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에게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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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에게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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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하는 것 같으나, 할 일은 다해

한국 보수 언론들은 노동자당(PT)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조지도자 출신의 룰라 대통령이 뜻밖에도 취임 이후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취하는데 놀라움을 표시했다.

예를 들면 중앙은행 총재에 구여권 출신이고, 미국 보스턴은행 총재를 역임한 엔리케를 임명한 것이다. 그리고 고금리 정책을 취하여 인플레를 진정시키고, 예상과는 달리 선심성 재정지출을 하지 않고 정부지출을 과감하게 줄이는 긴축재정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 등이다.

이런 예상과는 다른 룰라 대통령의 행보에 호응하여 브라질의 주가는 크게 올랐고, 서방세계에서 룰라 대통령의 주가도 올랐다. 특히 우리나라 언론들도 룰라를 치켜세우고 있다.

룰라와 노무현

우리나라 언론들이 평소 관심이 없던 브라질에 대해 요즘 자세히 보도하는 이유는 노무현대통령과 비슷한 서민출신의 대통령이지만, 미국과 서방세계에 적극 협조하는 룰라의 모범을 따라서 더욱 협조하라는 보수언론의 뜻이 담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의 정책을 차근히 뜯어보면 반드시 친서방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선 룰라는 거시경제를 안정시키고,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 얼마 전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을 때도 노조출신인 그는 강경하게 대처했다. 그러나 그가 외국 언론의 극찬처럼 당선 후 갑자기 돌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차근히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대내적인 우선정책 목표는 기아 퇴치이다. 기아퇴치를 위해, 무려 1천5백만 명의 빈곤가구에게 직접 식생활비로 지급하는 ‘기아제로 프로그램’(fome zero)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7억6천만 달러의 전투기 구입예산을 취소하고 이를 빈민을 위한 사업으로 전용했다. 또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원흉중 하나인 왜곡된 연금제도를 개혁했다.

외환위기의 안정을 위해 세계은행의 요구에 고분고분한 룰라 대통령도 미국의 모든 요구에 순응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현재 2005년을 목표로 전 아메리카 대륙을 합치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추진하고 있다.

일부 중남미의 국가지도자들이 경쟁적으로 스스로 자국에게 불리한 협상조건을 자청하면서까지 미국의 비위에 맞추려고 할때, 그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을 우선하는 대외정책 등을 펴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구아이, 우루구아이의 4개국으로 구성된 남미공동시장에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안데스산맥국가들까지 끌어들이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미국주도의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에서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려는 자주적인 경제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취임식 다음날 미국에게 가시와 같은 존재인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쿠바의 카스트로와 잇달아 회담을 가짐으로써 자주외교의 의지를 분명하게 과시했다. 특히 베네수엘라를 남미공동시장에 끌어들임으로 석유자원에 대한 값싸고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하고, 극심한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도울 수 있는 ‘도발적인’ 정책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외환위기의 위험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안정권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나, 아직 거시경제적인 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다. 그러나 룰라 대통령이 한편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언론들의 찬사를 받는 제스추어를 취하면서 안으로는 강력한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처럼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운영의 묘를 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진짜 룰라'를 배워야

또 룰라가 서방언론의 갈채를 받는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의지에 반하여 남미공동시장(Mercosur)를 중심으로 한 남미의 단결을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도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인 평화정책을 강력하게 펼쳐나갈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단호하고 첨예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렵기는 룰라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이 브라질의 목줄을 졸라매기로 마음을 먹으면, 처음 브라질 대선이 치러질 때 미국언론들이 호언했듯이 언제라도 브리질 경제는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런 행보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룰라는 현실주의자이다. 그러기에 그가 조심스런 행보를 취한다고 해서 그의 꿈을 접은 것은 아니다. 브라질의 경제가 베네수엘라처럼, 든든히 믿고 기댈 수 있는 석유라는 자원이 없는 체질이기 때문에 보다 신중한 정책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브라질에 대한 결정적인 간섭이 올 때, 거시경제의 안정을 무너뜨리지만 않을 수 있다면 룰라 대통령이 얼마든지 소신적인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미국 발 북한위기에 휘둘려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국방비를 증액하는 악수를 두고 있다. 노대통령은 우리를 조여 오는 엄청난 압력 속에서 운신하기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양보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현실주의자의 첫째 조건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자결은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그 무엇이며, 결코 외세의 힘에 의지해서 지켜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보수언론들이 외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룰라 대통령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러나 보수언론이 잘못 파악하고 있거나 혹 왜곡하고 있는 고분고분한 룰라를 배우라는 것이 아니다. 한없이 양보하는 듯하면서 지킬 것은 다 지켜내는, 유연하고 현실주의적이며 고집쟁이인 ‘진짜 룰라’를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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