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신자유주의, 그리고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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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신자유주의, 그리고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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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깊어가는 국가간 힘의 불균형

지금 전 지구적 상황을 규정짓고 있는 키워드는 세계화(globalization)와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그리고 부시행정부 들어 노골화되고 있는 직접적 무력에 의한 패권주의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라는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와 다른 의미의 ‘위로부터의 세계화’라는 단어로 표현해야 보다 정확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화란 단순히 운송수단의 발달과 통신수단의 발달에 의해 지구촌이 더욱 가까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자간의 협상에 의해 정해진 일정한 규칙에 의해 세계가 질서 있게 움직여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자간의 협정이 외견상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매우 불공평한 힘의 논리에 의해 맺어져 있다는 것이 오늘날 ‘위로부터의 세계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다. 이러한 협정에 근거해 세계화는 이제 떳떳이 각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제한 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지게 되었다.

불과 1세기 전 ‘아래부터의 세계화’를 불붙이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는 사뭇 다른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세계 각국의 NGO가 연대하고, 이라크 전 반대에서 보여준 것 같은 전 지구적인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위력에 있어서 아직은 실질적으로 가시적인 힘을 행사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와 쌍둥이다. 세계화란 이름 밑에 숨어 있던 보다 노골적인 모습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무역과 자본이 자유롭게 국가의 경계를 넘어들게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화란 이름보다 신자유주의란 이름은 보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주안점이 주어져 있다.

상품의 비대칭적 자유교역의 극단에 자본의 자유로운 교역이 있다. 힘을 가진 국가에서 자신들이 우월한 상품에 대해 자유로운 이동을 관철시키듯이, 몇 몇 국가들은 금융자본이라는 상품을 우월하게 발전시켰다. 각종 펀드와 연기금이 엄청나게 큰 액수로, 또 고도의 기법과 속도로 국가의 경계를 넘어 움직여 다닌다.

때로는 노골적인 투기적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투기성 자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후 금광에서 캐낸 막대한 금이 유럽으로 흘러든 이후, 지금만큼 빠른 속도로 자본이 움직여 다닌 적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엄청나게 큰 규모는 그 자체로 시장을 지배하고 시장을 움직인다. 몇몇 극단적인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들이 금융투자의 게임에서 지는 예는 결단코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시장에서의 개임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가와 국가가 보증을 선 채무에 대한 지불이 불명확해질 때 그들은 국가의 경제를 휘두르는 요술방망이를 지니게 된다. 국가의 경제적 경계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주권마저 무너지게 만든다. 자금이 투자된 국가에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는 국가의 책임일 뿐이다. 그들은 자본과 이익만 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는 경우가 있나보다. 그들은 결국 무력이라는 몽둥이를 휘둘러댄다.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이 제도적으로 보장이 되지 않는 불량한 국가, 혹은 자신들이 재단해 낸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력으로 응징한다. 국제사회의 여론이나 유엔의 반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오로지 억지로 지어낸 몇 가지 명분을 내걸고, 경제적 이익을 관철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드디어 제국이 탄생한다. 그들의 욕구는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이제는 모두가 그들이 내세우는 세계화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힘의 행사 또한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이젠 그들에게 쉽게 불만을 토로할 세력도 없어져 버렸다.

조용히 그늘에 주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용히 절망하고, 조용히 시들어 간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세대들은 새로운 시대를 규정하는 룰을 익히고 새로운 개임의 법칙에 적응해서 그들의 룰로 그들을 이겨보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은 언제든지 룰 자체를 바꿔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에 대한 반대세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구석, 아주 후미진 곳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나고 있다. 아직은 조그맣고 너무 미약해서 외신란에 잘 오르지도 않고 정확한 사실(fact)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만, 확실히 그들에 대한 집단적인 반기와 반발은 나타나고 있다.

가장 골이 깊은 곳에서 조그맣게 시작되는 그 조그만 불씨가, 언젠가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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