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스쳐간 나라들을 둘러볼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이 바로 중산층의 광범위한 붕괴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잇따른 자살의 원인이다. 갑자기 밀어닥친 경제적 위기를 해소하는 대가로, 막대한 국부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은행체제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함유된 것들은 오랫동안 국내의 경제체제 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계은행체제의 여파가 지나간 곳 어디를 둘러보아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것이다.
각국에서 광범위한 중산층의 붕괴가 나타난다. 오늘날의 남미를 볼 때 그런 현상은 확연하다. 아르헨티나에서 1년이 넘게 지금까지도 냄비시위를 계속하는 사람들의 주요계층은, 빈민이 아니라 몰락한 (전)중산층들이다. 페루를 계엄 상황으로 몰고 간 것도, 중산층인 교사와 의사, 변호사들의 파업이었다.
왜 세계은행은 이렇게 중산층을 파괴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할까.
세계은행의 도움을 받을 때, 혹은 대규모 외국자본이 들어올 때 그들이 반드시 요구하는 전재조건 중에 하나가 노동시장의 유연화이다. 정확하게 말하지만 해고를 쉽게 할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량실업을 의미한다.
세계은행과 외국자본은 또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요구한다. 대부분의 국유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나 인프라산업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유는 방만한 국영기업을 민영화해서 효율성을 높여서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영기업들이 민영화되면 상당수의 경우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거나,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에게 매집되어 실질적으로 외국인의 소유가 된다. 이들 민영화된 국영기업들은 곧바로 대규모 해고를 행하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결과는 공공요금이 대폭 인상되는 것이다. 곧바로 국가 전체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중산층의 붕괴가 촉진된다. 수도세, 전기료, 교통비등의 생활비가 인상되기 때문이다.
외국자본은 또한 주식시장을 요리한다.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고 국제금융자본의 영향을 받은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사람들은 저금리를 피해 한 푼이라도 더 이익을 올려 보려는 마음으로 주식시장에 투자한다. 하지만 고도의 노하우와 정보력을 가진 외국자본과의 게임에서, 대부분의 개미투자자들은 많은 돈을 잃게 된다. 결국 결정적인 중산층의 붕괴가 일어나는 것이다.
또 정부는 공적자금 등 늘어나는 사회적 지출을 위해서 필요한 재정자금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부문의 외채를 갚기 위해서, 또 세계은행이 요구하는 재정건전화를 위해서 정부는 세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많은 경우 세금은 간접세의 형태로 부가되어 국민들의 생활에 부담을 주게 된다.
이런 다양하고도 상호 연관되어 있는 유기적인 과정을 통해서 중산층의 해체가 촉진된다. 실업과, 공공요금의 상승, 그리고 자본투자에서의 실패를 통해서, 그리고 세금의 인상을 통해서 빈곤층이 급격히 늘어난다.
직장에서 몰려나고 가진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이제 문제는 경제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이 갈 곳을 잃게 되는 것이다. 실업자의 증가, 노숙자의 증가, 빈민의 대폭적인 증가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정치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오늘날 남미각국이 걸어온 길이 바로 그러한 과정이었다.
우리사회의 경우도 점진적으로 그러한 과정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이미 각종 통계에서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 나타난다. 실업은 만성적 사회문제가 되었고, 저금리를 피해 달려간 주식시장의 붕괴는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지위를 더욱 어려운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위기가 표면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는 몇 가지가 되지 않는다. 이미 우리가 들어선 새로운 경제체제에서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거꾸로 길을 가려고 한다.
당장 정부는 다시 증시부양을 위해 국민연금을 투입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방법이다. 급격히 노령화사회로 진입하는 우리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몇 안 되는 사회적 안전장치마저 당장의 증시부양을 위해, 외국자본과의 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 털어 넣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파탄될 것이 분명하다는 국민연금을 그렇게 날려버리면, 본격적인 노령화가 시작되는 시기에는 이 나라에는 장래는 어떡하려는 것인가.
건강보험은 또 어떤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본인부담율이 높다고, 건강보험 공단자체가 인정하는 보험체계로 사회적 안전망이 유지가 되겠는가. 건강보험재정의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의료이용을 제한하다가, 장차 더 많은 심각한 질병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경우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 때로는 인기를 잃을지라도 바른 소리를 하는 정권에 대해 국민들은 갈채를 보낼 것이다. 지금 정부의 빚고 있는 혼선은 스스로의 힘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꾸려갈 의지보다는, 지나치게 외세의 영향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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