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는 아내와 딸아이도 두루 함께 읽었는데 딸이 "오빠에게 답장을 쓸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오빠는 조만간 다른 부대로 이동을 하니까 그때 우리 식구들 모두 각자 편지를 보내자꾸나"라며 만류했다.
여고생 딸은 하교하면 늘상 습관처럼 컴퓨터를 부팅하여 인터넷에 접속을 하여 도착한 이메일을 읽곤 한다. 그러한 모습을 보노라면 지난 시절 편지에 관한 편린들이 기억의 우물물로서 길어져 올라온다.
아내를 만나 '열애'라는 싹을 키우고 편지지에 자필로 글을 써서 우표를 붙여 연서(戀書)를 보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들은 군인이 되었으니 참으로 세월이란 극구광음(隙駒光陰)임을 절감하게 된다.
아내와 열애를 하던 시절은 1970년대 후반이었는데 그때는 지금과 같은 인터넷은 커녕 컴퓨터 역시도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보고싶을 때면 난 늘 그렇게 문방구에 가서 예쁜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사다가 밤을 지새우면서 러브레터를 쓰곤 했다.
으레 "그리운..." "보고싶은..."으로 편지의 서두를 잡은 다음 내 마음 속 깊이에 저장돼 있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의 우물물을 길어 올려 그 편지지에 하나 가득 담아내곤 했다. 때로는 시집의 멋진 낱말을 표절할 때도 많았다. 이튿날 우표와 사랑의 키스까지도 덩달아 함께 붙여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때면 왜 그리도 가슴이 뛰었던지...
편지를 보내고 나서 그녀에게서 답장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장에 가신 어머니가 먹을 것을 한바구니 가득 가지고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소년의 심정과 똑같았다.
시나브로 세월은 흘러 이제는 이메일이 편지를 상쇄하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편지는 손으로 꾹꾹 눌러쓰며 자신의 진솔과 정감을 불어넣고 또한 기다리는 재미가 월등 나았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구세대요, 또한 아날로그 세대라는 방증이겠지? 송편과 부침개 등을 만들어 추석 차례상을 차려 추석을 지내면서도 군에 간 아들 생각에 맛은 별로 느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추석 이튿날에 들이닥친 거대한 태풍 '매미'의 가공할 위력은 '우리나라의 병영은 지은 지가 오래 됐다는데 별 일은 없을까...' 라는 기우 따위로 인해 아들 걱정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제 아들은 조만간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갈 것이다.
아들의 전출소식이 전해지는 날, 나는 지체없이 나의 아들사랑에 대한 진솔한 그리움의 편지를 쓰리라. 아들아, 늘 건강하거라! 머지 않아 이 아빠가 너에게 그리움의 우물물이 가득 담긴 러브레터를 보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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