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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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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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이 찢어져라고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줄어드는가 했더니 타작 마당에 무리지어 날던 잠자리떼마저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습니다.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니 나도 모르게 심란해지는 발걸음이 저절로 바닷가를 찾습니다.소금기 밴 갯내음이 이젠 몸에 저려서인지 파도 소리랑 갈매기 우짖는 소리가 없으면 황량해서 어쩌려나 싶어집니다.

초가을. 바닷가의 가을색이 어찌 이리도 산뜻하답니까. 노랗게 익어 들녘에 가득한 벼의 황금물결, 진하디 진한 쪽빛 바다, 쾌청한 가을 하늘의 파아란 색상, 그 고운 하늘색 아래 나지막이 둥실 떠 있어 가슴이 시리도록 새하얀 구름, 이 모두가 환상 같은 물감입니다.

이렇듯 깨끗하고 선명한 가을색은 섬이라서 한결 더한가 봅니다. 이 좋은 가을에 하루쯤 짬을 내어 다녀가는 걸음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햇살이 따사로와서도 좋고, 파도에 간간이 실려 오는 높새바람이 또 좋고, 가라앉을 듯 솟을 듯한 섬 사이로 부지런히 오가는 목선이 선자가 그린 한 폭의 회화처럼 내 마음을 움켜집니다.

그뿐이겠으리오. 귀뚜라미 소리가 아니더라도 가을이 배어 드는 소리, 온갖 열매가 가득가득 여물어 가는 소리까지 선연스레 들릴 것 같아서 숨을 가라 앉히고 귀를 기울여 봅니다. 풀숲에서 이지러지게 울어대는 풀벌레 소린들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작열하듯 쏟아지던 햇살과 윤이 흐르도록 푸르렀던 싱그러운 여름을 밀어 붙이고 이렇게 오곡백과가 영글어 가는 가을이 펼쳐지다니요. 계절의 장엄한 도정에 어찌 감탄을 아낄 수 있겠습니까.

인적이 없는 가을의 해변, 끼륵끼륵 갈매기와 벗하며 나혼자 천연의 고운 색깔에 흠뻑 취해 봅니다.
이런 날이면 언제나 정다운 벗님들과 사랑스러웠던 옛정을 불러다가 따끈한 차 한잔 마시며, 젓갈같이 삭은 절박한 정담으로 밤을 저물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지곤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념이 전신에 번져지는 때엔 더러는 옛 친구들과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쓴 편지, 어디메 사는 줄을 몰라서 접어두기도 하고요. 지금 저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이쪽 하늘로 은은한 듯 진득하게 날아옵니다.

가을에 담긴 여러 모습들을 함께 사려 넣고, 뜬구름 부여 잡고 노심을 풀다가 함초롬히 젖은 내 마음도 같이 거두어 이젠 돌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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