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망각 속의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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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망각 속의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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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현주 첫 소설집 <물속의 정원사> 펴내

 
   
  ^^^▲ <물속의 정원사>의 표지
ⓒ 문학과지성사 ^^^
 
 

"소설을 왜 쓰느냐고 묻는다면 말하고 싶다. 그 소설이라는 '집'에서만이 내 영혼과 육체가 안심할 수 있다고. 영혼이 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귀 밝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친구가 말했다. 소백산 비로봉에 올라서서 나무들의 지붕인 하늘을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고."

1998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단편 <미완의 도형>을 발표하며, 늦깎이로 작가의 길로 들어선 김현주(42)가 첫 소설집 <물속의 정원사>(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이번 소설집은 <물속의 정원사>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 속으로 들어간 작가의 새로운 길찾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치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간 포수와도 같다. 또한 "비로봉 나무들의 하늘을 향한 염원을 자신의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을 때 비로소 "나무들의 영혼과" 내가 "소통한 것"과도 같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나는 염원한다. 지상에 뿌리를 튼실히 내리고 머리는 하늘로 향하면서 이 세상과 소통하리라"라고 내뱉는다.

<물속의 정원사>는 등단작 '미완의 도형'을 비롯한 '에어컨', '32일', '숨은 길', '안개/맑음', '불의 꽃대궁', '그물 던지는 남자' 등 모두 13편의 단편이 작가의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문체 속에 숨은 길찾기처럼 실려 있다. 숨은 길찾기? 그래. 말 그대로 작가 자신이 바로 숨은 길을 찾는 '물속의 정원사'라는 그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소설에는 '물속의 정원사'에서의 '물속'처럼 모두 입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입구는 대개 어떤 낡은 집이거나 정체가 묘연한 건물, 사진 등으로 출입문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다. 근데 왜 소설 속으로 들어간 작가는 주인공들에게 끊임없는 망각과 기억 속에서 입구를 찾아 헤매게 만든 것일까.

'미완의 도형'은 주인공인 화가가 어느 전시장에서 변기와 똥을 소재로 한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아 스스로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여기저기 더럽혀진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문득 배설과 해탈이 맞닿아 있음을 깨친다. 그리고 그곳이야말로 명상의 방이자 글쓰기를 위한 행복한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32일'은 사고로 아내와 자식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마저 망각한다는, 지극히 현실도피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사고가 있기 전부터 자신의 유년기와 청년기의 기억들을 완전히 묻어버리고, 자신의 과거를 새롭게 조작하려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우연찮은 사고로 인해 상상 속에서의 망각이 아닌, 실제 망각 속에 스스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공은 서서히 고통스런 자신의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 둘 복원하기 시작한다. 의식은 여전히 몽유 속을 헤매면서도 말이다.

'불의 꽃대궁'은 시인과 불륜에 빠지는 주인공 수연과 헤어디자이너 문효가 나온다. 하지만 수연은 이내 시인에게서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울증에 걸려 자살까지 시도한다. 문효는 남편의 뒤치닥거리에 진절머리를 내다가 옛 남자를 다시 만난다. 수연과 문효는 비비 꼬인 삶에서 탈출이라도 하듯이 자주 여행을 다닌다. 하지만 서로는 여전히 쓰라린 과거의 상처만 쓰다듬고 있을 뿐이다.

이 밖에도 떠난 아내가 남긴 기록 때문에 심한 질투감에 사로잡히는 화자('에어컨'),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나(숨은 길), 향기를 맡으면 기억을 잃게 되는 백련을 얻은 주인공(물속의 정원사), 10여 년 전에 사고로 죽은 '그녀'의 뼈가 뿌려진 절터를 찾는 신문기자인 '나'(영각 27km') 등이 잇따라 나온다.

"예술은 고통스러운 기억의 승화인데, 김현주는 자신의 작중 인물이 그곳에서의 탈출을 봉쇄하고 망각속으로 도피하지도 못하도록 하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소설을 써낸다."(김형중, 문학평론가)

이처럼 <물속의 정원사>에 실린 소설 대부분은 기억과 망각, 고통과 새로운 길찾기의 연속이다. 하지만 작가는 작중 인물들을 끝내 망각 속에 영원히 빠지지 않게 함으로써,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세계를 결코 부정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작중 인물들은 늘 과거의 상처에 시달리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입구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래. 어쩌면 우리네 삶도 그러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온 출구, 그 출구를 내던진 채 끝없이 과거 속의 나를 망각하며 새로운 나를 찾아 헤매는 작중인물들처럼. 하지만 작가는 결코 자신의 출구를 부정하거나 망각한 상태에 내버려두지 않고 고통의 현장 속으로 끌어들인다. 김현주 소설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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