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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체부가 없는 사진>의 표지 ⓒ 문이당^^^ | ||
1995년, 첫 장편소설 <나비는 어떻게 앉는가>를 펴낸 작가 남상순(40)이 긴 공백을 깨고 첫 소설집 <우체부가 없는 사진>(문이당)을 펴냈다. 근데 <우체부가 없는 사진>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이 말은 빛 바랜 사진 속에 희망을 배달하는 우체부는 온데간데 없고, 그 우체부가 타고 다니던 빈 오토바이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는 그 말이다.
그래. 요즈음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주는 우체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체부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희망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우체부가 올 시간이 다가오면 신작로에 나가 발 뒤꿈치를 한껏 치켜든 채 한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1993년 <흰 뱀을 찾아서>로 '오늘의 작가상'까지 거머쥐었던 작가 남상순이 오랜만에 펴낸 <우체부가 없는 사진>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언뜻 느끼기에 '희망이 없는 어린 날' 또는 '희망이 없는 과거'란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즉, 나의 과거를 둘러싸고 있었던 모든 것들은 '우체부가 없는 사진'이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우체부가 없는 사진>이란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각각의 단편들 속에 끝없이 드리워지는 그늘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이 여럿 나온다. 그 사람들은 '희망'이 아닌 '절망'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 절망 너머 으르렁거리고 있는 '악'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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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남상순 ⓒ 한국소설가협회^^^ | ||
하지만 그 '악'은 멀리 할 수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할 수도 없다. 그저 스스로에게 주어진 원죄처럼 그렇게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 사람들 모두가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는 끝도 없이 곪아 터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표제가 된 '우체부가 없는 사진'을 포함, 모두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중독', '호각소리', '수염 없는 고양이', '죽음의 무늬', '산 너머에는 기적 소리가', '악연.1', '악연.2', '침묵'이 바로 그것들이다.
특히 자전적인 요소가 몹시 강한 '죽음의 무늬'에는 '악의 축'으로 대변되는 아버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사부곡이 아니라 평생을 떠돌이 삶을 살다 죽은 아버지를 극복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서 조금 특이하다.
'죽음의 무늬'는 딸의 몸에 북두칠성 모양의 별자리가 까만 점으로 선명히 이어져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다가 죽은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나'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할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날 나는 부산에서 처음 보는 여자인 윤자 어머니와 다정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를 만난다.
화가 난 나는 그들을 외면한다. 딸을 처음 만난 아버지 또한 나를 소 닭보듯이 데면데면하게 쳐다본다. 그리고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스무 살이 된 나가 나온다. 스무살의 나는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의 식당에서 밥을 해주며 지낸다. 그때 불쑥 아버지가 나타나 나에게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겠다며 아버지를 단호히 쏘아붙인다. 그때 아버지는 "이런 못된…" 하면서 나의 오른쪽 뺨을 후려친다. 그리고 아버지 스스로 와르르 주저 앉는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서 시원하고 통쾌함을 느낀다. 또한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아버지의 부도덕과 주먹질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또한 아버지를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그런 어느날, 아버지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는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버지가 없는 내가 탈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시도 때도 없이 걱정을 한다. '악'의 실체로만 느껴졌던 아버지의 죽음이, 나를 더욱 구속하고 짓눌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배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믿는다.
'우체부가 없는 사진' 또한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때 몹시 사랑했던 여자와의 여러 가지 갈등 끝에 끝내 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그녀와의 첫 대면 이후 나는 사진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그녀 주변을 끝없이 맴돈다. 나는 그 기다림의 와중에 운동권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세월이 흐른 어느날,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와 연인이 되어 그녀의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서로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서로 엇갈리기 시작한다. 그 엇갈림은 마침내 골 깊은 오해로 이어지고, 급기야 그녀는 자살까지 시도하는데….
남상순의 첫 소설집 <우체부가 없는 사진>은 성장소설이면서도 후일담 소설이다. 이 책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아득한 어린 날의 기억 속으로 숨어들다가도 어느새 현재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작가는 과거와 현재의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비쳐낸다.
자신의 어린 날의 아픔과 상처를 깁기도 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환경을 따스한 시선으로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동안 감추어진 비밀스러웠던 모든 것들, 그러니까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과거까지 송두리째 들추어낸다. 왜? 그것들 모두가 나를 키워준 시대의 아픔이자 삶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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