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애환의 피난지 용두산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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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애환의 피난지 용두산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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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단점을 상업적 개발로 극복한 한국 제 2의 수도

팔금산(八金山)이 부산(釜山)이라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말자.

한발 울려 맹세하고 두발 디뎌 언약하던

아아아 ~~~ 못 잊어 운다.

참 오래된 노래이고 추억과 애환이 깃던 우리 선조들의 피난처로서의 부산하면 용두산, 영도다리를 연상하신다고 한다.

어떠한 책에서 이 땅의 예언서에 1950년 전후하여 민족의 대이변이 있을 것이다. 오직 그 이변을 피할 곳은 팔금산(八金山)이라고 했다. 6. 25 민족동란 이전에는 그 지명을 모르다가 피난처가 부산(釜山)이 되고나서야 팔금산(八金山)이 부산(釜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용두산(龍頭山)은 중구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 49m의 구릉성산지로 부산 시민들은 물론 외국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부산 제일의 휴식공간이자 관광명소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본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초량왜관(草梁倭館)" 은 이 공원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 전관거류지로서 용두산 일대가 거의 일본인 거리로 탈바꿈 되었다고 하며

6·25 전쟁 때에는 피난민들의 판자촌이 들어서고, 1954년 대화재로 판자촌이 거의 전부 불타 없어진 뒤 다시 정비되어 산림지대로 가꾸어지게 되었지만 이일대의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용두산을 둘러싼 주의의 산지 토지 주택 등의 소유권이 아직도 부산시, 해당구청, 개인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점에 대해서 이번 부산시에서 용두산 재개발 방안에 정책토론회를 마련 중이라고 하니 해당주민들은 이러한 민원문제도 말끔한 해결하여 주기를 바라는 여론들이다.

아울러 용두산 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산의 모양이 마치 용(龍)이 머리를 들고 바다를 바라보는 뜻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데서 비롯된다.

풍수 지리서를 인용하여 보면 용은 여의주가 최대의 맥이라고 하는데 왜정시대 이전에는 용미산(龍尾山)이 구 시청 자리에 있었다고 하는데 여이주가 없는 이무기가 되도록 일본인들이 이 용미산을 허물었다고 한다.

그나마 구 시청이 용미산 역할을 할 때 만해도 남포동, 자갈치, 충무동일대가 부산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행정, 금융, 문화, 관광분야에서도 해운대, 서면등지에 비하여 많이 뒤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자리(구 시청 부지)에 롯데쇼핑과 롯데호텔 등 롯데그룹에서 107층(510m)의 부산 제2 롯데월드를 착공해서 현재 기반공사가 진행 중이며 오는 2013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용두산의 여의주가 다시 생겨나는 결과가 되어 부산상권의 중심지를 되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자갈치 아지매"는 부산 사람의 특유한 기질을 상징

^^^▲ 자갈치 시장^^^
부산 용두산의 지형을 보면 이곳은 산세에 비하여 바다의 바람이 거센 곳으로 땅 속의 흙 심은 얕고 지세의 경사는 가파르고 물이 머물지 못한 채 급히 바다로 흘러빠지니 땅은 척박하고 윤기가 적은 곳이다.

따라서 이런 곳에 살려면 억척스럽게 자연에 대항하여 싸움하여 자연적 단점을 인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즉, 사람이 자연의 혜택을 받으면서 편하게 살 땅으로는 단점이 많은 곳이라 순하고 덕스러운 농부보다는 손익 계산이 빠르고 억척스런 상인이 살터이다.

남포동 상권, 자갈치시장은 자연에 기대어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임을 입증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도시화로 인해 사람은 자연적 단점을 극복하고 인위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는 있지만 이는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삶이 아니라 항상 긴장하고 투쟁하며 살아야할 땅으로 현재도 그렇게 살아가는 곳이며 6.25 동란 시에 잠시나마 사람의 삶의 의지를 시험해 본 곳이기도 하다.

부산의자갈치 시장은 부산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장으로서 "자갈치 아지매"는 억척스런 생활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이 자갈치 시장의 특징으로 섬세하고 부드러움은 없으나,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부산 사람의 특유한 기질을 상징하는 가장 부산다운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옛 부산(용두산 중심)은 경사가 급하여 물이 땅 속 깊이 흘러들지 못하고, 또 넓은 평야가 부족하여 땅에 기대어 삶을 살기에는 단점이 많은 터이다. 하지만 가파른 산기슭이 바다로 빠지며 항만의 물이 깊으니 항구로써의 입지조건은 매우 훌륭해서 자연적 단점을 상업적 개발로 극복해서 한국 제 2의 수도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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