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감정 고조, 난징대학살기념관확장 재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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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징대학살 당시의 모습. 일본은 난징대학살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 아직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 BBC^^^ | ||
각계 인사 1만 여명이 모여 당시 대학살을 기억하며 희생자의 넋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 13일 일분군에 의해 당시 30여 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끔찍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난징의 인구는 70여 만 명으로 학살당한 사람이 인구의 거의 절반에 이르렀다.
일본은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톈진(천진), 베이징(북경), 상하이(상해) 등지를 연이어 점령한 다음 12월 13일 난징(남경)마저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대학살 모습을 두고 독일 ‘나치’마저도 “야수의 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했던 전대미문의 학살이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10시33분까지 33분간 난징 일대에는 희생자를 추념하는 사이렌이 울렸으며 이를 계기로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2년간의 공사를 거쳐 이날 확장 재개관한 난징대학살기념관에는 당시 학살 장면 등 상세한 기록물들이 전시되었으며, 난징대학살은 일분 황국군의 중국 침략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확장 재개관된 기념관은 넓이가 3배나 확장됐으며, 3500여점의 사진과 3300여점의 유물 그리고 13곳의 현장복원 모형이 갖춰져 당시 대학살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1937년 당시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은 최고조의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 약탈, 고문, 성추행 등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학살에는 어른도, 아이도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댔으며,. 산채로 사람을 묻어버리는가 하면, 젊은 남자들은 일본군 총검술 훈련용으로 목에 베어져 나가기도 했다. 사진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당시 일본 도쿄의 한 신문에는 중국인 참수(목을 베는 일)시합에 참가한 두 명의 일본군 소위가 각각 105명과 106명을 살해한 사실을 사진과 함께 보도하면서 칭찬을 일삼는 보도를 하기도 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따라서 비록 70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중국인과 세계인들은 당시의 일본군 만행을 똑똑히 기억하며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한편, 1937년 당시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기 전부터 수십 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의 사료가 발견됐다고 중국 관영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China Daily)'가 1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문서기록보관소’의 왕란 연구원은 당시 주독일 미국대사인 ‘윌리엄 에드워드 도드’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전신 기록을 미국의 ‘국립문서기록보관소’에서 발견해 공개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에 보내진 전신에는 “주독 일본대사가 며칠 전 일본군이 50만 명의 중국인을 죽였다는 내용을 자랑처럼 얘기했다”면서 “동아시아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최악의 상황이며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정책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왕란 연구원은 이 전신문건에서 일본군이 50만 명을 학살했다는 것은 이들이 난징에서뿐만 아니라 난징 점령 전부터 다른 지역에서도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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