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 잃은 무덤만 쓸쓸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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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 잃은 무덤만 쓸쓸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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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내물왕릉

 
   
  ^^^▲ 정면에서 바라본 내물왕릉
ⓒ 이종찬 ^^^
 
 

"이 고분도 내물왕의 능인지 정확치가 않다면서요?"
"그렇니더. 하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물왕의 장지(葬地)에 대한 기록에는 '능재점성대서남'(陵在占星臺西南)이란 말이 나온다고 하니더. 이 기록은 내물왕릉이 첨성대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는 그 말이니더."
"그랬군요. 근데도 왜?"
"학자들 말로는 그 전승기록을 고려시대인가 조선시대 때 모두 잃어버렸다고 하니더. 그라이 지금도 말이 많을 수밖에."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아빠는 지금 계림 속에 언덕처럼 우뚝 솟아있는 내물왕릉으로 가고 있어. 계림과 내물왕릉 사이에는 마치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처럼 조그만 도랑이 흐르고 있어.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아니면 덕동댐에서 흘려보낸 물인지는 잘 몰라도 약간 흐릿한 물이 도랑의 허리까지 휘감으며 촬촬촬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어.

내물왕릉은 경주 반월성에서 바라보면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어. 하지만 이 왕릉이 내물왕릉의 릉인지는 정확치가 않대. 왜? 자료에 보면 내물왕은 후세에 큰 추앙을 받은 실질적인 김씨 왕조의 창시자라서 그 고분의 규모 또한 아주 컸을 것이라고 되어 있거든. 그럼 고분이 작아? 아니 아빠가 보기에는 아주 커. 하지만 경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른 고분들에 비하면 조금 작은 편에 속해.

 

 
   
  ^^^▲ 내물왕릉 안내 표지
ⓒ 이종찬^^^
 
 

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대. 내물왕의 재위시기(356~402)로 보아 고분이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어야 하는데, 현재의 고분은 규모가 작은 석실분(石室墳) 형식이어서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거야. 적석목곽분이 무슨 뜻이냐고? 그건 쉽게 말하자면 무덤 안에 돌을 쌓고 나무로 만든 무덤이란 뜻이야. 그리고 그런 무덤은 낙랑시대와 삼국시대 초기에 많이 만들었대.

그래서 학자들은 대릉원에 있는 황남대총을 내물왕릉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대. 왜냐구? 황남대총이 신라 최대의 적석목곽분이라고 알려져 있거든. 또 다른 학자들은 지금의 내물왕릉이 내물왕 계열의 계승의식을 표방한 신라 말기 왕실의 고분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대. 왜냐하면 이 고분이 내물왕릉으로 지정된 것은 조선말기 또는 1900년대였다고 추측하고 있거든.

"하여튼 현재로서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그대로 믿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니더. 발굴을 해 보기 전에는. 하긴 발굴을 한다 캐도 모를 수도 있니더. 왜놈들이 이미 도굴을 다한 뒤에 빈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겨놓았는 지도 모르니까."
"하긴 주변에 흩어져 있는 저 고분들도 누구의 고분인지도 모르고 있으니‥."

 

 
   
  ^^^▲ 이 무덤도 상고시대의 무덤이라는 말이 떠돈다
ⓒ 이종찬 ^^^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하여튼 아빠는 사실이 정확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고분을 내물왕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근데 지금 꼭 너희들 또래 만한 아이들 3~40명이 아빠가 서 있는 내물왕릉 쪽으로 몰려오고 있어. 입은 한시도 쉬지 않고 제비새끼처럼 쫑알대면서 말이야. 아마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 같아.

"뇌물왕이모 무덤 속에 돈도 억수로 많이 들어있것다. 그쟈?"
"바보야! 뇌물왕이 아이라 냇물왕이라카이."
"그라모 니는 저 무덤 속에 연못처럼 물만 한거슥(가득) 들어있다 그 말이가."
"내기 할래?"
"좋다. 손 내밀어라."

후후후. 저 아이들을 쳐다보니 꼭 너희들을 보는 것만 같구나. 저 아이들도 손가락 건 것도 모자라 도장을 찍고 사인하고 복사까지 하는 걸 보니. 말투를 보니까 아마도 부산 쪽에서 올라온 아이들인 것 같아. 나이는 초등학교 5~6학년쯤 되어 보여. 키가 제법 크고 얼굴에 여드름까지 돋은 아이들이 몇몇 보이는 걸 보니까.

 

 
   
  ^^^▲ 궁궐은 간데 없고 주춧돌만 남아
ⓒ 이종찬 ^^^
 
 

내물왕릉은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지름이 22m, 높이가 5.3m야. 봉분의 밑부분에는 자연석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고. 근데 원형봉토분은 또 뭐냐고? 능에 대한 설명이 조금 어렵지. 원형봉토분은 부드러운 흙을 쌓아 둥글게 만든 무덤이란 뜻이야. 알고 보니 별 것 아니지?

그리고 내물왕릉은 능의 형식이 경주 시내 평지에 있는 적석목곽분과는 조금 다르대. 내물왕릉은 호석(護石), 그러니까 능의 주변에 돌을 둘러 쌓은 무덤으로 신라 횡혈식(橫穴式) 석실분의 형식을 보여준다는 거야. 횡혈식 석실분은 좋은 묘터에 가로로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이란 그런 뜻이야.

내물왕릉 앞에는 후대에 설치한 혼유석(魂遊石)이 놓여 있어. 혼유석이란 무덤 앞에 놓여있는 직사각형의 돌을 말해.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갔을 때 산소 앞에 평평한 돌이 놓여 있었지. 바로 그 돌이 혼유석이야. 그리고 내물왕릉 주변에는 능을 보호하는 담장터가 있었던 흔적도 있어. 그걸 보면 오래 전부터 이 능이 담장으로 보호를 해야 할 만큼 아주 특별한 능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겠지?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내물왕은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으로 성은 김(金)씨야. 그리고 아버지는 말구각간(末仇角干)이며, 어머니는 휴례부인(休禮夫人) 김씨였어. 비(妃) 또한 김(金)씨로 미추왕(味鄒王)의 딸 보반부인(保反夫人)이래.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마립간, 이사금 등은 신라 때 왕의 칭호야. 그래서 내물왕을 내물마립간이라고 부르는 거야.

 

 
   
  ^^^▲ 부부 합장묘인 듯
ⓒ 이종찬 ^^^
 
 

그리고 각간은 신라 때 벼슬 이름이야. 신라 때는 벼슬을 17개로 나누었대. 그리고 그 첫째 등급을 각간 또는 각찬, 간벌찬, 서불한, 이찬, 이벌찬 등으로 불렀대. 어머니는 뭐고 비는 또 뭐냐구. 아마 그때까지만 해도 부인을 많이 둘 수 있는 그런 시대였겠지. 그러니까 내물왕의 어머니는 휴레부인이고, 보반부인은 내물왕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란 그런 뜻일 거야. 확실치는 않지만.

내물왕은 김씨로서는 미추왕에 이어 신라에서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던 분이야. 그리고 그때부터 신라가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칠 때까지 모두 내물왕의 후손인 김씨들이 38명이나 왕위를 차지했어. 신라 또한 내물왕 때부터 국력이 엄청나게 커져서, 낙동강 동쪽을 모두 아우르는 왕국으로 성장했고.

다시 말하면 내물왕이 신라의 기초를 탄탄하게 닦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지. 또한 47년 동안이나 나라를 다스렸어. 그리고 중국과도 통상을 열고 문물교류를 아주 활발하게 했대. 게다가 재위 9년, 서기 394년에 왜구가 쳐들어오자 토함산 기슭에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복병작전으로 격퇴시켰대.

복병이 뭐냐고? 적을 쳐부수기 위해 곳곳에 숨겨놓은 군사들을 말하는 거야. 허수아비를 마치 군사처럼 보이게 한 거지. 그래. 노적봉이란 말 들어봤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로 보이게 했다는 그 바위 봉우리 말이야. 아마 이순신 장군도 그런 전술을 내물왕에게서 배웠는지도 모르지.

 

 
   
  ^^^▲ 주인 잃은 무덤만 쓸쓸히 남아
ⓒ 이종찬 ^^^
 
 

"그라이 학자들이 자꾸만 의심을 한다 아인교. 그라고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큰 업적을 닦은 왕의 무덤 치고는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이니더."
"내물왕릉 같은 고분은 통일신라를 전후한 시기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면서요?"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 고분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시대인 상고시대의 고분일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고 하니더."

그래. 신 선생과 일부 학자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내물왕릉 주변에도 내물왕릉보다 더 크게 보이는 고분들이 몇 개 더 흩어져 있으니까. 내물왕릉 오른편에는 고분이 두 개 있어. 그 중 야산처럼 커다랗게 생긴 고분은 합장묘인 것 같은 느낌도 들어. 그리고 내물왕릉 뒷편에도 언덕 만한 고분이 두 개나 있어.

신 선생 말로는 경주 곳곳에는 이런 고분들이 수없이 흩어져 있대. 어찌 보면 경주는 신라왕들의 거대한 공동묘지라면서. 숲이 우거진 경주의 야트막한 산들도 예전에는 왕들의 무덤이었을 가능성도 아주 크대. 왜냐하면 내물왕릉에서 반월성 가는 쪽에도 고분이 하나 있는데, 그 고분에도 아주 큰 소나무가 몇 그루 자라고 있거든.

 

 
   
  ^^^▲ 고분들만 언덕처럼 남아 있다
ⓒ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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