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노인의 좌판이 벌어진지 오래다. 뒤늦게 찾아간 시장 앞 골목길에는 노점상들로 어수선하다. 그렇다고 오가는 손님을 막아 세우는 상인은 없다. 그저 가격을 물어오면 대답만 할 뿐 이다.
"아무리 노점 이래도 손님들은 젊은 주인을 좋아해. 자기는 급하다는데 이리 느리게 봉지에 담아봐. 좋아할 손님들이 어디 있나."
양노인의 옆으로 들어앉은 노점상인들도 나이가 들어 초라한 행색이다. 낡은 방석과 담뇨를 옆에 두고 앉아 무료한 듯 야채거리를 다듬고 있다.
"오늘 자기네 물건은 좋아서 다 팔리겠다. 난, 어제 팔다 남은거야..." 어제 해온 양노인의 물건을 보고 부러운 듯 옆에 앉은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물건이래 봤자. 무에 배추 몇 포기, 거기다 콩 조금에 고추정도가 전부이다.
"오늘 못 팔면 내일 파는게 장사지. 장사가 별거야... 그리고 이걸 어떻게 오늘 다 팔아. 나한테 그런 재수가 남아나 있구..." 나이가 들면 재수도 사라진다는 양노인의 말이다.
이리저리 물건만 쑤셔놓고 가는 중년여인이 행상노인들의 맘도 모르고 못마땅한 듯 한마디를 한다. "시장물건은 다 이렇다니까!" 이 한마디에 일 순간 노점상인들의 시선이 여자를 향한다.
"그래도 수입산 속여 팔지는 않아... 물건도 제대로 볼 줄 모르면서..." 양노인의 옆에 앉은 노인이 거들며 쏘아 부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지. 그래도 우린 수입산 갖다 팔진 않는다구. 우리야 수입산 인지, 딱 보면 알아. 그리고 저기 저 집은 텃밭에서 키워 내온 거야. 농약을 쳤겠어. 약을 뿌렸겠어."
눈 가리고 아웅, 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무조건 겉만 보고 싱싱한 것을 찾는다. "냉장고에 물 뿌려 며칠 보관한 게 싱싱해 보이면 그거 사다 먹어야지 별 수 있겠어."
각자가 싸온 도시락을 꺼내 물에 입을 헹궈가며 밥을 먹는다. 반찬이야 김치에 고추장이 전부이다. 누군가 보온병에 물을 담아 왔다면 감사히 받아먹는다.
"내가 못난 것 같은 마음이 제일 힘들어." 양노인이 되묻는다. "내가 안 돼 보이지...?"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양노인처럼 정직히 벌어들이는 돈에 대해 그러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죄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내가 불쌍한데... 남들한테도 그렇게 보일거야..." 주머니에 구겨 넣은 돈을 꺼내 접으며 양노인이 되뇌이는 말이다.
골목 옆으로 난 차도로 차들이 달린다. 양노인에게도, 그리고 다른 노인들에게도 잘 달리는 차와 같은 날이 있었다. 그 날을 알고 기억하는 자라면, 지금의 양노인과 같은 느린 서행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끝)
(이어서 종묘공원 이야기와 독거노인의 하루가 각 3회 예정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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