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옛 도시… 21세기의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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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옛 도시… 21세기의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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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세계의 도시를 가다 19] 베이징

^^^▲ 천단(天壇)
ⓒ 박선협^^^

유달유달(蹂達蹂達)~, 우리말로 불렀으나 이 중국어를 우리말로는 '두리번거리며 산책한다'는 뜻이다. 지금 중국의 거리를 걷다 보면 '문명단위(文明單位)' 라든가 '개방경제(開放經濟)'라고 씌여진 간판이 줄줄이 눈에 들어 온다.

길거리 표정에서도 이 나라가 경제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금새 알 수가 있다. 유달듀달! 미상불 그 기분이 되어 베이징의 창을 연다.

문법상으로 정확히 표현한다면 '그렇게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현재 진행형으로 나타내는 것이 적당할는지도 모른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베이징'은 도시로서의 아름다움을 필설로 다 일컬을 계제가 아니다.

그 언더월드Under world에는 2 만5 천이 넘는 창부娼婦가 봄 바람을 흩날리고 있는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3세기 말, 원元시대만 하더라도 베이징은 어깨를 겨룰 곳이 없는 코스모폴리스였다. 그것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것보다 2백년 이상이나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인류의 도시를 ‘21세기의 도시’라고 본 미래작가도 있다. '아더 C 클릭'은 '2001년 우주의 여행'에서, '현재 세계인구는 60억, 그 3분의 1이 중국에 있다. 독재국가의 몇 곳에서는 한 세대의 어린이를 2 인으로 제한하는 법률이 의회를 톨과했으나 시행 후 조금도 효과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미래의 문명대국을 예측하였으나, '베이징'은 이미 그 영역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대도大都의 시대로 부터, 이곳은 인류의 도회로서 그렇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거대한 역사박물관인 도시공간 '베이징'은 시간의 미로인 양, 3천년의 역사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태극권과 조깅, 대도예大道藝와 디스코가 가로에서 동거하고, 황제들의 영화를 뽑냈던 왕궁의 일각에 핵 제조기가 존재하여 옛 도시이면서 이 도시는 바야흐로 21세기를 앞서 거머쥐고 있다. 그러한 일에 기를 쓰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그 도시 자체다.

확실히 베이징은 인류의 도시답다

'베이징'의 뒷길 후통胡同은 그러한 의미에서 기억할 만한 도시의 집합체다. 각각의 길 모퉁이는 수수롭게 기억성이 높아 역사에 오르 내렸던 일들을 담고 있으며 사람들은 전통적인 후통胡同토박이라는 면모를 연출하고 있다.

일견, 다양한 사회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후통사람들이라는 공통된 라이프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석양 빗긴 후통거릴를 '북경'에 살고 있는 진陳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 보았다.

잿빛이 깔린 후통의 벽璧은, 한층 후통을 어둠침침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때 한대의 인력거가 맹렬한 스피드로 달려들어 엉겁결에 두 사람은 후통의 벽쪽으로 껑충 뛰었다.'후통胡同'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곳이니까...

'진씨는 흙탕 물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진씨의 한치 앞이 캄캄'이라는 말이야말로 후통의 미로성迷路性이자 바로 후통의 특성이기도 하다.

'도회의 중심부에서는 가로街路는 일직선보다 구부러져 있는 쪽이 좋겠지요. 좁다란 가로는 무더울 때는 햇볕을 가려주고, 뿐만 아니라 바람소통이 잘 됩니다. 구부러진 가로는 기분좋은 솔 바람을 통과시키지만 얼음처럼 찬 삭풍를 막아 준다.

아울러 구부러진 가로에서는 그 길을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광경이 나타난다. 또한 모든 가옥의 전면과 입구는 직접 가로의 중앙에 면하도록 되어 있다. 가로 굴곡에 따라 어느 집 시계視界든지 이처럼 열려 있다면 사람들에게 매우 건강하고 유쾌할 것이다.

르네상스시기 이탈리아의 건축가 '알베르티'도 이상적인 도시에서 '가로는 미로성迷路性울 갖는 편이 좋다'고 설파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새로운 광경이 나타난다'는 부분은 마치 북경 후통 그것을 말해 주는 듯하여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후통의 기억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은, 후통을 형성하고 있는 주택이다.

전통적인 가정에는 실제로 어느만큼의 가족과 몇몇의 인수人數가 살고 있는지,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삶의 모습은 가로극街路劇처럼 후통생활을 일상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후통은 예나 지금이나 화장실Toilet로 부터 시작되어 화장실에서 끝난다.

후통의 정원에는 대소大小의 화장실이 있으며, 작은 쪽은 가족용, 그리고 큰 쪽은 공용公用. 말하자면 후통을 통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후통의 공용 화장실은 이 도시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벽이 없으며, 도어Door도 없는 문자 그대로의 개방식 화장실이지만, 이 개방의 의미가 그야말로 큰바 있다. 중국에서는 대변糞을 '출공出恭'이라한다. '대변을 본다'라는 의미다. '똥물에 튀길 놈'에 해당하는 중국어는 '키스치去死去로, 결코 대변을 사람에 빗대어 악질 취급하지 않는다.

한국인이 그것을 더럽게만 보지 않고 수치심 덩어리의 상징인 것처럼 감추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역사를 멀리 거술러 올라가지 않아도 좋다. 얼마 전까지 서울에서만 하더라도 대변을 '금분金糞'이라하여 보물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

근교의 밭을 경작하는 시티퍼머City farmer에게 있어서 캬베츠나 배추등의 야채가 밭의 주된 생산물로, 이 야채는 질소비료를 요구한다.

이 질소성분을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는 것이 대변으로, 대변은 비료 중의 왕이었다. 시티퍼머들은, 이 왕인 대변을 찾아 머리를 수그리고 '금분수집'에 서울변소를 누비고 다녔다. 말할 나위도 없이 '금분전쟁'이 일었다. 대변탈취로 청진동, 수송동, 아현동이 시끌벅적하기 일쑤였다.

자하문 언덕 길은 숨막히는 고개였다. 6.25이후 시티퍼머의 수도 감소하고 주택지로 변하자 대변전쟁도 끝이 났다.

금분은 다만 대변이 되고말아 물에 흘려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농업대국인 중국 '베이징'의 후퉁에서는 대변은 의연히 금분으로, '귀중한 대변을 어찌 타인의 소유물로 할 것인가?'고 작정, 자기 변소에 저장한다.

나아가서는 타인에게서 금분을 얻어내기 위해 후퉁에서는 커다란 대중의 공용화장실을 마련해 놓는다. 믈론 도어Door나 벽으로 가릴 생각도 없이 지나가는 타인을 '어서 오십시요'라며 불러 들이고 있는 것이다.

재 생산되는 에너지원의 생산자야말로 귀중한 존재로 취금, 그 행위를 더더욱 공경하며 당당하게 사람이 보는 앞에서 궁둥이를 추스리는 것이다. ‘출공出恭'이야말로 자연의 윤회일뿐만 아니라 자기애自己愛의 극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후퉁생활에서 사내구실을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화장실학學을 익혀야 하며, 대가족주의로 모여 사는 지혜로서의 제일보가 된다.

중국사회의 '집합생활'의 기본은 이 후퉁에 있으며, 이 '집합생활'이야말로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는 자의 지혜다. 도시란 이렇듯 밀집된 거주공간을 적든 크든 단단하게 다져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후퉁 그 자체의 생활 상은 '베이징'이라는 옛 도시의 미래를 먼저 차지하고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밀실화된 화장실에 습관이 된 도시생활자에 있어서 벽이 없는 화장실은 정작 고총이 아닐 수 없다.

지하수 덕분에 ‘베이징’엔 수목이 울창하다

사람 앞에서 허리춤을 내린다는 행위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생리나 심리를 위축시키게 마련이다. 그러나 후퉁에서는 다르다. 수천년 변함없이, 되풀이 하여 온 일상행위를 기억하는 이 생활공간에서는 당당하게 사람들은 그 습관에 따르게 되고 만다.

어느 날 후퉁 터줏대감인 진陳씨를 '베이징'의 공중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났다. 후퉁의 '스-즈오厠所’에서는 사람 앞에서 덤덤히 궁둥이를 내리던 진씨도 목욕탕의 탈의실에서는 팬티를 걸친 채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그리고서는 '어서 먼저'라며 뒷걸음을 쳤다. 기억하고 있는 주택공간의 약점을 본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시와 문자의 관계는 꽤나 깊다. '베이징'이라는 도시는 그것을 공중에서 부감하면 '國국’이라는 문자로 보인다.

베이징은 활자문화의 최초의 도시로, 문자를 개념화하여 도시를 조성한 듯하다. 특히 베이징에서는 이 도시에 대해서 읽는다든지 쓴다든지 하는 것이, 이 도시에의 개념에 가까워지는 것이 된다.

베이징의 도시로서의 역사는 9 백년 전의 금金나라의 중도中都, 원元의 대도大都로 거슬러 오른다. 그러나 이 도시의 원형이 된 것은 2 천년 전 옛날 주周시대다. 중국고전에 고공기考工記가 있어, 이상적인 도시상像이 그려져 있다.

그 이미지는 '國'이라는 문자 그 자체로, 다시 말하면, 國이란 문자는 이 도시부감도都市俯瞰圖에서 만들어졌다 하여도 좋을 것이다. 한자문화의 도시 베이징을 최초로 만든 것은 한자의 주인인 한 민족은 아니다.

요遼, 금金, 원元이라는 이異민족 왕조가 베이징에 도읍을 정했거나 부도副都로 삼았다. 진陳, 한漢 그리고 당唐대에 이르기 약 1 천년을 한漢 민족이 지배하였으나 939년에 거란 족의 부도副都가, 그리고 금金시대에 여진 족이 베이징을 도읍으로 정했다.

한 민족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베이징에 북방 기마민족이 도읍삼은 까닭에는 의문이 남는다. 한민족이 만들어 낸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 '황하문명'은 틀림없이 황하유역에서 자랐다.

폭발적으로 용트림한 황하는 흙을 날랐다. 사람들은 날라진 흙에서 집을 올리고 다시 흙을 날랐다. 이러한 역사役事 되풀이가 황하문명을 쌓아올린 것이다. 이 중원中原 황토지대는 녹음이 적은 이른바 반 사막지대로, 흙 속의 모세관 현상에 의해 분출하는 물기로 밭을 경작한다.

만일, 이 황토지대에 물이 풍부한 곳이 있다면 그것은 오아시스라 하여도 틀림없다. 황토지대의 오아시스, 그곳이 베이징이다. 베이징의 지하수는 유명하여, ‘베이징명동’이라 부르는 ‘왕푸찡王府井’은 감로수가 솟는 우물이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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