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북조선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고 김일성 만세를 부른 것이다.

1948년 8월 21일, 황해도 해주시 남산 기슭에 있는 인민회의당 안으로 가냘픈 한 여성이 들어섰다. 이날 해주의 인민회의당에서는 해주인민대표자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해주인민대표자회는 일종의 북한 창건 국회의원을 뽑는 대회였다. 여성이 장내로 들어서자, 회의장에 만장했던 인민 대표자들이 일제히 기립 박수를 쳤다. 여성의 머리 위로는 오색 테이프와 꽃종이가 뿌려졌다. 해주인민대표자회의에서 격하게 환영받던 가냘픈 여인은 제주도에서부터 걸어온 고진희라는 여성이었다. 이 첫 단락의 내용은 북한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에 실제의 날짜와 장소를 필자가 첨부한 것이다.
지난 2002년 언론에서는 북한에서 제주 4·3을 다룬 장편 소설이 출간되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조선문학창작사 소속 양의선(74)이 쓰고, 문학예술종합 출판사가 2000년에 발간한 ‘한나의 메아리’가 그 소설이었다. 북한은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도 12부작으로 만들었다. 한나의 메아리는 제주4.3사건의 주역이었던 강규찬과 고진희를 모델로 했다. 4.3 발발 당시 강규찬은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이었고, 고진희는 남로당 제주도당 부녀부장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부부였다. 소설과 실제에서 강규찬은 재혼이었다.
이 소설은 언론 보도, 백과사전, 유튜브 등으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여주인공 고진희가 인민대표자 회의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고진희는 북조선 창건을 지지하는 제주도 인민들의 선거 투표지를 가지고 있었다. 소설의 스토리는 두 사람이 인민공화국을 위하여 제주4·3 투쟁을 했고, 천신만고 끝에 제주도 인민들의 투표지를 가지고 북한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소설의 주제는 간단명료하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김일성 만세’에 다름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제주4·3의 주인공들은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하여 습격과 방화, 약탈과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단정 반대라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북조선 창건에는 찬성한다는 지하 선거 투표지 52,350장을 가지고 월북했다. 그리고 1948년 8월 21일부터 열리는 해주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했다. 제주인민해방군 1대 사령관이던 김달삼은 연단에 올라 제주4·3의 살인과 방화의 전과를 자랑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4·3의 공로를 인정받아 김달삼은 박헌영, 허헌, 홍명희, 김원봉, 이승엽 등과 함께 35명으로 구성된 주석단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6명은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안세훈, 김달삼, 강규찬, 고진희, 이정숙, 문등용이 그들이었다. 이때 6명 만이 해주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더 많이 참석했다. 6명은 제주에서 참석하여 대의원에 당선된 숫자다. 제주 출신 대의원은 고경흠, 강문석, 송성철도 있었으며, 참석은 하였으되 대의원에 선출되지 못한 조몽구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남로당 제주도 지도부에 있었던 조몽구는 월북했다가 북한에 실망하여 월남했다고 했지만, 대의원 감투 대신 그에게 맡겨진 개성 양돈장 관리인 감투에 실망한 것이었다.
소설에는 제주4·3의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지만, 인물들의 행적은 각색되어 실제 상황과 많이 어긋난다. 소설에서 강규찬은 노동자였고, 고진희는 곧 위안부로 끌려가야 하는 해녀였다. 공산당 소설답게 프롤레타리아의 대표적 계층으로 주인공을 삼았고, 여주인공이 위안부에 끌려가는 설정으로 보건 데, 위안부는 남한 좌익이나 북한 공산당이나 침을 흘리는 소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강규찬은 일본에서 노동자로 노동운동도 했지만, 일본에서 사업도 경영하여 큰돈을 벌었던 부르주아이기도 했다. 그래서 강규찬은 남로당 제주위원회에서 자금원 역할을 했다. 고진희도 정미소 업을 하는 부잣집의 딸이었고, 해녀와는 거리가 먼 부르주아였다. 강규찬과 고진희는 같이 해주로 떠났다. 목포를 경유하여 선박을 이용했을 확률이 높다. 지하 선거 투표지 때문에 육로는 위험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강규찬이 먼저 가고 고진희는 나중에 온갖 고난을 겪으며 걸어서 도착한다는 설정이다.
4·3사건은 인민공화국 건설을 위한 남로당의 투쟁이었다. 그들의 총수는 박헌영이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남로당이 아니라 북로당이 주인공이고, 그들의 총수는 김일성으로 설정된다. 소설에서 제주도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은 북조선인민공화국 건설과 김일성에 바치는 충성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고진희가 도착하는 곳은 해주의 인민회의당이 아니라 김일성이 기다리고 있는 평양의 어느 회의장이다.
‘한나의 메아리’는 제주4·3에 대한 북한의 시각을 바라볼 수 있는 소설이다. 즉 4·3사건은 김일성과 북조선인민공화국을 위한 제주도민의 투쟁이었다는 것이 북한의 상식이자 시각인 것이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제주4·3사건의 배후에 북한 김일성이 있고, 제주4·3사건은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된 사건이다” 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의 반도에 공산당이 재건되었을 때, 코민테른의 일국일당(一國一黨) 원칙에 따라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는 박헌영이었고, 북한의 김일성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의 책임비서였다. 46년 하반기에 공산당이 남로당으로 바뀌면서, 남로당 박헌영과 북로당 김일성은 외관상 대등한 위치로 바뀌었다. 남로당 지휘부가 폭력과 위폐 사건으로 경찰에 쫓기며 월북하게 되자, 박헌영은 김일성의 식객으로 전락했고, 1948년 9월 북조선이 창설되면서 김일성은 수상, 박헌영은 부수상으로 권력 서열이 역전되었다.
김일성이 제주4·3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무권리자의 주장이 아니다. 제주4·3은 48년 4월에 시작하여 57년 4월에 종료되었다. 제주4·3이 박헌영의 손아귀에 있던 것은 5개월 정도였고, 나머지 만 8년 8개월은 김일성의 손아귀에 있었다. 북조선이 창건된 48년 9월부터 제주도 공산주의자들이 제주도에서 인공기를 흔들고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친 것은,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북조선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고 김일성 만세를 부른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동영상에는 날짜와 장소까지 나타난다. 1948년 7월 9일, 한라산 윗새오름 근처에 있는 제주인민해방군 아지트에서는 일군의 유격대원들이 모여 만세 함성을 지르고 있다. 그들은 라디오로 북한 방송을 들으며 열광에 취해 있었다. 7월 9일 북한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날은 평양에서 제5차 북조선인민회의가 개최된 날로, 김일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실시에 관하여’라는 보고를 통해 북한 정권 수립을 채택하겠다고 발표했다. 북조선이 수립된다는 발언에 제주4·3의 인민해방군들이 만세를 부르며 열광하는 장면이었다.
소설에서 강규찬과 고진희는 간난신고 끝에 평양에 도착하여 위대한 김일성의 품에 안기고 지상천국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품에서 행복했다는 스토리로 끝난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북으로 갔던 남로당원 대부분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6·25 이전에는 빨치산으로 남파되어 김일성의 소모품으로 사용되었고, 6·25 이후에는 6·25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숙청당하여 멸족의 길을 걸었다.
강규찬과 고진희도 남한 빨치산의 길을 걸었다. 따뜻한 수령님의 품이 아니라 엄동설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지리산이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6·25 당시 남파된 강규찬은 51년 2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두텁게 눈이 쌓인 백운산 아지트에서 떡을 구워 먹다가 국군의 기습으로 사살당했다. 강규찬의 허리에는 부르주아답게 고급 회중시계가 걸려 있었다. 소지하고 있던 수첩으로 백운산 사령관 강규찬임이 확인되자 확인 절차를 위해 그의 머리는 잘렸다.
머리는 마대에 담아져 운반하다가 모르고 깔고 앉았던 병사가 질겁을 하는 일도 있었다. 노루 머리라고 속이고 인민군 포로에게 운반을 맡기자, 인민군 포로는 몰래 노루 머리를 구워 먹으려다가 그들의 사령관 머리임을 알고 크게 놀랐고, 그제야 인민군 포로들이 예우를 갖춰 나무를 대고 운반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 (제주자유수호협의회, 제주도의 4월 3일은? 5집, 290쪽)
고진희는 남편이 사살당하던 자리에서 용케 도망칠 수 있었지만, 나중에 체포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 되었다. 그런데 광주 헌병대장 백치규 부인이 제주 출신이었던지라 고진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정체가 탄로 나게 되자 고진희는 교도소 변소에 빠져 자살을 선택했다. 자살을 선택했던 이유는 고문 중에 비밀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제주4·3의 주역들이 원했던 정부는 과연 통일 정부였을까. 그들이 원했던 것은 통일 정부가 아니라 공산 정부였다. 그들이 거부했던 것은 단선 단정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었다. 4·3에 뛰어들었던 제주도민은 모두가 평등하게 잘살 수 있다는 공산당의 화려한 구호에 속아 마른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들이었다. 그들은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가 더 우월하다는 소련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충실한 표본감 노릇을 했을 뿐이었다.
현재 남한 좌익들은 4·3사건을 4·3항쟁으로 추앙하면서 가장 큰 이유로 단선 단정(단독선거, 단독정부)을 반대하고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으로 꼽는다. 만약 그렇다면 4·3의 인민해방군은 북한 정권이 수립될 때에도 단선 단정을 반대하고 통일 정부 수립을 외치며 반대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남한 단정도 반대하고 북한 단정도 반대했던 사람은 김구였다. 4·3인민해방군이 김구를 지지했더라면 그들의 진의는 인정받고 그들의 투쟁은 항쟁으로 격상될 수도 있었다.
4.3 당시의 제주4.3인민해방군과 제주도의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현재의 남한 좌익들은 대한민국의 단정은 비난하면서 북조선의 단정에는 지지를 하고 나섰다. 그들의 정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모순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제주4.3사건의 폭도들에게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위대한 투사 운운하는 사람을 목격하게 된다면, 그저 ‘덜떨어진 빨갱이의 헛소리’라고 욕을 해줘도 된다. 그런 멍청이들이 있어서 1948년 제주도에는 피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