상이란 곳은 원래 이런 곳일까. 온통 어둡고 침침한 기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그런 곳이었을까. 애당초 그 아름다운 벌판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세상은 원래 이런 곳이라고 만족할 수 있다면 한결 편안하지 않았을까. 이제 내 작은 손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마음이 조금은 덜 아프지 않을까.

내 마음에 가득한 슬픔을 온통 풀어놓아 보고 싶었다. 온몸에 생체기가 나도록 비명을 지르며 달려보고 싶었다. 혹은 슬픔이 가득한 그곳에 무덤처럼 버티고 서서, 커다란 바람에도 움직이지 않는 굵은 나무 한 그루가 되어보고 싶기도 했다. 모든 독한 슬픔들이 세상을 휘감으며 상처를 줄 때, 그 옆에 묵묵히 서서 나 역시 같은 아픔을 느끼고 싶기도 했었다.

그래 아름답지 않으려면 차라리 참담한 것이 좋지 않을까. 꿈꾸지 않으려면 차라리 가득한 슬픔에 잠기는 낫지 않을까. 희망이 없다면 모든 시들어 가는 것들,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존재와 함께 동지적 운명을 느끼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때 무지개를 쫒았었기에, 한때 햇살이 물결치는 황금벌판을 보았었기에. 나는 자신에게 형벌을 내려야만 편안할 수 있다.

‘인생이란 가도 가도 끝없는 싸리골 벌판’ 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도회에서 자란 나는 ‘싸리골’이란 것이 무언지 모두지 알 수 없다. 아마도 거칠고 메마른 느낌을 주는 키 큰 풀의 한 종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글의 느낌에 어울리려면, 그렇게 거칠고 삭막한 것이라야 할 것이다. 그래. 인생을 그런 거친 벌판이라 부르짖는 이가 나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수없이 읽었던 책의 어느 갈피에 단 한 줄로 담겨 있었을 그 글이 자꾸만 떠오르는 이유는, 내가 지금 바라보는 이 세상의 모습 또한 그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나는 그렇게 지치고 그늘진 시선으로 삶을 바라본다. 삶이란 거친 벌판을 걷는 외로운 여행과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차가운 바람을 피할 따뜻함과 온기를 찾으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감히 세상을 보다 따뜻한 곳으로,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에 빠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내가 걸어가는 세상이 너무나 춥고 외로워서. 내 눈엔 슬픔과 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나 또한 그 추위에 젖지 않으려고 이토록 몸부림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거칠고 메마른 벌판 같은, 내 황량한 인생길에 온기를 주려고.

예전에 내가 걸었던 그 벌판에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다. 그때도 그 벌판은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인지. 그때도 그 벌판은 그렇게 넉넉하고 풍성한 느낌으로 나를 반겨줄지 알 수는 없다. 삶은 항상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을 맹서한 약속도 허물어지는 게 삶이다. 혹 그 벌판은 변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내가 변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나간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단지 흘러간 과거일 뿐이다. 과거는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일 또 다른 과거가 될 오늘에 성실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루 또 하루, 끊임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날들은 왠지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진다. 끝없이 마주쳐야 할 ‘끝없는 싸리골 들판’과 같은 막막함으로 느껴진다.

나는 돌아가고 싶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 가없고 우수 가득한 익숙한 벌판이 아니라, 언젠가 내가 걸어보았던 그 평온하고 부드러운 길을 다시 한번 걸어보고 싶다. 온몸에 따뜻한 햇살을 가득히 받으며, 은빛으로 물결치는 그 부드럽고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고 싶다. 단 한번의 일회적인 여행길이 아니라, 내 삶을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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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세상 미투 2003-10-12 15:18:08
푸른세상 늘푸르게 살아서인지 억새풀 낭만적이네요. 푸른 낭만 요즘 좀 뜸한데
또 푸른세상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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